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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학지식

오키나와 지상전, 슈리성을 향해 진격하다

by 소시민스토리 2024.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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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지상전, 슈리성을 향해 진격하다

일본군, 미군이 태평양전쟁을 해 오면서 쌓인 노하우의 집약체가 오키나와 지상전에서 펼쳐진다.  미군의 엄청난 화력과 일본군의 처절한 방어, 40만에 가까운 민간인이 한 곳에서 뒤섞여 벌어진 아비규환의 혈전이다.  

 

가미카제 특공대, 의열공정대

 

가미카제 특공대, 의열공정대

가미카제 특공대, 의열공정대 총 10차례 실시된 가미카제 특공 기쿠스이 작전은 오키나와 전투 내내 일본 육. 해군 총 1,900여 대 항공기가 동원됐다. 전쟁막판에는 200평 이상 직물. 방직 공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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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은 오키나와 지상전 1단계로 상륙 후 기동전을 수행하려 한다. 해병대는 위로, 육군은 아래로 향한다. 미 6 해병사단은 요미탄 비행장을 점령하고 최대한 빨리 이시카와 지협을 통과하는 것이다.  미 1 해병사단은 최대한 빨리 동쪽으로 기동하여 오키나와 허리를 끊는 역할을 한다.  미 육군 24군단은  실전 경험이 풍부한 2개 사단을 가지고 있었다. 

 

미 육군 24군단 7사단은 6.25 전쟁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했다. 1953~1971년 동두천 미군기지에 주둔해 비무장지대 방어를 했다. 7사단은 가데나 비행장을 점령하고 동쪽으로 진격하는 것이었고 미 육군24군단 96사단은 7사단을 보호하며 남하하는 계획을 세웠다. 계획대로 미 해병대는 작전을 성공했다. 미 6 해병사단은 상륙하여 이시카와 지협에 예상보다 빨리 도착했다. 미군 계획은 4월 20일 도착예정이었으나 4월 4일 날 도착했다. 

 

미 해병사단은 오키나와 지상전 2단계 오키나와 북부 진격을 한다. 1945년 4월18일 미 6 해병사단은 오키나와 모토부 반도를 점령한다. 하지만 남쪽으로 향하는 미 육군 24군단에 문제가 있었다. 일본군 저항에 직면하기 시작한다. 일본군의 핵심 방어는 오키나와 남부였다. 1945년 4월 2일~4월 8일까지 미 육군 24군단 사상자는 1,500여 명이었다. 오키나와 남부로 진격하기 위한 전투는 이어졌다. 4월 9일 96사단은 슈리성 1차 방어선 가카즈 능선에서 전투에 돌입한다. 7사단은 오우키로 진격하면서 악전고투가 시작된다. 

 

 

가카즈 전투가 벌어진 가카즈 능선 일대는 어려운 싸움이 벌어졌다. 일본군의 피해가 훨씬 컸지만 4월 8일부터 14일까지 미 육군 24군단 사상자는 3,000여 명이었다. 

일본군은 오키나와 지형적인 요소, 일본군의 화력, 일본군의 동굴 요새를 무기로 미군의 막강한 화력을 버텼다. 일본 육군 제32군 사령부가 주둔한 곳은 슈리성이며 미군의 핵심 타깃이다. 

 

미군은 슈리성을 향해 내려가는 전투를 하고 있다.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목은 서해안에는 1번 도로가 있고 

가운데는 슈리성으로 가는 가장 빠른길 5번 도로가 있다. 동해안일대에는 13번 도로가 있다. 미군은 전차 이동이 가능한 기동로가 필요했다. 북부지역보다 오키나와 남부 지형은 비교적 평탄하지만 중간중간에 구릉, 능선, 고지가 계속 이어진다. 미군 진격 방향을 가로막는 횡으로 고지, 능선들이 펼쳐져 있다. 일본군 방어에는 유리한 지형이다. 특히 5번 도로는 좌우로 능선이 위치해 있어 능선을 반드시 장악을 해야만 남부로 진격이 가능했다. 능선마다 일본군 동굴 요새가 위치하고 있었다.  일본군 1차 방어선은 가카즈에서 우에바르 능선이고 일본군 2차 방어선은 슈리성 일대였다.

