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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학지식

만국기가 펄럭이던 가을 운동회 추억

by 소시민스토리 2024.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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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국기가 펄럭이던 가을 운동회 추억 

가을이 되면 전국의 국민학교에서는 운동회를 연다고 들썩거린다. 국민학교 최대의 행사 중 하나였다. 어머니는 아침부터 김밥, 삶은 달걀, 과자, 사이다를 준비하느라 바쁘셨고 학생들은 청군, 백군에 맞춰 옷을 입고 머리띠를 두르고 학교로 향한다. 학교 저 멀리서부터 만국기가 펄럭이는 것이 보였고 행진음악은 계속해서 들렸다.

 

총소리가 '탕'하면 온 힘을 다해 달려서 손목에 등수 도장을 받았다. 등수에 따라 노트를 주거나 치약, 빨랫비누를 주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점점 학생수가 줄어드는 시골 국민학교에서는 3명이 달리기를 해서 모두 다 등수에 들었다. 운동회 필수 종목은 박 터트리기였고 오자미를 던져서 빨리 터트려야 했다. 

아빠 달리기, 엄마 달리기를 하다가 열정이 넘쳐서 넘어지는 학부모가 꼭 한 명은 있었다. 부모님 줄다리기할 때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열심히 하셨다. 저학년의 갑돌이 갑순이 공연이 제일 귀엽기만 했다.

 

규모가 큰 학교에서는 차전놀이를 했고 진 팀은 대성통곡을 하고 울었다. 차전놀이 꼭대기에는 보통 학생회장이 올라갔고 모두 협동해서 이기려고 노력했지만 패자는 생기게 마련이었다. 

운동회 중 하이라이트는 이어달리기였는데 옛날에는 '계주'라고 불렀다. 계주는 일본식 표현이어서 이어달리기로 바뀌었다. 급한 마음에 바통을 떨어트리는 학생이 있었고 자기편이 이기기를 바라며 가슴 졸이던 같은 편들은 속상해서 한숨을 쉬었다.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목청껏 소리치며 승패에 따라 울고불고했던 시절이었다. 청군, 백군은 군대식 문화라고 해서 요즘은 청팀, 백팀으로 바꿔서 부른다.

 

"따르릉따르릉 전화 왔어요, 청군이 이겼다고 전화 왔어요, 아니야 아니야 그건 거짓말, 백군이 이겼다고 전화 왔어요"

"이 세상에 백군없으면 무슨 재미로 해가 떠도 백군 달이 떠도 백군 백군 백군이 최고야"

구경하면서 자기팀 이기라고 열심히도 불렀다. 

 

점심시간이라고  호루라기를 불면 부모들은 돗자리를 깔고 준비한 음식을 꺼내 놓으면 아이들은 허겁지겁 집어 먹었다. 동네에 도시락을 못 싸 오는 학생들도 다 같이 음식을 먹었던 따뜻한 시절이었다.

국민학교 운동회는 그야말로 동네 사람들도 신나 했던 행사였다. 조그만 마을에 학교에서는 지역잔치를 겸하기도 했다.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오셔서 학부모들이 준비한 음식을 나눠드시기도 하셨고 막걸리도 한 잔씩 하셨다. 운동회 때 선생님도 대접하고 어르신들도 대접한다며 시골 학교에서는 동네마다 학부모가 모여 솥단지 걸고 음식을 했었다. 이 동네는 돼지고기를 삶는다, 저 동네는 닭을 삶는다 하며 시끌벅적였고 학생들 운동회 겸 어른들 야유회를 동시에 즐기는 분위기였다. 운동회 때 꼭 한 명씩은 술에 취해 얼굴이 빨개서 집으로 가시는 어르신이 있었다. 어르신들 모시고 음식대접하고 태권도 시범도 하기도 해 경로잔치를 하기도 했다.

 

 

학교마다 다르지만 점심 후에는 국민학교 저학년들은 일명 '꼭두각시 춤'을 췄다. 고학년들은 한 달 전부터 부채춤, 소고춤, 단체춤을 연습했다. 뙤약볕에서 한 달 정도 연습하고 나면 얼굴이 시커메진다. 머리에 족두리를 쓰고 연지 곤지 쓰고 한복까지 입고 부채춤을 췄다. 남학생들은 일명 '가장행렬'이라고 해서 각설이 복장, 귀신복장 등을 입고 팻말을 들고 행진한다. 이거는 어디서 온 문화일까, 무슨 의미였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보통 밥을 먹고 난 오후에 춤을 선보였는데 공연을 잘 볼 수 없었던 시골지역에서는 인기거리였다.

운동회 끝나면 가슴 두근거리는 순간, 점수발표가 있었다. 선생님은 뜸을 들이며 청군 몇 점, 백군 몇 점 하고 외치는 순간 승자와 패자에서 동시에 기쁨과 패배의 소리를 질렀다. 아쉬워서 우는 학생도 있었다.

학교 밖에서는 냉차, 번데기, 각종 불량식품 장사꾼이 와서 팔았고 운동회만큼은 부모님 지갑이 열렸고 양손에 군것질거리를 들고 먹었다. 

 

옛날 운동회는 학생들의 운동회, 경로잔치, 학부모 야유회, 마을 잔치를 동시에 했던 그 지역의 큰 행사였으며 남녀노소 모두 다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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