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년대 주산 학원 열풍
1970~1980년대 취업 필수 스펙이 '주산'이던 시절이 있었다. 주산 세계대회 우승을 한국이 휩쓸던 그때 그 시절 속기, 웅변 등 사교육 열풍까지 지금 못지않은 배움의 광풍이 있었다. 밤새 주판알을 굴리며 두꺼운 주산 문제집을 풀고 점수를 매기며 취업을 준비했다.
가름대를 기준으로 아래에 있는 알 하나가 숫자 1일 뜻하고 아래는 4개의 알이 있어 숫자 4를 뜻한다.
가름대 기준으로 위에 있는 알 1개는 숫자 5를 뜻한다.
주판의 생명은 스피드였다. 1970년대에는 초등학교 교과 과정에 주산이 포함되어 있었다. 학원 수도 전국에 7,000여 곳이 넘었고 주산을 가르치는 과외도 있었고 주산국가 시험도 있었다. 합격률이 30% 내외였다.
보통 3명 중 1명만 합격할 수 있는 경쟁률이 치열한 시험이었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주산 세계대회에서 상위권을 휩쓸었고 주산 학원이 많던 1980년대만 해도 국제대회만 나가면 1위를 독차지할 정도로 주산 강국이었다.
1976년 국제계산 기능올림픽에서 서울여상 3학년 이춘덕 씨가 출전해 최고 12단까지 더하기, 빼기, 곱하기,나누기 20문제 정답을 1분 45초 만에 맞히고 우승해서 당시 스타로 떠올랐다.
주산을 하면 사고력, 끈기, 집중력, 통찰력 등을 키울 수 있다고 해서 인기가 많았다.
당시 취업을 하려면 주산능력은 필수였다. 당대 최고의 직장인 은행에 취직할 수 있어 주산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대한민국 경제 성장기였던 80년 대 당시 최고의 직장은 은행이었다.
은행에 취업하려면 2급 이상의 주산 자격증이 필수였다. 주산의 급수는 1급부터 7급까지 나뉘어 있었다. 주산 자격증은 확실한 취업 증명서이면서 취업최종병기라고 할 수 있었다.
당시 외국관광객의 서울 방문 필수코스는 은행이었는데 주판 쓰는 모습을 보려고 은행을 관광코스로 넣을 정도라고 한다.
은행 취업이 인기였던 이유는 일단 은행원은 대출을 낮은 이자로 받을 수 있었다. 월급도 괜찮았고 처우가 좋았으며 후생복지가 좋았다. 집을 구입할 때 장기 저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금융분야뿐만 아니라 일반 회사 회계에서도 필수였다. 일반 가정집, 슈퍼, 식당 등에서도 주판으로 계산을 했다.
주산이 컴퓨터를 이긴 사건이 있었다. 1992년 대통령 선거 개표도 주산으로 했다. 1992년 12월 제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전국 15개 시, 도에 300명씩 총 4,500명의 주산 유단자를 소집한다. 은행원, 교사, 상업계고등학교 학생 등 전국의 주산 유단자들이 몰렸었다. 이들에게 대통령선거 득표수 집계를 맡긴다고 하여 화재가 되었다.
컴퓨터 집계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었다. 하지만 개표 과정에서 불필요한 오해를 없애기 위해서 수동으로 집계를 했다. 전 대선인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컴퓨터로 개표를 했었는데 부정선거 논란이 발생하여 선관위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가 높았기 때문이었다. 제13대 대통령 선거가 민주화의 결실로 16년 만에 다시 치르는 직선제 선거였는데 투표용지 개표과정에서 컴퓨터 부정 시비가 일어났다. 그래서 선관위가 5년 뒤 또다시 부정 의혹이 일어날까 봐 전국 선거 개표 작업을 모두 주산으로 하였다.
1990년대까지 주산이 컴퓨터만큼 신뢰를 받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전자계산기 등장
1973년 한국샤프가 일본에서 전자계산기를 들여와서 처음 시판했을 때 주산의 경쟁력은 퇴보하기 시작한다.
편리한 사용으로 인기를 끌었고 70년 말에는 대만제 가격이 저렴한 제품까지 들어와서 주판의 입지가 더욱 좁아졌다. 주산은 학생들에게 인기가 없어졌고 학원도 줄어들면서 주산경기 대회도 없어졌다.
컴퓨터학원이 생기면서 주산학원은 점차 자취를 감추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상업고등학교 정규과목에서 주산과정이 사라졌고 2001년에는 국가기술자격증 시험에서 주산과 부기 시험을 폐기했다. 70~80년대 유행했던 속독학원, 웅변학원, 서예, 타자, 한문학원들이 있었는데 점차 사라졌다.
컴퓨터시대가 되면서 밀려난 주판이 일본에서 다시 배우기 열풍이 일어났다. 일본에서는 아직도 주산이 인기가 있다. 일부 학교에서 주산을 가르치는 곳이 있고 일본의 한 도시는 4백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 주판의 최대 생산지가 있다. 일본 전국주산경연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 전역에서 주판고수들이 모여들기도 한다.
일본도 1970년대 초기까지 일본의 모든 초등학생들은 주산을 배웠다. 계산기가 도입된 후에 사양되는 듯 하더니 최근 들어 주판을 사용하면 창의력과 논리력을 키울 수 있다고 하여 방과 후 수업으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일본은 아날로그 수기 방식을 선호하는 문화가 있다. 디지털 계산기와 아날로그 주판이 합쳐진 퓨전 계산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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