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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학지식

일본을 향한 최후통첩, 포츠담 선언

by 소시민스토리 2024.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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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향한 최후통첩, 포츠담 선언

포츠담회담은 이전 회담과는 달리 2명의 정상이 바뀌었다. 1945년 7월 17일 ~8월 2일까지 열리고 있던 포츠담 중간에 열린 총선으로 영국 총리가 처칠에서 애틀리로 교체된다. 루스벨트가 사망하고 후임자 트루먼이 대통령이 되었다. 1945년 7월 26일 포츠담 선언은 8월 2일 포츠담협정 전에 먼저 발표했다.

포츠담 선언은 일본에 대한 최후통첩이었다. 포츠담 선언에는 소련 서기장 이오시프 스탈린은 서명하지 않았다. 카이로회담에 참석한 영국. 미국. 중국이 서명했다. 장제스 중국 통총이 사인은 하지만 참가는 하지 못하고 전신(電信)을 통해 참가했다. 장제스는 중일전쟁과 공산당과의 갈등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포츠담회담에서 논의된 포츠담협정은 유럽에서의 전후 처리 문제였다. 앞서서 열린 포츠담선언에서는 일본에 대한 문제를 해결한 후 포츠담협정에서는 유럽 문제를 구체적으로 논의했다. 

포츠담선언은 카이로선언의 기본전제를 대부분 계승했다. 철저한 파멸을 예고하며 '일본의 무조건 항복' 즉각 수락을 요구했다. 군국주의의 완전한 배제였고 전후에 인정할 일본 영토를 구체적으로 한정 짓는다. 

 

카이로선언에서는 1914년 이후 일본이 점령하거나 빼앗은 영토를 모두 반환한다는 것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이후 승전국으로 일본이 받은 영토는 모두 반환한다는 것이다. 이것에 더해서 포츠담선언에서는 일본의 주권은 혼슈, 홋카이도, 규슈, 시코쿠와 연합국이 결정하는 부속 도서로 제한한다. 전후 일본과 연합국 간의 조약,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일본 영토를 정할 때 기본 원칙이 된다. 

현재의 일본 영토가 포츠담선언에서 정해졌다. 

 

포츠담선언 주요 내용은 일본의 군수산업 금지와 일본군의 무장해제, 연합군의 일본 점령 등이다. 

포츠담선언 이후 독일의 전후 처리 방침이 논의를 위해 포츠담협정이 이루어진다. 독일 패망 후 전범 처리를 앞둔 시기였고 전범 처리 문제가 중요했다.

일본의 전범 처리 문제도 포츠담회담 주요 안건으로 다루어지면서 일본에 대한 엄격한 전범 재판이 명시된다.

 

 

 

포츠담협정에서는 독일과 주변국들의 영토 분할 문제를 논의한다. 소련 서기장 이오시프 스탈린은 소련이 베를린 먼저 차지했다는 것을 과시한다. 미 제33대 대통령 해리 S. 트루먼은 원자폭탄 실험이 성공했다는 메모를 여기서 받는다. 회담 도중에 전해진 소식이었다. 1945년 7월 16일 독일 포츠담에 전보가 도착해서 전쟁부 장관 스팀슨이 받았다. 스팀슨은 트리니티 실험 원자폭탄 첫 실험 성공과 리틀보이 완성 소식을 듣는다.

"리틀보이가 그의 형만큼이나 튼튼하다는 사실에 확신을 가지고 박사는 매우 흥분된 상태로 돌와왔음

그의 눈빛은 롱아일랜드 스팀슨의 고향까지 번뜩이고 있고 그의 고함소리는 여기서 내 농장까지 울리는 듯함"

이런 내용으로 전보를 보냈다. 전보는 강력한 위력의 리틀보이 완성을 '튼튼한 꼬맹이 탄생'에 비유했다. 

 

 

트루먼 대통령은 소련이 점령한 포츠담으로 가야 하는 것이 싫었으며 소련과 손잡는 것이 마땅치 않았고 스탈린을 만나는 것이 껄끄러웠다. 이 와중에 전달된 원자폭탄 개발 성공 메모를 보고 전략적 변화의 가능성을 인식한다. 원자폭탄 성공 소식은 투르먼이 가지고 있던 딜레마를 해결시켜 준다. 궁극의 전략적 무기를 미국만 가지고 있는 셈이었다.

 

일본의 무조건 항복은 전임 대통령 루스벨트의 유산이었다. 1943년 카사블랑카회담에서 처음 등장한 무조건 항복은 추축국에 정치체제를 교체하는 것이다. 미국 내 여론은 일왕의 처벌을 원했다.

미국 여론 30%는 일왕 사형을 찬성했고 70% 이상이 어떤 형태로든 처벌을 하기를 원했다. 

투르먼의 고민은 여론에 따라 무조건 항복을 요구한다면 일본의 저항이 초래할 미군 피해를 염려해야 했다.

포츠담회담에 오기 전까지 포츠담선언 초안에는 스팀슨의 주장이 반영되어 일본 입헌군주제를 유지하고 일본왕실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트루먼 대통령은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없어 마음이 꺼림칙했다. 

원자폭탄 개발이 성공하자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었다. 원폭으로 일본의 항복을 받아낼 수 있겠다 안심했다. 

 

원자폭탄 성공전 포츠담선언 초안에는 일본 본토 상륙 전 최후통첩의 성격이었지만 원자폭탄 성공 후 포츠담 선언은 항복 안 하면 원폭을 투하하겠다는 의미가 담겼다. 

트루먼은 소련과의 관계가 딜레마였다. 미국은 미군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소련의 참전을 원했다. 이제는 더 이상 소련의 참전을 원하지 않아도 됐다. 스탈린은 포츠담회담에서 소련이 종전에 엄청난 기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과시하려는 의도였지만 미국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그러자 스탈린은 일본이 특사를 소련에 보내기로 했다는 비밀문서까지 보여주기까지 하면서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 소련의 움직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스탈린은 자신의 패를 미국에 다 보여주었지만 미국은 원폭 비밀을 숨기고 있어서 기분이 언짢았다. 

원폭개발이 성공하자 기존의 포츠담 선언문의 입헌군주제 보장 문구가 삭제된다. 1945년 7월 26일 포츠담선언에서 소련이 제외된다. 

이제 냉전이 시작된것이다. 

일본 열도 상륙작전 준비, 몰락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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