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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학지식

미 잠수함 전과, 시나노 격침

by 소시민스토리 2024.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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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잠수함 전과, 시나노 격침

미 잠수함이 당시 일본의 최첨단 건조 기술이 집약된 항공모함 시나노를 격침시킨다. 시나노는 2차 대전 중에 만들어진 최고의 항모였고 취역 후 최단시간 침몰했고 잠수함에 의해서 격침된 가장 큰 전투함이었다. 

 

태평양전쟁 미 잠수함 아이스크림

 

태평양전쟁 미 잠수함 아이스크림

태평양전쟁 미 잠수함 아이스크림 미 잠수함 미션 라이프가드는 추락한 미군 조종사를 구하는 업무다. 미션 라이프가드 임무로 구조한 조종사는 태평양전쟁 동안 504명의 조종사를 구출했다.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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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모 시나노는 건조 중단과 재개 반복하면서 건조 기간이 약 3년 7개월이었다. 첫 출항 후 17시간만에 침몰한다.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스카 해군 조선소에서 1944년 10월 8일 진수한다. 1944년 11월 19일 취역한다.

※진수(進水)는 완성된 선박을 도크나 선대에 올려 처음으로 물에 띄우는 것을 말한다.

진수를 하면서 배에 이름을 붙이고 축하해준다. 

※취역(就役)은 진수를 하고 시운전, 시험 항애, 예비 훈련을 끝난 후 첫 임무를 부여받고 투입되는 것을 말한다. 취역은 해군의 전투 세력으로 정식 편입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항모 시나노는 완벽한 취역이 아니었다. 내장 공사가 남은 상태였고 요코스카 해군 조선소와 인접한 도쿄만 일대 B-29 폭격에 노출되어 있었다. 앞으로 더 큰 공습이 올 것이라 예고되어 있었다.

안전한 지대로 가기 위해 세토내해 구레 해군기지로 이동을 결정한다. 구레 해군기지 기술자들의 숙련도가 높았다. 1944년 11월 28일 구레 해군기지로 향해 출항을 한다. 

때마침 미 잠수함 발라오급 USS아처피시의 위치는 161Km 남쪽에 위치해 있었다.  잠수함 USS아처피시 1944년 11월 28일 임무는 라이프가드였다. 다음날 B-29 도쿄 폭격이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공습이 취소되었다. 

 

1944년 11월 28일 20시 48분 목표물이 탐지된다. 호위 구축함 3척을 동반한 초대형 항모를 발견한다. 시나노 역시 미 잠수함 USS 아처피시를 발견한다. 요격을 지시하지 않고 속도를 올려서 가던 길을 간다.

잠수함 USS 아처피시는 항모 시나노를 따라 약 3시간 추적한다. 잠수함 USS 아처피시 수상항행 속도는 18노트(시속 약 33Km)였다. 길목에 먼저 대기했다. 1944년 11월 29일 새벽 03시 17분 기다리고 있다가 어뢰 6발을 발사한다. 시나노의 앞부분에 4발이 명중한다. 항모 시나노 함장 아베 토시오는 당황하지 않는다. 같은 방식으로 설계된 야마토급 전함 2번함 무사시는 어뢰 19발을 맞고 침몰했기 때문에 4발 맞은 것은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다. 18노트(시속 약 33Km) 현행 항로를 유지하도록 명령한다. 항모 시나노는 그렇게 가다가 속도가 점점 느려지며 가라앉기 시작한다. 1944년 11월 29일 오전 10시 57분 침몰한다.

 

항모 시나노는 시간에 쫓기면서 급하게 건조된 항모였다. 시나노는 전함 야마토급 3번함으로 만들어지다가 미드웨이 해전에서 아카기, 카가, 소류, 히류를 잃게 되자 항공모함을 보충해야 해서 시나노를 항공모함으로 대개장을 하게 된다.  항모 시나노는 원래 완공 예정일이 1945년 2월이었다. 전쟁이 급박해지자 일본 군령부는 1944년 9월까지 6개월 앞당겨 완공을 명령한다. 그때부터 돌관작업이 이루어진다. 

