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지상전, 가카즈 능선 전투
1945년 4월 19일 시점에 미 육군 제24군단 사령관 '존 하지'는 1개 사단을 추가 투입한다. 27사단은 서쪽, 96사단은 중앙, 7사단은 동쪽으로 남쪽으로 해서 진격한다는 군단급 공세를 펼친다. 미군 계획은 엄청난 화력을 퍼부어서 군단급 공세로 슈리성까지 함락시키겠다는 것이다.
공격개시 전에 역대 최대 규모의 화력을 쏟아붓는다. 하지만 여전히 일본군은 강력한 저항을 한다. 엄청난 화력에도 불구하고 기대만큼 효과를 거둘 수는 없었다.
새로 투입된 27사단은 가카즈 능선을 뚫기 위해 전차 대대를 투입한다. M4 셔먼 전차 30대를 기동시킨다. 5번 도로를 따라 가서 가카즈 능선 측후방 쪽의 일본군 저항을 완화시키겠다는 작전을 펼쳤다. 하지만 전차는 진격할 수 없었다. 일본군의 방어진지는 고지대여서 미군 전차의 움직임을 미리 확인하고 있었다. 일본군은 일본 99식 파갑 폭뢰 대전차 지뢰를 매설해 놓는다. 일본군은 기관총. 박격포사격으로 전차와 함께 이동하는 보병을 사격한다. 결국 전차 단독으로 5번 도로 강행으로 돌파하려고 한다. 하지만 지뢰로 선두 전차가 파괴되고 뒤따르던 전차들도 멈추게 된다. 가카즈 능선 앞을 흐르는 하천 바닥이 깊어 전차 기동이 어려웠다.
5번 도로는 교통로가 아니며 반대쪽 사면으로 전차 이동이 불가했다.
게다가 일본군은 길목마다 대전차 공격조를 배치했다. 지뢰로 미군 전차가 멈추면 일본군 대전차포로 공격했고 폭탄 들고 전차로 돌진하기도 한다. 미군 M4 셔먼 전차 30대 중 22대가 파괴된다. 미군 M4 셔먼 전차의 굴욕이었다.
일본군 대전차포는 이전에는 일본군 94식 37mm 속사포를 사용했지만 99식 8cm 고사포(88mm구경)를 사용했다. 중일전쟁 때 중국 국민당군이 쓰던 독일제 8.8cm 속사함포를 노획하여 카피를 해서 대공포로 쓰다가 대전차 전투를 대비해서 철갑탄을 장착했다. M4 셔먼 전차를 상대로 효과를 거두자 일본군은 자신감을 가진다.
이런 상황들은 기동전이 수행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미군 입장에서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피해를 감수하면서 일본군 진지를 하나씩 공격하여 일본군 병력을 소모시켜 2차 방어선으로 후퇴하도록 밀어붙여야 했다. 양쪽 모두 사상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결국 1945년 4월 24일 일본군은 미군의 화력 공격에 견디지 못하고 가카즈 능선에서 철수했다. 오키나와 전투 지상전 1단계에서 일본은 나름 선전한 것이다.
일본군 동굴 요새를 뚫은 방법
일본군의 동굴 요새를 공격하는 방법으로 일반적인 포는 동굴 요새 파괴가 어렵다. 지상에서 쏘는 75mm 곡사포 M1, 105mm 곡사포 M2A1은 효과가 없었다. 전차들은 주 무장을 포가 아니라 화염방사기로 교체한다.
미군 M4 셔먼은 화염방사 전차로 투입된다. '블로우토치 앤 코르크스크류(Blowtorch and Corkscrew)' 전술이다. 블로우토치는 M4 셔먼 화염방사 전차가 동굴 입구를 불이 붙은 토치로 동굴 안을 지진다. 전차가 못 가는 길이면 보병이나 공병이 직접 화염방사기를 들고 가서 불로 지진다. M4 셔먼 전차 화염방사기는 사거리가 76m이며 최대는 약 90m이다. 불길이 닿지 않는 능선은 보병이 직접 화염 방사기를 메고 직접 공격한다.
오키나와 능선의 지형은 고지가 높지는 않지만 곳곳에 일본군 진지가 숨어있었다. 동굴 입구를 불로 지지면 동굴 안으로 유독가스가 퍼지면서 일본군은 동굴에 갇힌다. 그러면 미군 공병 폭파반이 투입되어 폭약 주머니(Satchel Charge)를 던져 동굴 입구를 폭파시켜 버린다. 입구가 무너지면 동굴에 갇혀 죽는다.
공병은 다리.교량 건설 등 시설을 담당하지만 실제 전투에 참여하는 전투 공병이었다. 폭약은 일반 보병부대에서 다루기 힘들며 공병부대에서 담당한다. 오키나와전투 참전 육군 20%는 공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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