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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학지식

김홍도의 도석화道釋畵

by 소시민스토리 2024.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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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의 도석화道釋畵

도석화道釋畵의 '도道'는 도교의 '도'이며 석釋은 '석가모니'의 석이다. 도교와 불교 그림을 같이 뭉뚱그려 본 것이다. 조선은 유교사회로 도교와 불교는 배척되는 느낌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비들이 도석화를 주문하고 감상했던 이유는 도석화의 주인공들이 일반인들이 가지지 못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이다. 김홍도는 도석화를 20대 초반부터 너무나 멋지게 그려 명성을 얻는다. 

 

 

<초원시명>파초 정원에서 차를 맛보다. 김홍도作

 

파초 한 그루가 싱싱하게 가득 자리하고 있다. 왼쪽에는 사슴 한 마리가 앉아있고 오른쪽에는 쌍상투를 튼 어린아이가 화로에서 차를 끓이고 있다. 쌍상투를 튼 아이는 범상치 않다. 조선시대 신선들의 최고 애완동물은 사슴이었다. 사슴과 사람이 같이 나오면 그 사람을 신선이다. 

이 그림의 제목은 <초원시명> '파초 정원에서 차를 맛보다'이다. 조선시대 신선들이 사슴과 즐겨 등장하는 이유는 사슴들이 오래 살기 때문이다. 어린아이가 다리고 있는 약도 먹으면 오래 사는 약일 것이다. 

 

 

<녹선취생> 녹선이 생황을 불다. 김홍도作

 

왼쪽의 신선 어린아이는 양손에 영지버섯을 받치고 있고 뒤 신선 아이는 생황을 불고 있다. 생황악기는 김홍도 본인도 즐겨 불었다. 이 그림의 신선들도 생황을 불고 있다.

※생황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아악에 쓰인 관악기이다.

 

영지버섯은 신선들이 즐겨 먹는 음식이다.

사슴들은 영지버섯이 어디서 자라는 지 알고 있다. 사슴을 앞세워 영지버섯이 많이 나는 곳으로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슴 뿔이 있다. 조선 시대 신선 그림에는 암사슴은 보기 어렵고 대부분 숫사슴이 등장한다. 

두 신선 어린아이들 얼굴을 보면 영락없는 동네 아이같은 얼굴이다. 김홍도 이전 시절의 신선들은 약간 기괴한 모습으로 등장했던 반면 김홍도는 이웃집 아이 같은 얼굴로 바꾸어 놓았다. 조선의 문화가 으뜸이라는 자부심에서 나온 결과일 것이다. 

 

 

<금화편양> 금화산에서 양을 치다. 김홍도作

 

이 사건은 중국 진나라 때 갈홍이라는 문인이 지은 <신선전>에 나오는 내용이다. <신선전> 가운데 황초평 신선의 일대기를 적은 내용이 있다. 황초평은 원래는 15살 목동이었다. 어느 날 양치러 나와서 길을 가고 있는데 도사 한 분을 만난다. 

 

"나를 따라가 도술을 익히면 불로장생할 수 있다"

 도사의 꾀임에 황초평이 빠져 도사를 따라가 신선술을 익히게 되고 황초평은 신선이 된다. 동생이 사라지자 황초평의 형님이 동생을 찾아 40년을 헤매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길가에서 도사 한 분을 만났다. 도사가 말했다.

 

"당신이 찾고 있는 그 어린아이를 지금 저기 가면 만날 수 있다"

그말을 들은 형님은 금화산에 찾아갔더니 집 나간 동생을 40년 만에 만났는데 집 나갔던 15살 모습 그대로 있었다. 도술을 익혀 나이를 먹지 않았던 것이었다. 

양을 치는 어린아이로 황초평이 표현되었다. 중국 <신선전>에는 양치던 아이였다. 어린아이 뒤의 동물은 양이 아니라 염소다. 양은 조선시대 살지 않았다. 김홍도는 조선에 살지 않는 양 대신 염소로 바꿔 그렸다.

조선 고유색을 아름답게 꽃 피웠던 시절이다. 

 

 

<과로도기>김홍도作

 

족자는 벽에 걸어 놓고 보는 그림이어서 그림 크기가 크다. 족자 그림의 주인공은 나귀를 거꾸로 타고 있다. 고삐도 잡지 않았는데 나귀는 제 갈 길을 열심히 가고 있다. 백발이 가득한 노인은 중국 당나라 때의 신선 장과張果이다. 나귀는 평상시에는 종이 나귀이다. 나귀가 타고 싶으면 종이 나귀에 물을 뿌리면 나귀가 살아난다. 걸을 때는 상자 안에 집어 넣어 놓는다. 장과 신선이 나귀를 타고 길을 가고 있다. 신선이 읽고 있는 책에는 글이 한 글자도 없다. 여기에 한자를 쓰는 순간 장과 신선의 영롱한 기운에 시선을 뺏긴다. 오른손 손톱은 엄청나게 길다. 손톱이 긴 것은 신선들이 오래 살았다는 증거로 쓰이게 된다. 이 그림은 보면 인물화를 그릴 때 옷 선을 굵고 진하게 얼굴선은 가늘고 옅게 그려야 인물의 정신이 오롯이 살아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장과 신선 머리 위에 글이 두 개 있다. 

오른쪽 감상평은 김홍도의 그림 스승 표암 강세황(1713~1791)으로 조선 후기의 문인. 역관. 평론가였다. 

