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잡학지식

한국 해외여행 변천사

by 소시민스토리 2024. 3. 29.
반응형

한국 해외여행 변천사

80년대에는 아무나 해외여행을 갈 수 없었다. 1989년 1월 10일 해외여행 자유화가 된다. 80년대는 관광목적으로 여권이 발급되지 않았고 유일하게 갈 수 있는 방법은 공무, 기업출장, 해외 유학, 해외취업 등이었고 일반 국민들에게 해외여행은 꿈이었다. 해외여행 금지 정책이 국가를 고립시키고 국민의 안목을 떨어뜨린다고 해서 비판이 나오기 시작할 때 해외여행의 빗장을 푸는 계기가 된 사건이 있었다. 

서울 88올림픽이 개최되면서 해외여행 빗장을 푸는 계기가 됐다.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제한적 해외여행 자유화'가 된다. 1983년 50세 이상만 관광 여권 발급이 허가된다. 

1987년에는 45세 이상으로 변경됐다가 1988년에는 40세/35세/30세 이상으로 변경된다.

1989년 이후 연령 제한은 철폐되었다.

80년대 해외 친지 방문은 3촌 이내 친인척만 가능했다. 하지만 해외에 있는 초청자가 항공료 등 전액 부담하고  방문자는 출국 전에 은행에 일정 예치금을 납입한다면 촌수 제한 없이 방문할 수 있었다. 

 

1983년 해외 여행 조건으로 만 50세 이상이어야 하고 200만 원을 은행 예치금으로 맡겨야 했다.

80년대 초반 당시 200백만원은 엄청난 금액이었고 당시 과장급 월급이 50만 원 정도였다. 중상층 가정의 4달 치 월급을 맡겨야 외국을 나갈 수 있었다.

신원조회가 까다로웠고 반공 교육에 해당하는 소양교육도 필수로 받아야 했으며 교육 이수자에게는 '나는 대한민국을 대표한다'는 제목의 소책자를 나누어 주었는데 한국의 역사, 문화, 경제발전, 국제 에티켓과 특히 공산권 주민 접촉 시 유의사항이 담겨 있었다.

 

해외 유학도 까다로운 조건이 있었다. 고등학교 성적 상위 10% 제한을 두었고 여권 유효기간은 1년이었고 복수여권이 아닌 단수여권이었다. 출국을 위해서는 매번 여권을 새로 발급받아야 했다. 

 

해외여행을 제한한 이유는 외화유출을 방지하기 위해서였고 공산권 국가와의 접촉을 우려해서였다. 

고위공무원이 해외로 나갔다가 공산권에 포섭되어 국가 기밀을 넘기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였고 은행 예치금을 넣었다고 해서 부부가 동반으로 해외여행은 갈 수 없었다. 남편, 아내 각각 따로 해외여행을 갈 수 있었다. 70~80년에는 해외여행을 가는 것은 극히 드물던 시절이었고 누구 한 명 해외로 가게 되면 친척, 친구 들 모두가 다 공항으로 몰려와 배웅을 해주었다. 한 사람이 출국하는데 수십 명이 김포 공항에서 배웅하기도 했다. 결국 공항 측에서는 "환송과 환영은 가정에서 합시다"라는 80년대 TV공익광고를 만들었다.

 

1989년 본격적으로 해외 여행 자유화가 시작된 이후에는 김포공항은 항상 포화상태였다. 그래서  2001년에 인천공항이 개항했다.

 

한국 공항 변천사

1953년 4월 9일 여의도에 서울 최초의 국제공항이 있었다. 전쟁의 상흔으로 오막살이 공항이나 다름없었다. 1958년 9월 전국에 홍수가 났고 여의도비행장도 홍수로 범람했다. 툭하면 물에 잠기는 여의도비행장 대안으로 김포공항이 떠오른다. 1958년 1월 김포공항 시대가 시작된다.  1969년 동남아 노선, 1972년 태평양 횡단 미주노선을 취항한다. 약 40년간 한국을 상징하는 공항으로 자리매김한다. 하지만 여객기 100여 대가 뜨고 내리는 제1의 국제공항으로서는 활주로, 시설이 너무 빈약하였다.  결국 1990년 영종도와 용유도 일대를 매립해서 2001년 지금의 인천국제공항이 탄생했다. 이제는 명실상부 세계적인 국제공항으로 성장하고 있다.

 

한국의 최초의 국적기 대한한공에서 처음으로 기내식 비빔밥을 선보였다. 1990년대 승무원이 보온밥솥을 들고 비행기를 탑승했고 밥을 해서 비빔밥을 특별식으로 제공했다. 1996년 C사에서 용기로 된 즉석밥이 출시되면서 일반석 메뉴로 확장된다.  현재 기내식 대표 메뉴는 비빔밥이며 외국인 승객에게도 비빔밥은 인기 메뉴다. 80년대에는 비행기 내에서 흡연을 했고 모여 앉아서 화투를 치기도 했다. 당시 대중교통에도 흡연을 했고 재떨이가 준비되어 있었다. 1995년 국내 최초 항공 기내 금연이 시작된다. 현재 기내 흡연자는 만국 공통 처벌 대상이 된다.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한국의 문화는 많이 달라졌다.1970년대 신혼여행은 온양온천, 수안부 온천이 인기가 있었다. 1980년대에는 경남 부곡 하와이가 탄생해 인기를 끌었다.  새마을호 전세편을 많이 이용했고 '신혼열차'가 따로 있었다. 2박 3일 코스였고 경주 거치고 부곡을 경유해서 가며 토요일, 일요일마다 운행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90년대 중반부터 동남아, 괌, 사이판, 하와이 등 해외 신혼여행 시대가 시작되었다. 신혼여행을 해외로 가기를 선호했던 이유는 '평생 한번 해외여행'를 가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대학생 배낭여행 1세대가 탄생한다. 배낭을 하나 메고 세계로 나가서 기차를 타고 빵 하나로 끼니를 떼우면서 배낭여행하는 것이 대학생들의 로망이었다. 여행사에서 배낭족을 위한 상품들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수학여행으로 해외로 가는 시대가 되었다. 

반응형

'잡학지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학입시, 학력고사의 추억  (0) 2024.03.31
도쿄 대공습 이후 일본 본토 폭격  (0) 2024.03.30
불 폭풍 도쿄 대공습  (0) 2024.03.29
태평양 전쟁과 소이탄 개발  (1) 2024.03.27
삼성과 금성 별들의 전쟁  (0) 2024.03.27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