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잡학지식

원자폭탄을 탑재한 에놀라 게이

by 소시민스토리 2024. 4. 22.
반응형

원자폭탄을 탑재한 에놀라 게이 

B-29는 원자폭탄을  탑재하기 위해 기지가 있는 티니안섬으로 이동한다. 원자폭탄 리틀보이의 부품수송은 명령서 발령 전이었다. 만일에 사태에 대비해 미리 수송했다. 우라늄 포신형 원자폭탄 리틀보이 주요 부품과 핵물질의 절반이 1945년 7월 16일 샌프란시스코 헌터스 포인트 해군기지에서 미 중순양함 USS 인디애나폴리스에 실려서 먼저 출발한다.

시속 53.7Km(속력 29노트)를 유지하며 7월 16일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출발했는데 7월 19일에 진주만에 도착, 7월 26일 티니안에 도착했다. 

 

USS 인디애나폴리스는 배송을 마치고 괌에서 필리핀 레이테로 향하던 중 7월30일 자정 무렵 일본 잠수함에게 어뢰 2발을 맞고 격침을 당한다. 격침당한 줄 모르고 있던 미군은 8월 2일 생존 승무원을 발견했다. 사흘간 발견을 못했다. 격침 당시 승조원 300여 명 사망하고 약 900명이 바다에 표류했다. 결국 구조된 승조원은 총 316명이었다. 식인 상어 공격과 탈진으로 사망했다. 

 

 

뒤늦게 제조된 절반의 우라늄은 수송기로 이동된다. 1945년 7월30일까지 마리아나 티니안 기지에 도착했다. 

1945년 8월2일 예하 부대에 투하 작전명령을 하달한다. 날씨에 따라 작전일을 택일해야 한다. 레이다 조준은 오차가 심했기 때문에 반드시 육안으로 확인해야 했다. B-29의 대피 시간이 필요해서 고고도 정밀폭격을 해야 한다. 특히 바람이 적게 부는 맑은 날씨가 중요했다. 모든 것을 고려해서 8월 6일 출격을 결정한다.

제509 복합비행전대는 원자폭탄 투하 임무를 맡았고 폴 티베츠 대령이 이끄는 원자폭탄 투하 편대가 조직된다. 폭탄투하 임무를 맡은 항공기 이름은 '에놀라 게이'였다. 폴 티베츠 대령의 어머니 이름이 '에놀라 게이'였다. 에놀라 게이와 2대의 B-29가 동반한다. 에놀라 게이는 폭탄을 투하하고 나머지 2대는 측정, 기록을 남긴다. B-29 3대로 이뤄진 편대가 출격한다.

 

 

원폭 투하 폭격기 B-29는 일반적인 B-29와 다른 특징을 가졌다. 

겉에 도장을 하지 않아 반짝거리는 은색의  B-29 실버 플레이트였다. 원자폭탄의 강한 열선에 반사를 할수 있게  광택을 유지하였고 고속비행을 위해 회전 총좌와 장갑판을 제거했다. 

제509 복합비행전대에게 함구령이 내려진다. 하지만 다른  B-29 승무원과 조종사들은 비행기도 다르고 폭탄도 이상하다며 의문을 제기한다. 

비밀이 많은 제509복합비행전대에 대해 다른 B-29 무명병사가 시를 썼다.

 

"하늘 저 멀리 날아가는 이상한 녀석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른다

내일이면 돌아오지만

어딜 갔었는지 우리는 모르겠네

욕먹고 싶지 않으면 아무것도 묻지 마라

이러쿵저러쿵 묻지 말아라

이유는 알고 있는 녀석한테나 들어라

엄청난 짓을 하려는 거야 509놈들은"

 

1945년 8월 6일 르메이는 에놀라 게이를 출격시킨다. 우라늄 포신형 원자폭탄 리틀보이 케이스 안에 2개로 나뉜 핵물질을 장착한다. 100% 조립된 상태는 아니었다. 위력이 강한 원자폭탄이므로 중간에 오발 사고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한쪽의 핵물질(우라늄)을 기폭 시킬 수 있는 장약 없이 이륙했다가 일정 고도에 진입하면 승무원들이 폭탄창에 내려가서 장약을 장착한다. 모든 준비를 마친 원자폭탄은 이오지마 상공을 거쳐 히로시마로 향해 날아간다. 

 

니가타, 히로시마, 고쿠라, 나가사키 4개 후보 도시 중 히로시마로 정해진다. 히로시마 인구는 약 35만 명이었다. 일본 육군의 도시이자 전쟁 기간 병참기지 역할을 했다. 일본 서일본방어 제2총군 총사령부와 보급창이 있었다. 상당수의 공업시설과 작은 조선소가 존재했다.

고쿠라는 인구 약 17만 8천명이었다. 무기 생산량 2위 규모의 육군 조병창과 병기 공장이 있었고 규슈 지역의 철도 중심지였다. 남쪽에는 대형 탄약창이 존재했다.

 

니가타는 인구 15만명이었고 공업도시였다. 기계와 디젤엔진 공장이 있었다. 니가타항에서 1959~1984년 약 9만 명의 재일교포를 북으로 수송한 북송선이 원산과 청진으로 출발했다. 

나가사키의 인구는 약 21만 명이었다. 규슈 지역 선박 물동 중심지이자 공업중심지였다. 전함 무사시가 건조된 미쓰비시 조선소가 있었다. 오페라 나비부인의 배경이 되는 도시다. 나가사키는 네덜란드 상인 거주지이자 서양과의 교역 창구였던 데지마가 있었고 오우라 천주당 등 천주교 성지가 있다.

 

 

히로시마를 선택한 이유는 히로시마에 연합군 포로가 수용되지 않았다는 첩보가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약 20명의 미군 포로가 원폭으로 희생되었다. 히로시마에는 일본 육. 해군 전력이 집중되어 있었고 산업능력을 감소시킬 수 있는 가능지역이었다. 역사. 문화적으로 사라질 유산이 적은 지역이었다. 

히로시마는 타깃으로 선정되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