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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학지식

조종사를 구출하라, 미 잠수함 미션, 라이프가드

by 소시민스토리 2024.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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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사를 구출하라,  미 잠수함 미션, 라이프가드

태평양전쟁 초기 미국 잠수함은 어뢰에 문제가 있어서 초반 전과가 초라했다. 어뢰 스캔들 때문이었다. 

 

2태평양전쟁 미군 가토급 잠수함, 어뢰 스캔들

 

태평양전쟁 미군 가토급 잠수함, 어뢰 스캔들

태평양전쟁 미군 가토급 잠수함 미군 잠수함은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태평양후반이 되면 일본에서 동남아시아 연해에 미군 잠수함이 쫙 깔린다. 미 잠수함의 주력 임무는 일본 수송선을 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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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과학의 진수는 컴퓨터였다. 2차 대전에 활용된 기계식 아날로그 컴퓨터는 수백 개 톱니바퀴가 안에 있었고 기계부품들이 방정식 풀이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미국 잠수함에 쓰인 컴퓨터는 Torpedo Data Computer 어뢰 데이터 컴퓨터였다. 어뢰를 발사할 때 자이로스코프 방향 세팅이 중요하다. 보고 있는 방향, 표적 이동 방향, 미 잠수함 진행 방향에 따라서 어뢰를 진행방향과 몇 도로 세팅을 하게 나가야 명중시킬 수 있는가를 계산해야 한다. 이전에는 함장의 감으로 어뢰를 발사했다면 데이터를 입력해서 사격통제를 기계식 컴퓨터로 계산할 수 있게 되었다. 2차 대전에 미국, 영국, 독일 등 Mechanical Computer 기계식 컴퓨터를 활용했다.

미 해군의 마크-1, 마크-1A의 사격통제 탄도계산을 기계식 컴퓨터를 활용했다. 

고차원의 방정식과 데이터 처리 양에 따른 수준 차이는 존재했다.  잠수함 어뢰 사격통제 기계식 컴퓨터에서 앞서있던 나라가 미국이었다.

 

독일은 기계식 컴퓨터 통합제어 장치, 코만도게라트를 독일 전투기 Fw190A에 장착하기 시작한다.

프로펠러 깃의 각도 조절, 공기 연료 혼합비, 흡입공기압, 점화시기 조절을 엔진 출력 레버 하나로 조절하면 코만도게래트로 연동이 된다. 따로따로  조종하지 않아 복잡한 전투기 조작이 단순해진 만큼 조종사들은 공격에 집중할 수 있었다. 엔진 출력을 위해 연료 연소에 필요한 산소를 흡입, 공급하는 과급기 터빈 블레이드의 각도 조절이 필수이다. 코만도게래트 이전에는 조종사가 하나하나 여러 개의 레버, 버튼을 조작해야 했다.

격렬한 공중전 와중에 일일이 조작한다는 것은 매우 효율성이 떨어진다. 기계식 통합장치로 자동 통합제어가 된것이다.

 

미국은 어뢰 스캔들 개선 이전에는 어뢰 공격 성공률은 10~20% 수준이었다. 1944년 초 어뢰 스캔들 문제가 개선되자 정교한 컴퓨터가 연동이 되면서 1,000m 이내 어뢰 근거리 명중률은 50% 이상이었다.

미 잠수함이 활약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있었다.

1944년 7월 사이판을 점령하면서 사이판 타나팍 항구에 미 해군 전진기지에 담수함 발진 기지를 건설한다.

이전에는 진주만에서 출격을 했다. 진주만, 호주 등 원거리 출정으로 미 잠수함의 가동률은 좋지 않았다.

잠수함을 대량 생산하면서 사이판 기지에 잠수함을 대거 배치한다. 이제부터 일본에게는 악몽의 시작이 되었다. 1944년 한 해 동안 미국 잠수함이 격침시킨 일본 상선은 529척 약 230만 톤의 일본 상선을 수장시킨다. 

태평양전쟁 동안 수장된 일본 상선 1,314척 중 40%가 1944년에 격침된다.

사이판 기지 건설 직전까지 일본은 1943년 월평균 원유 수송은 약 150만 배럴이었다. 1943년 11월 미 잠수함이 활약하면서 150만 배럴에서 30만 배럴로 줄어들게 된다.

