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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학지식

사라진 추억의 군것질거리

by 소시민스토리 2024.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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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추억의 군것질거리 

국민학교 시절에도 달콤한 군것질의 유혹은 존재했다. 돌아서면 배고팠던 시절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들렀던 문구점에서 최고로 인기 있는 군것질거리 중 하나는 냉차였다. 물을 사 먹을 수 없던 시절 사카린으로 단맛을 낸 냉차는 보리차 2:사카린 1 황금비율을 맞추면 천국의 시원하고 달콤한 맛이었다. 

 

 

현미차, 보리차에 사카린을 첨가하여 얼음을 띄워주면 여름날 시원하고 갈증이 해소됐다. 당시 냉장시설이 부족하여 여름날 최고의 음료수였다. 하지만 위생개념이 부족했던 시절, 컵을 재사용하며 위생 문제의 한계가 왔다. 배탈이 자주 났고 대장균이 있다는 뉴스까지 나온다. 이어서 불량식품 대대적인 단속이 있었고 냉차는 사라졌다. 냉차 한 잔의 가격은 1원이었다. 10원짜리 종이돈을 용돈으로 아버지에게 받아서 아이스께끼, 냉차를 사 먹었다. 

 

 

아이스께끼도 인기가 있었다. 가격은 1개에 5원이었고 현재 화폐가치로는 약 1,000원이다.

아이스께끼를 사서 먹으려고 하면 친구가 군침을 흘리며 한 입만 먹을게 하고 찰싹 달라붙었다. 마음이 약해서 한 입만 먹으라고 줬다가 막대기에서 쏙 아이스께끼가 다 빠져 친구 입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그날 그 친구와 절교한다. 다음날 다시 그 친구를 만나서 어제 일을 까맣게 잊고 신나게 논다.

집안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아르바이트로 아이스께끼를 팔러 다녔다. 아이스께끼 한 개를 팔면 5원이 남는데 그중에서 1원은 아이들에게 줬다. 아이스께끼는 일본의 방언 '아이스캔디'에서 파생된 말이다. 

사카린과 향료를 넣고 섞어서 막대기를 꽂아 얼려 만든 간식이었다. 아이스케끼 1개의 값은 5원이었고 현재 화폐가치로는 약 1,000원 정도였다. 저렴한 가격은 아니어서 아이스께끼도 있는 집 아이들이나 먹을 수 있었다. 

 

 

아이스께끼 열풍 이후 기업에서 대량 생산하게 되면서 점차 사라진다. 고급 아이스크림 시장이 탄생했다. 

1964년에 삼광하드우유맛 아이스크림이 등장했다. 국내 최초로 대량생산한 아이스크림이면서 아이스바(하드)였다. 하드는 소프트아이스크림과 비교하기 위해 생겨난 말이다. 하드와 소프트 아이스크림은 오랫동안 대결 구도를 가졌다. 1970년대 해성처럼 나타난 새로운 아이스크림으로 또 다른 대결 국면을 맞게 된다.

'12시에 만나요 브라보콘 , 둘이서 만나요 브라보콘, 살짝쿵 데이트 해태 브라보콘' CM송과 함께 인기가 치솟았다. 

브라보콘은 100원 정도였고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 있는 집 아이들만 먹을 수 있었다. 당시 ET영화가 인기였는데 콘 바닥에 ET반지가 들어있기도 했다. 

 

 

그 밖의 인기 있는 군것질거리에는 달고나, 번데기, 쥐포, 사탕도 있었지만 가장 인기 있는 군것질거리는 각종 문방구 과자였다. 불량식품이기도 했다. 먹고 배탈이 나기 일쑤였지만 배탈이 잠잠해지면 또 문방구로 달려갔다. 누구도 말릴 수 없었던 군것질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 

1960~1970년대 문구점 군것질거리는 대부분 불량식품이었다. 정부는 불량식품 뿌리 뽑기를 하게 되고 어린이날 유해식품 추방 가장행렬도 하고 불량품과 유량품 비교 전시등을 하면서 불량식품이 점차 사라졌다.

산업이 발전하고 경제 성장이 이루어지면서 점차 좋은 품질의 과자가 생산되고 과자값이 저렴해서 불량식품을 사 먹지 않아도 됐다. 

크리스마스, 어린이날, 군위문품으로 인기였던 과자 선물세트가 있었다. 해태와 롯데의 경쟁은 정말 대단했고 비교해 가면서 과자 사 먹는 재미도 쏠쏠했다. 과자 선물세트에는 과자, 초콜릿, 사탕 등이 골고루 들어있었고 인형이 들어 있는 것은 고급으로 더 비쌌다.  

 

달고나의 추억 

국자를 태워먹던 달고나가 K-드라마 '오징어 게임'으로 세계적인 인기 군것질이 됐다.

국자에 설탕과 베이킹소다를 넣고 불 위에 올려놓고 저으면 갈색으로 변하면서 진득해진다.

 

도마 위에 국자를 탁탁 쳐서 올린다. 별모양, 하트모양 도구로 누르면 모양이 나온다. 모양대로 만들려고 신경을 써서 모양 선대로 자르려다 실패한다. 그냥 포기하고 입속으로 넣고 만다.

설탕의 살짝 탄맛이 쌉쌀하면서 달콤해서 가장 인기가 있었다.  어쩌다가 모양대로 만드는 것을 성공하면 아저씨가 달고나 한 국자 더 만들 수 있는 기회를 공짜로 줬다. 

지역별 달고나의 명칭은 달랐다. 서울, 인천, 경기는 '달고나, 뽑기'였고 강원, 충남, 전북은 '뽑기'라고 했고 부산, 경상도는 '뽑기, 쪽자, 국자'라고 불렀다. 대전, 광주는 '띠기, 오리띠기'였고 제주도는 '떼기빵, 떼기'였고 통영, 울릉도는 '야바구'라고 불렀다.

 

사카린은 1879년 처음 나왔는데 시대에 따라 굴곡이 많았다. 라틴어로 사카린은 설탕이라는 뜻이다. 설탕보다 300배 당도를 내는 인공감미료다. 설탕이 귀하던 시절에 저렴한 가격으로 단맛을 낼 수 있어 인기가 있었다. 1960년대 단맛은 내지만 몸에 좋지 않다고 알려지면서 1977년부터 캐나다의 국립보건방어 연구소가 방광암에 걸린 쥐가 사카린 때문이라며 유해성 논란이 일어났다. 한국은 1990년부터 사용을 제한했다. 간장, 과자, 아이스크림, 껌 등 모든 제품에서 사카린 사용이 없어졌다. 하지만 일부에서 암암리에 사용되다가 적발되어 뉴스에 나오기도 했다. 

2000년 국제암염구소와 미국 독성학 프로그램에서 사카린이 발암물질 항목에서 제외를 시킨다. 

김치, 어육과공품, 시리얼, 젓갈류 이런 곳에서 사카린은 인체에 해가 없다는 정부 발표가 있었고 소주에 다시 사카린이 첨가되고 케첩,양조간장, 잼, 껌 각종 식품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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