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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학지식

학창 시절, 새 학기 반장 선거의 추억

by 소시민스토리 2024.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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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새 학기 반장 선거의 추억

각 학교마다 3월초가 되면 반장선거로 시끌해지고 치열한 눈치작전이 벌어진다. 반장 후보로 나가려고 눈치 싸움도 하고 서로 견제도 하면서 반장선거는 학기 초 중요한 행사였다.

어른들 못지 않은 참신한 아이디어와 아이다운 발상으로 기발한 약속을 하는 등 반장선거는 그야말로 어른들의 선거 축소판이었다.

 

반장 됐다고 들떠서 집에 오면 반기는 부모들도 있었지만 난감해하는 부모도 있었다. 예전에는 소풍 가거나 운동회 등 학교 큰 행사가 있을 때는 주로 잘 사는 어머니들이 음식과 필요한 물품을 준비하곤 했다.

잘 사는 집 부모는 학교 행사 준비에 적극적이었지만 형편이 어려운 가정에서는 자녀가 반장이 됐다고 하면 걱정부터 앞서곤 했다. 자녀가 똑똑하고 누가 봐도 반장감이었지만 집안 형편이 넉넉지 못하면 집안 형편을 생각해서 절대 반장 선거에 나가지 않기도 했고 그런 제자가 반장 후보로 나오면 어떤 선생님은 난감해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학교 행사가 있을 때는 부모님의 찬조가 필요한데 형편이 어려운 반장 부모님께는 부탁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주로 학교 운영위원장은 그 마을에서 돈 꽤나 있는 학부모가 했고 그 집 자녀는 공부는 조금 못해도 기를 펴면서 학교를 다녔다. 당시 학교 재정상황이 좋지 못해서 그랬을 것이다. 

 

 

자녀가 반장이 되면 어머니는 꼭 떡을 해서 교무실로 찾아갔다. 또한 환경미화라고 해서 학급에 필요한 물품들(거울, 시계 등)을 구입해 주어야 했다.

1970년대는 아이들 동심이 상할까봐 반장선거를 하지 않았다. 반장선거를 하면 일부 학부모들이 선물 공세를 하는 등 부작용을 우려해서 임명제를 했다. 

중학교, 고등학교에 입학하면 선생님은 가정환경 조사를 했다. 신문을 보는지 냉장고, TV 등 가전제품이 있는지 등 가정환경을 보고 살림이 괜찮은 집의 학생 중 학교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선발해서 반장으로 임명하고 어머니를 모시고 오라고 한다. 1975년 당시 문교부는 당시 국민학교, 중학교에서 학생 간부를 선발할 때 학생들이 뽑는 선거제를 폐지하고 담임이나 학교장이 임명하는 임명제로 바꾸라고 지시했다.

자기 자식에게 감투를 씌워보려는 일부 학부모들로 인해 각종 부조리가 생기기 때문이고 낙선한 아이들의 동심이 상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문교부가 반장 선거제를 폐지하자 학생, 학부모의 반발이 거세졌다. 1980년대부터 문교부가 학급 임원 선거는 학교 재량에 맡기겠다고 발표했고 폐지된 후 선거제가 5년 만에 부활했다.

 

선생님이 반장을 뽑던 임명제 시절에는 성적이 가장 중요시 되었다. 성적이 나쁘면 학급 임원으로 활동할 수 없는 커트라인이 있는 학교가 많았다. 선거제가 부활하고 나서 교사가 원하는 반장과 아이들이 원하는 반장은 다를 수도 있었다. 당시 반장 후보의 고정 멘트는 "내가 만약 반장이 된다면,,,"으로 모든 반장 후보가 똑같이 시작했다. 반장은 막강한 권한을 가지기도 했다. 떠든 사람을 칠판에 이름을 써 놓기도 했고 청소구역을 배분하기도 하고 가끔은 떠든다고 엉덩이를 대걸레로 때리는 반장도 있었다.

 

전교회장 선거는 반장선거보다 더 왁자지껄했다. 전교회장 선거는 잘 사는 부모들 간의 경제력 싸움이 되기도 했다. 학교 앞 분식집은 난리가 났고 각 회장 후보 친구들은 피켓을 만들고 구호를 외치며 교문 앞에서 뽑아달라며 각 후보 간에 자리싸움, 눈치싸움을 하며 유세를 했다. 수고했다며 후배 어머니가 분식을 사주셔서 늦게 집에 가곤 했다. 벽보나 피켓 등은 손으로 하나하나 쓰고 만들면서 뭐가 신나는지 그저 신나기만 했다. 

 

누구를 뽑을까 고민하고 있다가 어느 반장 후보가 햄버거(분식)등을 사주겠다고 하면 그 후보를 찍었다. 양심상 얻어 먹었으니 반장으로 뽑아준다. 요즘에는 음식물, 선물 제공은 후보자 등록 무효 사유가 되지만 예전에는 빵이나 떡볶이 등이 귀한 시절이라 사주는 후보를 뽑기도 해서 부모의 재력이 곧 반장이나 회장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안 뽑은 친구가 반장에 당선이 되어도 딴지를 걸진 않았다.

반장 선고 개표할 때 숫자를 바를 정(正)으로 표시했다. 개표할 때 선거표시 종이를 한장 한 장 펴면서 바를 정(正) 자로 표시해 나갈 때 후보 간 안심과 아쉬움의 탄식이 오갔다.

그때 그 시절 우리반 반장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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