원유뿐만 아니라 식량, 자원도 수송이 줄어들게 된다. 일본 1943년 식량, 전략물자 수송 1,640만 톤이었는데 1944년에는 1,000만 톤으로 줄어들게 된다. 태평양전쟁 기간 격침된 일본 상선은 62%는 미 잠수함의 전과였다.

 

 

태평양 전역에서 미 해군 항공기가 추락했고 미 잠수함은 미 조종사 구조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많은 조종사를 구출한다. '미션 라이프 가드'는 바다에 추락한 조종사를 구조하는 것이다. 당시 미 조종사들 별칭이 주미스(Zoomies) 였다.

※주미스(Zoomies)는 빙빙 돌거나 점프하는 등 마구 날뛰는 강아지의 행동에서 유래됐다.

미 잠수함의 주임무는 적 함정, 상선을 공격해서 물자, 병력 수송을 방해하는 것이다.  필리핀 게릴라부대에게 문자지원하는 것도 임무였다. 해병대, 육군 정찰대를 은밀하게 이동시키기도 했고 일본군 기지 및 지형 사진 촬영, 정찰도 한다. 여기에 더해서 라이프 가드 임무가 주어졌다.

조종사 손실은 전쟁의 양상을 바꿀 수도 있는 문제였다. 라이프 가드는 손실을 줄이려는 노력에서 시작된 것이다. 2차 대전 동안 미 조종사 전사자는 총 10만여 명이다. 2차대전 중 사망한 미군은 총 40만 5천 명이다. 

2차대전 미군 전사자 25%가 조종사였다. 미국은 엄청난 물량에 비해 인적자원이 부족했다. 1943년 중반 미 전시경제체제가 가동되면서 물량은 증가하는데 항모 기동작전이 힘들 정도로 조종사 부족에 시달렸다. 

전시경제 체제에서 미국의 물자 생산량은 일본의 15배이지만 1945년 인구는 미국 1억 4,000만 명이었고 일본은 7,100만 명이었다. 

 

 

미 잠수함의 라이프 가드 임무

 

찰스 A. 록우드 미 해군 소장이 1943년 2월 태평양함대 잠수함부대 사령관으로 부임한다. 대단히 창의적이고 혁신적이고 파워풀하고 열정적이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었다. 강한 리더십을 가지고 있었지만 수병들에게는 자상함을 겸비했다. 별명은 '엉클 찰리'였다.

부임 이후 대대적인 잠수함부대 개혁을 추진한다. 어뢰 스캔들을 공론화하여 개선한다. 미 잠수함 교리 변화를 주어 공세적인 교리로 만들기 시작하면서 미 잠수함을 사이판 해군 전진기지에 배치를 추진한다. 

잠수함 수병들의 작전 귀환 후 2주간의 휴식, 회복 제도 등 잠수함 승조원 처우를 개선한다.

미 잠수함부대를 완전히 개혁한 인물이었다. 때마침 미 잠수함의 수적 증가로 새로운 임무 수행 여력이 확보가 되면서 라이프 가드 임무를 할 수 있었다. 1944~1945년 후반에는 일본 상선이 급감하며 타깃이 감소했다. 1943년 중순 미 잠수함부대 라이프가드 임무가 개시된다.

 

 

작전을 앞둔 TF50.1 기동전단 기함 에식스급 항모 요크타운 CV-10의 사령관은 찰스 포우널이었다. 1943년 여름 마커스섬(미나미토리섬)을 폭격할 예정이었다.

이때 라이프가드를 요청한다. 

미나미토리섬은 산호초로 둘러싸여 있고 도쿄에서 약 1,800Km 떨어진 현재 일본의 최동단 섬이다. 섬 둘레 약 6Km, 면적 1.51㎢ 으로 이루어진 삼각형 모양의 섬이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망망대해에 떠있는 섬으로 조종사가 바다에 빠지면 살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작전에 앞서서 찰스 포우널은 찰스 A. 록우드를 사무실로 부른다. 사무실로 갔더니 찰스 포우널 뒤로 조종사들이 서 있었다. 찰스 포우널은 라이프가드 임무를 요청했다. 하지만 찰스 A. 록우드는 거절한다. 일본 항공공격에 미 잠수함이 취약하고 아군 항공기도 미 잠수함 공격 가능성이 있고 일본의 해안포 공격 방어책이 없다는 것이 거절한 이유였다.