※돌관작업은 장비, 인원을 집중 투자해 한달음에 해내는 공사

 

하지만 전시 노동력이 부족하고 자재 등이 부족한 상황에서 건조 기간 공기 단축을 위해 선택한 방법은 여러 가지 필수적인 절차 생략이다. 진수(進水)와 취역 (進水) 사이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진수한 다음에 내장공사를 해야 되고 각종 기계, 설비 세팅을 테스트를 해서 문제점을 찾아내고 승조원들의 훈련을 해야 되는 등 최종적으로 진수해서 취역해 나갈 때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 전함 야마토는 진수한 다음에 취역할 때까지 496일이 걸렸다. 항모 쇼카쿠는 801일이 걸렸다. 장갑항모 다이호는 그나마 빠른 시간인 336일이 걸렸다. 

 

 

그런데 항모 시나노는 진수는 10월 8일이었는데 취역은 11월 19일이었다. 40일이 걸렸다. 전함의 수많은 격벽으로 나누어진 격실은 격실마다 방수 테스트가 필수다. 방수 테스트를 생략하고 구레로 출항했다.

구레는 일본 해군의 모항(母港)이다. 주변이 잘 둘러싸여 있어 안전한 천혜의 항구다. 뛰어난 기술진을 보유하고 있어 폭격 전에 서둘러 공사를 하기 위해 강제로 취역시켜서 들 떠밀려 가고 있었던 것이다. 항모 시나노의 완성도와 내구성을 건조 관계자 누구도 장담하지 못했다. 심지어 보일러가 12개였는데 완성된것은 8개뿐이었다. 설계대로 최대 속도 27노트(시속 약 50km)를 내지 못했다. 무리한 상황임에도 군령부에서 닦달하니 어쩔 수 없이 출항을 한 것이다. 호위 구축함으로 제10 전대, 제17구축대 구축함 3척이 따라붙는다.

구축함들은 레이테 해전에 참전했던 구축함들이었다. 이소카제, 하마카제 구축함 2척은 소나마저 고장 난 상태였다. 요코스카 구축함은 귀항 3일 만에  시나노 호위 명령을 받았다.

 

몇 가지 트라우마는 상황을 악화시켰다. 최첨단 장갑항모라고 자부하던 다이호가 어이없이 격침당한 트라우마가 있었다. 장갑 항모 다이호는 항공 가솔린 탱크에서 새어 나온 유증기 폭발로 인해 유폭이 일어났다. 항공 시나노는 가솔린 탱크 주변에 콘크르트를 부어 버린다. 어뢰 대비, 방호력 높이는 공간 장갑, 벌지는 비상시에 물, 연료를 채워 선체 균형을 찾는다. 벌지에도 콘크리트를 채운다. 항모 시나노 배수량은 6,000~8,000톤이 증가한다. 아베 토시오 항모 시나노 함장과 승조원들은 무사히 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시나노 함장과 구축함 함장들 사이에 출항 시간 논쟁이 벌어졌다. 구축함 함장들은 소나가 고장 나서 정상작동이 불가하니 호위 전투기가 따라붙을 수 있게 낮에 출항하자고 한다. 일본 해안 쪽으로 바짝 붙어서 이동을 하자고 주장한다. 아베 함장은 밤이 낫겠다고 주장한다. 밤에 최대한 속력을 높여 구레항까지 곧장 항주 하자고 한다. 아베 함장의 주장대로 해질 무렵 출항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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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11월 28일 밤 9시 무렵 항모 시나노를 발견한 미 잠수함 USS 아처피시가 놓친다. 항모 시나노 전단의 속도는 21노트이고 미 잠수함은 속도가 19노트였다. 항모 시나노 전단은 미 잠수함을 교란하려고 지그재그 항행을 하고 있었다. USS 아처피시는 시나노를 놓쳤지만 세토내해로 갈 것을 예상하고 먼저 위치 선점하러 곧장 수상항행을 한다. 위치를 잡고 기다리고 있었고 시나노는 예상대로 세토내해로 왔다. 

