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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학지식

일본 제국주의 패전, 필리핀해 해전

by 소시민스토리 2024.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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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주의 패전, 필리핀해 해전 

미군과 일본군은 필리핀 해 해전에서 맞붙을 준비를 하고 있다. 일본군은 원하는 장소, 방식으로 싸울 수 있어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미군은 지옥에서 온 고양이 'F6F 헬켓'을 준비한다.

필리핀해 해전 서막

 

필리핀해 해전 서막

미군 사이판 공격 1944년 3월 30일 미 해군의 팔라우 대공습으로 팔라우 일본군은 초토화되었고 일본 연합함대 참모장 '후쿠도메 시게루'는 필리핀으로 비행기를 타고 퇴각하다가 폭풍우를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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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대표적인 후기형 제로전투기 A6M5 52형이 나왔다. 

 

제로전투기 52형과 F6F 헬켓의 전력 비교 

  재로전투기 52형 F6F 헬켓
엔진출력  1,130 2,000
최고속력 565Km/h 618Km/h
최대항속거리 1,920Km 1,536Km
무장 20mm 기관포 2문, 7.7mm 기관총 2문 12.7mm 중기관총 6문
생산 대수 약 6,000 12,275

 

방탄 설비에는 더욱 격차가 벌어진다. F6F 헬켓의 방어력은 대단했다. 제로 전투기 52형은 항속거리를 위해 날개에까지 연료주입을 해서 1발만 맞아도 불에 탄다. 개량형인데 초기형보다 성능이 저하되었다. 

 

미군은 F6F 헬켓 성능의 우위 뿐만 아니라 전술적면에서도 일본을 능가하기 시작한다. 핵심적인 계기가 된 것이 '아쿠탄 제로'였다. 1942년 6월 미드웨이 공격 당시 일본의 2단계 작전 알류샨열도까지 동시 공격할 때 일본 항공모함 류조에서 출격한 제로전투기 일부가 알류샨열도 아마크낙 섬  미 해군기지 '더치하버'를 공습하고 귀환하다가 제로전투기 1개 편대가 미 비행정 PBY 카탈리나를 공격하다 역공을 받아서 항공모함까지 돌아오지 못하다가 일본이 비상착륙장소로 정해둔 화산섬 아쿠탄섬 늪지대에 불시착한다. 기체가 약하다 보니 동체가 박살 나면서 조종사 '고가 타다요시'는 즉사하고 제로전투기 21형은 거의 온전한 상태로 방치되었다.

 

 

미군 정찰기가 수색을 하다가 1942년 7월 10일 잔해를 발견한다. 거의 온전한 제로전투기를 실물을 입수한 것이다. 제로전투기를 아쿠탄 제로에서 미 해군 항공기지 노스 아일랜드로 운반한다. 비행기를 고쳐서 비행 가능 상태로 복원해낸다. 1942년 9월 20일, '아쿠탄 제로' 테스트 비행을 개시한다. 24번의 테스트 비행으로 제로전투기 장단점을 샅샅이 분석하여 약점을 발견한다. 

 

당시 공중전에서 선두자리를 굳걷이 지키고 있던 나라는 독일이었다. 2차 세계대전 개전 시점에서는 독일이 선두를 달리고 있었는데 이후 영국이 교전을 통해 배우면서 서로 발전하는 관계가 된다. 당시 독일이 사용한 전법은 '로테와 슈밤'전술이었는데 2차 대전 이전 실전경험을 쌓아 가능했다. 스페인내전 (1936~1939)에 독일 공군 파견대 콘도르군단이 참전한다. 공중전을 치러보고 기존 편대 전술의 문제점을 간파한다.

 

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독일 전투기 편대는 전투기 3대가 1조였다. 3대가 삼각형으로 편대장은 중간에 양옆으로 2대로 쫒아간다. 미국, 영국 등 거의 모든 국가에서 채택하고 있었다.

2차 대전 이전에는 전투기들은 주로 덩치가 큰 폭격기를 상대해야 되기 때문에 많이 맞춰야 된다. 기관총 화력이 약했던 당시 전투기는 전투기 3대의 편대 공격이 승산이 컸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3대 1조 비행 대행 유지가 필수였다.

 

독일은 3대가 대형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으며 적기가 나타나면 놓치게 되고 선회전까지 하는 것은 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독일 공군 에이스 최초의 100대 격추 파일럿,  '베르너 묄더스'는 전투기 2대 1조의 편대 '로테'를 만들고 2개 로테가 모인 편대형 '슈밤'을 만든다. 미국에서는 '포 핑거 포메이션(four finger)'이라 부른다.

슈밤 대형으로 가면 적기가 나타나면 '로테' 편대 단위로 전투한다. 적기 1대가 오면 편대장기 옆의 요기(윙맨)가 급선회해서 적기 뒤로 붙어 공격한다. 넓은 시야가 확보되고 멀리 적기 접근 발견이 가능해진다.

독일은 이 방법으로 영국 본토 항공전, 2차대전 초기 프랑스 침공 전 당시 로테와 슈밤 전술로 프랑스, 영국 공군을 유린하였다.

 

미국은 영국 본토항공전 상황에 주목하고 있었다. 독일 전술을 배워야 겠다고 판단하고 1941년 중반 미군 항공대는 독일식 '핑거 포 포메이션'을 도입한다.