 

찰스 포우널은 "라이프가드 임무는 단순히 조종사를 구하는 것만 아니라 조종사 사기를 진작시킬 수 있는 대단히 중요한 임무다"라면서 뒤에 있는 조종사들을 보라고 한다. 조종사들은 찰스 A. 록우드에게 간절한 눈빛을 보낸다. 찰스 A. 록우드는 작전을 수락하며 최초의 라이프가드 작전을 하게 된다.

하지만 첫 번째 작전에서는 전혀 필요가 없었다. 이어서 1943년 9월 미 해군 조종사들의 폭격 작전지는 길버트 타라와 작전에서도 라이프가드 임무가 지원되지만 아무 성과도 없었다. 이유는 미 조종사들이 추락한 폭격기가 없어서 필요가 없었다. 

 

미션 라이프가드 최초의 실행은 1943년 10월 5~6일이었다. 마셜제도 인근 웨이크섬 폭격에 나선 TF14 기동전단의 라이프가드 임무에 발라오급 잠수함 USS스케이트가 나선다. 일본군의 해안포 공격과 항공기 기총소사 속에서 어렵게 작전을 했지만 조종사 6명을 구조한다. 윌리스 맥슨 미 잠수함 USS스케이드 중위가 구조 임무 중에 적의 총격에 부상을 입고 전사한다. 희생과 어려운 작전 임무 수행에 대한 합당한 보상을 받는다. 유진 B. 맥키니 스케이트 함장 소령은 해군에서 두 번째 등급의 훈장,  네이비 크로스 해군십자훈장이 수여된다. 

 

당시 굉장한 의미가 있었다. 해군 내에서도 가장 한직이 잠수함이었다. 잠수함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적함 격침이다. 상대적으로 라이프가드 임무는 중요도가 낮았다. 그럼에도 잠수함 임무는 가장 위험한 임무였다.

태평양전쟁 동안 미 잠수함 승조원 약 16,000명 중 3,500여 명이 전사했다. 미 잠수함 임무 가운데 가장 위험한 임무는 라이프가드 임무였다. 훈장도 받고 성과를 내기 시작하면서 잠수함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시작한다. 대단히 숭고하고 중요한 임무로 인식 변화된다. 

 

라이프가드 임무는 매우 위험하고 어렵다. 조종사들은 요새화된 섬을 무력화시키는 항공 폭격을 섬 주변에서 하다가 추락하면 섬 주변에 떨어진다. 구조하기 위해  바다 위로 부상해야 하는 미 잠수함은 적의 해안포의 타깃이 되거나 일본 항공공격 타깃이 되기 쉬워진다.  나중에는 잠망경만 내놓고 수중 항행을 한다. 

추락한 조종사가 왼손에는 구명보트를 잡고 있고 오른손으로는 잠망경을 껴안고 있으면 이 상태로 잠수함이 안전한 해역까지 이동한다. 안전지대에서 부상한 다음 구조한다. 조종사가 망망대해에 떨어지면 구조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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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014년 개봉작 <언브로큰>은 실존모델 루이 잠페리니는 1939년 베를린 올림픽 육상선수 출신이다. 

미 육군의 주력 폭격기 B-24 리버레이터 승무원으로 참전했다. 망망대해로 떨어져서 태평양에서 47일간 표류한다. 마셜제도에서 표류하던 중 일본군에게 발각된다. 

 

 

추락한 조종사들을 구조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임무였다.  미 잠수함과 전투기가 함께 이동하면서 공중지원으로 이러한 난관을 해결한다. 미 전투기가 일본 항공공격으로부터 아군 잠수함을 보호하면서 상황이 나아진다. 수상관측비행기 'OS2U 킹피셔'가 추락 조종사를 수색한다. 미군의 제해권과 제공권 장악으로 라이프가드 임무가 한결 수월해진다.

 

잠수함은 항공기 공격에 취약하다. 잠수함이 적 항공기를 발견하고 물속으로 잠항하는 시간은 (2차 대전 당시 미 잠수함) 긴급잠항 30초~1분이 소요된다. 이 시간에 항공기가 공격한다. 