시나노는 처음에 시속 약 39Km(21노트)로 질주하여 엔진이 과부하가 되어 엔진 베어링, 축이 과열되어 속도를 유지 못해 속도가 떨어졌다. 그 사이 USS 아처피시가 길목을 선점할 수 있는 여유를 준 셈이 된다. 

 

1944년 11월 29일 새벽 03시에 항모 시나노 표적과의 거리 3,200m 지점에서 USS아처피시는 잠항을 하고 기다린다. 시나노는 회피기동으로 방향을 틀었는데 하필이면 USS아처피시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다. 

항모 시나노 전단 역시 미 잠수함 흔적을 파악 중이었다. 구축함 함장들은 미 잠수함을 처치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아베 함장은 항공모함이 이동하고 있다는 것은 모를 것이며 조용히 가면 커다란 수송선으로 착각하여 공격을 회피할 것이며 군함인 것을 들키면 안 된다고 하면서 속도를 올려서 가자고 한다.

 

오판이었다. 1944년 11월 29일 새벽 03시 13분 미 잠수함 아처피시와 항모 시나노는 1,200m 사이에서 마주하게 된다. 미 잠수함이 쏜 어뢰 6발이 시간차 공격으로 퍼붓는다. 

4발이 명중한다. 장갑판과 벌지가 만나는 이음매를 강타했다. 항모 시나노를 만들 때 통짜 장갑은 불가하여 연결을 해야 한다. 얇은 판재를 연결하는 금속핀 리벳으로 강판을 연결해 장갑판을 만든다. 당시 물자가 부족해서 리벳의 강도가 약했다. 장갑판은 튼튼했지만 연결 이음매 리벳이 약했는데 어뢰가 이음매 부분을 강타하자 틈이 벌어지면서 주장갑이 뚫렸다.

 

보일러실로 물이 쏟아져 들어가서 침수된다. 보일러실을 가로지른 H빔을 정통으로 어뢰가 강타하자 H빔이 안으로 우그러지면서 보일러실 안쪽 격실이 뚫렸다. 뚫린 침수구획이 증가하게 된다. 보일러실에 물이 차면서 속도는 더 떨어지고 파도가 많이 치며 억수 같은 바닷물이 빠르게 유입이 된다. 치명적인 사실은 격실이 방수가 안 되었다. 방수가 안 되는 격실오 바닷물은 계속 안쪽 격실로 들어왔다. 점점 침수구획이 늘어나며 항모 시나노는 기울어진다. 1944년 11월 29일 오전 10시 25분 35도로 기울어진다. 

 

1944년 11월 29일 오전 10시 36분 아베 토시오 함장은 항모를 포기하고 전원 퇴함 명령을 내린다. 항모에 승선했던 선박 기술자들부터 탈출을 명령한다.  퇴함 전 선박 기술자들을 모아놓고 일장 연설을 한다.

일본의 기술 수준은 이 모양이고 잠수함에게 어떻게 당하는지 보았을 것이다, 미국의 기술을 앞서있다, 여러분들은 먼저 살아나가서 다시는 이런 부실한 배를 만들지 말고 기술개발에 매진해서 이런 치욕을 더 이상 당하지 않게 해달라고 한다. 기술자들을 보내고 아베 토시오 함장은 배와 함께 운명을 같이 한다. 

 

미 잠수함 USS 아처피시는 5번째 작전 투입 중에 시나노를 잡은것이다.

항모 시나노 침몰에 일본 군부는 충격을 받았다. 1944년 12월 28일 <S사건 조사위원회> 진상조사가 착수된다. 위원장은 미카와 군이치 일본 해군 총장이었다.  항모 시나노 생존자, 관계자 소환조사를 하고 나서 미카와 총장은 상당히 난감해졌다. 이 모든 것을 알면서도 항모 시나노를 위험에 내몬 사람은 해군 수뇌부였다.

서둘러 마친 부실공사를 초래하고 필수 테스트 없이 취역, 출항했고 제대로 된 호위 구축함, 항공지원 없이 내보낸 모든 책임 소재는 해군 수뇌부 책임에 난감했다. 

고심 끝에 해군 수뇌부의 책임은 없고 부실공사가 원인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이 사건은 봉인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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