 

"과果라는 늙은이, 종이 당나귀를 거꾸로 타고

손에는 한 권 책을 들었는데

눈빛이 글줄 사이로 곧게 쏟아진다

이는 누치士能에게

가장 득의작得意作이라 할 수 있으니

중화에서 그것을 구한다 해도

쉽게 얻을 수는 없으리라" 

 

※사능士能은 김홍도의 자이다. '자'는 옛날 사람들이 관례를 올릴 때 어른들이 붙여주는 별칭이다. 대게 호號를 쓰기 이전 자를 많이 쓴다. 

※득의작得意作은 최고의 작품이라는 뜻이다. 강세황은 자신의 제자의 그림을 중국 어떤 그림보다 더 뛰어나다고 인정해 주었다. 

 

조선 후기의 역관 석초 안호가 왼쪽 감상평을 남겼다. 

 

"손 안의 신결(神訣)은 곧 명리정종일 터인데 

어떻게 하면 내 말년 신수를 물을 수 있을까

석초가 제한다"

 

※명리정종命理正宗은 사람의 운명을 기록해 놓은 예언서이다.

감상평 위에 박쥐가 날고 있다. 장과 신선의 핵심이다. 장과 신선은 원래는 박쥐의 정령이 사람으로 변한 것이다. 박쥐는 한자로 박쥐 복蝠을 쓴다. '행복하다'의미의 복福자가 있다. 중국어로 박쥐 '복'자와 행복하다의 '복'자가 자가 발음이 'fu'로 똑같다. 그래서 중국인들에게 박쥐는 복을 상징한다. 장과 그림에는 반드시 박쥐 한 마리가 날고 있어야 된다. 

 

김홍도가 그린 불교 인물화

 

 

<절로도해>갈대를 꺾어 타고 바다를 건너다. 김홍도作

 

그림 속에 의젓하게 생긴 스님 한 분이 갈대 위에 서 있다. 갈대를 꺾어 바다를 건너는 스님은 인도의 유명한 달마 스님이다. 달마 스님이 부처의 불법佛法을 전하기 위해서 중국으로 건너가게 된다. 중국 선종의 제1대 조사가 된다.

※조사祖師는 한 종파를 세우고 종파의 뜻을 펼친 사람이다.

이후 달마는 중국 선종의 가장 위대한 스승으로 모셔진다. 달마 스님이 양쯔강을 건너면서 갈대를 꺾어서 건넜다고 후대 사람들이 신비화시켰다. 강을 건넜는데 바다를 건넜다고 신비화시켰다. 

 

단원 김홍도는 인도인 달마를 조선인 달마로 바꿔 놓았다. 조선의 문화가 세계 제일이라는 자부심이 문화의 기준을 조선으로 만들어 놓았다. 조선 문화 절정기의 핵심이었다. 

바다 물결을 그리지 않았다. 이것은 문화 절정기의 특징이다. 군더더기를 제거하고 대상에만 집중했다. 파도는 군더더기라서 과감히 생략했고 훨씬 더 달마의 모습이 의젓하게 잘 부각되었다. 

 

<고승기호>김홍도作

 

김홍도는 많은 스님들을 그렸는데 호랑이를 탄 스님 얼굴이 달마 스님 얼굴과 비슷하게 그려져 있다. 석가모니 부처의 제자들 가운데 석가모니 부처의 설법을 듣고서 번뇌가 모두 사라진 1,250명의 제자들을 '아라한阿羅漢 '이라고 불렀다.

※아라한阿羅漢은 불교의 수행자 가운데서 가장 높은 경지에 이른 이를 칭한다.  

 

아라한은 일반 명사가 되었다. 다음 부처가 이 땅에 내려올 때까지 아라한들은 열반에 들지 않고 중생들을 위해 부처의 말을 지키게 된다. 다음 부처는 56억 8,000만 년 있다가 이 땅에 내려온다. 그러니 56억 8,000만 년동안 열반에 들지 않는 아라한들의 신통력은 뛰어났다. 

아라한이 호랑이 등을 타고 어디론가 가려는 모습을 펼쳐내고 있다. 

호랑이 등에 탄 아라한은 김홍도가 그린 스님 그림들 가운데 아주 멋진 작품이다. 

 

 

<염불서승> 염불 하며 서방정토로 올라가다. 김홍도作

 

김홍도가 남긴 스님 그림은 김홍도가 많은 그림에 서명한 '단원'이라 서명하지 않고 '단노檀老' 노인 노老자를 붙였다. '단원 노인'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이 그림은 김홍도가 나이 들어 그린 그림이다. 김홍도의 말년 그림 가운데에는 스님들 그림이 많다. 김홍도는 말년에 불교에 깊이 귀의해 불화佛畵를 많이 남겼다.

스님은 붉은 연꽃 위에 올라가 앉아 있고 연꽃 아래에는 구름이 있다. 이 스님은 구름 타고 연꽃 타고 열반에 막 드셨다.

※열반은 불교에서 스님이 돌아가셨다는 표현이다. 

불심이 깊은 사람은 열반에 들면 극락세계에 가서 다시 태어난다. '극락왕생'이라 부른다. 

스님 머리에서 빛이 난다. 이것을 '두광'이라고 부른다.

※두광頭光은 부처의 머리에서 발하는 빛이다. 

이 그림은 비단이 아니라 모시에 그린 그림이고 김홍도가 거의 마지막으로 그린 그림이다. 김홍도 말년의 깊은 불심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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