 

라이프가드 임무를 하기 위해 사전준비로 조종사, 잠수함, 승조원에게 특정지점 포인트 코드를  미리 부여한다. 미 조종사가 특정지점 포인트 코드로 SOS 무전을 발신하면 찾는 방식이다. 포인트 코드 방식을 알아차린 일본군이 역으로 무전을 발신해서 미 잠수함을 유인하는 경우가 생긴다. 미군은 해결책으로 특정 지점 포인트 코드를 일본인이 발음하기 어려운 알파벳 L 받침의 단어를 선택한다. 

 

미 조종사에게 사전 지급되던 장비는 손거울, 안경, 금속이다. 일종의 비콘역할을 해줄 수 있는 물건들이다. 

※비콘(Beacon)은 위치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신호를 주기적으로 전송하는 기기

비상용 구명보트에 반사경과 무전기를 부착한다. 자가발전식 무전기(수동식 자력발전 라디오 깁슨 걸 SCR-578)로 풍선이나 연으로 안테나를 공중으로 띄워서 무선 송신거리는 최소 30마일(약 48KM) 최대 300마일( 약 480Km이다.

무전기의 애칭은 '깁슨 걸(Gibson- girl)이다.  19세기~20세기 초 미국의 패션 트렌드였던 깁슨 걸 스타일이다. 미국의 1세대 신여성을 깁슨 걸로 불렀다.

 

잠수함은 전략적 가치를 인정받으며 양적으로 증가된다. 실전에서 문제점을 파악하며 성능을 개선시켰다. 

미 잠수함은 태평양전쟁에서 미국의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1939년 기준으로 보면 1위 영국, 2위 미국, 3위 일본으로 세계 상선대국이었다. 상선대국은 전쟁을 거치면서 몰락하게 된다. 1943년 총 176만 톤, 1944년 총 372만 톤, 1945년 8월 항복, 총 187만 톤의 상선이 격침된다. 

 

 

일본은 과달카날 전역에서 패하며 1943년 위기감을 느낀다. 1943년 말 일본 해군 해상호위총사령부를 결성하고 호송선단을 조직한다. 하지만 문제에 봉착한다. 호송선단 조직의 기본 구축함, 호위함 등 대잠 잔투함이 부족했다. 1943년 초반 가까스로 철수한 과달카날 전역과 비스마르크 해전이 벌어진 뉴기니 전역에서 너무나 많은 일본 구축함이 대량으로 소모되었다. 호송선단에 차출할 함정들이 부족해졌다. 1개 호송선단에 차출 가능한 호위 구축함은 2~3척 정도였으며 구식 구축함, 해방함으로 호송선단을 조직해야 했다.

※해방암은 대잠 능력을 갖춘 호위함으로 구축함보다 작은 함정이다.

 

미국은 독일을 상대하면서 독일의 'Wolfpacks 이리떼' 전술을 배워왔다. 집단 공격이 특징으로 좌우측에서 집단으로 공격하니 일본 함정은 피해가 컸다. 

레이다 기술이 부족한 일본 함정들이 미 잠수함 탐지가 불가능했다. 가장 심각한 약점은 일본 음파탐지기 소나 기술이 형편없었다. 음파탐지기는 물속에서 마이크역할을 한다. 물속에서 잠수함이 내는 여러 가지 소리, 스크류 프로펠러 돌아가는 소리, 엔진음 등으로 물속에서 마이크를 대고 잠수함 소음을 포착한다. 패시브 소나(능동 소나)이다. 

액티브 소나(능동 소나)가 보급되어 수상함정에서 음파를 발사해서 반사되어 나오는 음파를 분석하여 방향을 찾아낸다.  소나 기술은 영국이 가장 앞서갔다. 1943년 영국 액티브, 페시브 소나 기술로 독일 유보트 격침을 증가시켰다. 

 

일본은 이런 기술들이 부족했고 대잠수함전의 기본 무기 폭뢰가 부족했다. 일본 시무슈급 해방함에 폭뢰는 18발이 탑재되었다. 

영국 헌트급 구축함 폭뢰는 40개가 탑재되었고 영국 P급 구축함은 폭뢰가 70개 탑재되었다. 

일본 해방함의 대잠능력이 확연히 떨어졌다. 일본은 나중에서야 소나 기술을 개발하고 음파탐지병 양성에 나섰다. 

 

1944년 초 잠수함전 판세는 완전히 미국으로 넘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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