 

일본군은 전투기 3대를 1개 소대로 유지하다가 중일전쟁 실전경험으로 깨달음을 얻는다. 유연한 방식의 전투기 3대, 1소대를 고안한다. 전통적인 편대는 비행 간격이 좁았지만 대형으로 펼치면서 유연하게 운용한다. 조종사 기량이 뛰어났던 개전 초기에 '로테와 슈밤' 못지않은 활약을 펼쳤다. 다양한 전법으로 제로전투기 신화를 만들어 낸 것이다. 하지만 과달카날, 솔로몬, 뉴기니 전투에서 일본의 유능한 전투기 조종사들을 많이 잃고 나서 숙련도가 낮은 조종사들에게는 어려운 대형이었다. 유연한 편대 전술도 점점 사라지고 '포 핑거 포메이션' 비행 전술로 미군이 우위를 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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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파일럿을 상향 평준화시킨  또 다른 비결

 

포 핑거 포메이션을 적용하면서 미드웨이 해전 전후에 등장한 태치 전술(Thach)이 등장한다. 

미 해군 제3전투비행대대장 '존 S. 태치'는 일본군 제로전투기기 보다 화력이 좋은 AN/M2 중기관총 '캘리버 50' 화력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생각해낸다. 

2대, 2대로 날고 있는  와일드캣 뒤로 제로전투기가 따라 붙는다면 와일드캣이 서로 교차 후 엇갈리는 와일드캣 A, B 중 반대로 선회한 와일드 캣 B가 제로전투기를 정면으로 공격한다.

와일드 캣은 선회전 성능이 떨어져서 뒤로 급선회해 제로 전투기 꼬리 잡기는 힘들다. 정면에서 맞붙어 공격하는 것이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태치 전술이 통했다. 과달카날 전역 태치 전술이 보편화되고 F6F 헬캣이 등장 무렵'히트 앤 런' 전술이 정교화되었다. 아쿠탄 제로 테스트 비행으로 공략법을 확보하고 있었다.

캘리버50으로캘리버 50으로 공격하고 최대한 빨리 고도를 확보하여 다시 급강하하며 캘리버 50으로 공격하고 사거리 밖으로 이탈한다는 방식을 철저히 숙지시키면서 약점이 완전히 노출된 제로전투기는 큰 타격을 입기 시작한다. 

 

F6F 헬캣에는 보조 연료 탱크 내부는 고탄성 고무 주머니로 설계되어서 연료를 쓰면 내부의 고무 주머니도 수축된다. 방호력 강화로 연료 탱크 방탄 설비는 기본이었다. 연료 탱크가 피격이 되면 연료가 새는 것이 아니라 자동으로 구멍이 막히는 자동방지 장치가 있었다. 

 

사이판을 점령한 미군은 불시착하는 조종사들은 필사적으로 찾는다. 사이판 해군기지 건설오 비행정, 잠수함으로 필사의 구조를 한다. 반면에 일본은 조종사 구조를 할 수 없었다.

필리핀 해전 전투기 조종사들은 훈련기간은 길어야 6개월, 짧으면 2개월이었고 팔라우에서 퇴각한 일본 연합함대 근거지는 타위타위섬이었는데 비행장이 건설되지 못했다. 훈련을 못하는 상황이고 항공모함에서의 이, 착함 훈련마저 미군 잠수함의 활약에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미군 조종사는 '건 카메라(gun camera) 영상으로 전술 분석을 하고 있었다. 

 

미 해군 제16전투 비행대대 중위 '알렉산더 브라시우'는 루마니아계 이민자 출신이다. 태평양전쟁 기간 총 19대를 격추했고 1944년 12월 말에 격추당해서 필리핀에 불시착한다. 필리핀 게릴라 부대에서 활동하다가 미국 귀환 후 전쟁 영웅으로 부상한다.  2015년 97세로 작고하신다.

 

필리핀 해전에서 일본 조종사 사망은 445명이었다.

1944년 6월 19일 절치부심하며 재건한 일본 제1기동함대가 출격한다.그러나 미군의 철저한 분석과 대비에 완전 몰락한 제로전투기는 일본 연합함대에 패전이 그림자로 닥쳐오고 있었다.

 

 

사이판 서쪽 마리아나 해역으로 미 함대가 진입한다.  드디어 결전이 다가왔다.일본 1차 공격대 64대, 2차 공격대 128대가 출격한다. 승리를 확신하며 비상했지만 F6F는 무자비했다. 제대로 날아간 일본 2차 공격대 109대 중 95기가 추락하고 만다. 미국은 이것을 '칠면조 사냥'이라고 부른다. 

3차 공격은 본대 을부대 제2항공전대에서 일본시각 6월 19일 오전 9시 45분 49기가 발진한다.

3차 공격대에게 내려진 새로운 목표, 일부는 새로운 타깃을 향해 항로를 변경하고 일부는 원래 목표대로 비행한다. 새로운 목표로 향한 3차 공격대 35기는 그대로 귀환한다. 원래 목표로 향했던 3차 공격대 14기는 헬캣 요격에 격추당하는 가운데 1대가 에식스급 항모 렉싱턴 근처에 폭탄을 투하한다. 

 

 

일본시각 6월19일 오전 10시 15분 일본 4차 공격대가 출격한다.  본대 을부대 64기, 본대 갑부대 20기가 출격을 해서 총 84기가 출격한다. 다 격추되고 9대만 귀환한다. 

1944년 6월 19일 일본 항공기 250대가 손실되고 필리핀해 해전 피해 현황은 일본 항공기 450기 이상 손실된다. 필리핀해 해전 피해 현황은 일본 파일럿 445명이 전사한다.

반면 미국 필리핀해 해전 피해 현황은 미군 항공기 130여 대가 손실된다.

일본 연합함대는 오키나와로 퇴각하면서 필리핀해 해전은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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