 

 

굴곡이 심한 지형이 펼쳐졌고 각 고지, 능선의 폭은 500m~2Km였다. 일본군의 고지  방어는 일반적인 고지 전사면에서만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고지 후사면에도 요새를 건설했다. 미군입장에서 전면 능선 점령 후 고지를 확보를 하면 후사면의 일본군이 역습을 한다. 다시 고지를 뺏기는 일들이 벌어진다. 결국 고지 후사면을 공격하려면 전사면과 측방 능선을 함께 장악해야 한다. 장악을 하고 난 후 우회해서 후방을 공격해야 한다. 측방 능선을 장악해야 하는 미군은 더 많은 피해를 입었다. 지형을 활용한 일본군의 방어 전략이었다. 일본군은 고지를 장악해서 화력으로 미군을 공격했다.

 

 

일본군의 화력을 무시할 수 없었다. 기존 전투와는 달리 다양한 화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320mm 98식 9포 24문. 81mm 박격포 96문 총 120문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군 주력 5포병단은 훈련도가 높아 무기 운용의 숙달도가 높았다. 일본군 포병은 동굴 진지에 숨어서 무기를 운용했다.  이것은 미군의 화력으로부터 일본군 포병을 보호해 준다. 동굴 내 포병 진지를 콘크리트로 보강했다. 동굴 요새에 숨은 일본군 화력을 일일이 찾아내어 제거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미군의 어마어마한 화력은 요새 밖에서 움직이고 있는 일본군에게는 엄청난 화력이었지만 동굴 요새에 숨은 일본군에게는 효과가 없었다. 

 

미군은 일본군 동굴 요새를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Sound ranging 사운드 레인징/ 포성 측거' 방법을 쓴다. 

1차 대전 치열한 참호전을 치른 독일과 영국이 개발한 방법이다. 적의 포가 있을 것 같은 방향에 수직방향으로 마이크를 설치한다. 마이크 6개를 한 줄로 설치한다. 적의 포성이 울리면 소리가 마이크에 기록된다. 전선을 탐지 지휘소로 연결을 해서 마이크에 잡힌 소리를 취합한다. 긴 종이에 소리의 진동을 표시한다. 포성이 발생하면 마이크 연결된 침이 진동하여 탐지 신호가 표시된다. 포의 위치는 소리의 속도로 계산한다. 소리는 1초에 343m를 이동한다.

 

사운드 레인징은 격렬한 포격이 이루어지는 경우 쓰기가 어렵다. 하지만 일본군은 동굴 진지에서 포를 쏘기 때문에 대량 사격을 하지 않는다. 사운드 레인징 방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운드 레인징으로 확실한 좌표를 찾아내어 핀 포인팅 해서 포탄 한 두 발로 명중시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미 육군24군단은 군단 포병의 핵심, 155mm M1, M2 평사포 (롱톰), 8인치 곡사포 M1으로 100문 포가 사운드 레인징으로 찾아낸 좌표로 집중사격한다. 추가적으로 바다에 떠 있는 미 해군 함포까지 가세하여 집중사격한다. 미 해군 전함의 16인치 포탄도 사용 가능했고 톤 단위의 포탄을 투하한다.

 

오키나와 전투에서 미군이 쏜 포탄 개수는 105m 곡사포 1,104,630, 155mm 곡사포 346,914, 155mm 평사포 129,624, 8인치 곡사포 19,116이었다. 105mm 곡사포는 화력지원용으로 사용했다. 

해군은 쏜 함포사격은 8인치 함포 32,180, 12인치 함포 2,700, 14인치 함포 16,046, 16인치 함포 4,411 이었다. 미 전후 기록에는 사운드 레인징이 효과적이었다고 평가된다. 

 

미군이 오키나와 전투에서 대포병 사격 노하우를 습득하여 6,25 전쟁에서 활용했다. 1951년 중.후반에 고착된 진지에서의 고지전, 진지전 양상을 띠는데 중국군 포병을 제압하기 위한 대포병 사격을 하게 된다. 대포병 사격의 노하우는 오키나와 전투에서 얻은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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