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근동 세계의 달의 신
인류 최초의 문명 수메르 시대의 달의 신은 '난나'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난나라는 신은 '우르'라는 도시의 주신主神이었다. 수메르에는 도시국가가 여러 개 있었는데 그중에서 한 도시 국가가 어떤 신을 믿는다는 것을 주신主神이라 부른다. 난나의 이야기가 수메르어로 적혀 전해진다. 달신은 남성 신이며 보통 남성 신이 아니라 상남자, 바람둥이 같은 캐릭터였다. 수메르시대의 난나는 남신이었는데 수메르를 이어서 메소포타미아를 지배한 아카드인들은 이 신의 이름을 '신'이라고 했다. 난나에서 신으로 이름을 바뀌었지만 남성 신이고 상남자 신이고 힘센 신은 변함이 없었다.
'신'신은 초승달 모양으로 생겼다. 동양의 음양사상에 따르면 태양신이 남성 신이고 더 강하고 세고 달의 신은 여성 신이고 약하며 태양과 달은 양과 음으로 생각했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달의 신이 더 강했다. 달의 신이 남성 신이었고 태양 신이 여성 신이었다. 달의 신은 최고신 엔릴의 아들이며 권세도 있고 강력했다.
달은 보통 남성신이 아니라 왕권신학의 상징이자 권력의 상징이었다. 보통의 남성 신이나 상남자나 영웅을 넘어선 강하고 큰 신이었다.
달신은 왜 왕권의 상징인가?
흔히 왕권의 상징으로 태양을 떠올리기 쉽다. 왜 달이 왕권의 상징인지를 두 가지 이유를 들어 학자들이 추측했다. 첫 번째는 밤하늘에 달을 보면 직관적으로 달과 별이 있으면 달이 마치 임금 같고 별이 마치 군대 같다.
두 번째 이유는 달의 규칙성 때문이다. 달이 기준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처음에는 태음력을 사용했기 때문에 달은 28일마다 정확하게 돌아간다. 출산, 성장, 노화, 죽음에 맞춰서 인간의 때를 잡아주는 역할도 하고 밤에 달의 위치를 보면서 유목민들이 방향을 잡거나 길을 잡았다. 이때도 달이 기준을 알려주는 역할을 했다.
달신 신앙에서 중요한 것은 고대근동 전역에서 초하루가 중요했다.
달신의 상징은 '초하루'의 얇은 달이었다. 초하루 '이제부터 달신이 이긴다, 달신이 계속 승리해서 보름까지 15일 동안 계속 승리한다' 이런 신앙이 있었다. 그래서 달신 신앙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초하루였다.
보름달(만월滿月)은 이제부터 달신이 지는 것으로 생각해서 달신이 쇠락한다는 것이었다. 초승달은 이제부터 상승하는 것이다.
달신 숭배의 대표적인 도시가 메소포타미아의 '우르'였다. 우르는 달신 신앙으로 이름이 높은 곳이었다. 우르 다음으로 달신을 가장 섬겼던 도시가 '하란'이었다. 우르와 하란은 공통의 신을 섬겼다.
'니푸르'는 엔릴을 섬겨서 우르와는 믿는 신이 다르다. 같은 신을 섬겼다는 것은 굉장히 가깝다는 것이다.
메소포타미아 남부에 우르가 있고 매소포타미아 북부에 하란이 있기 때문에 도시들은 남부에서 시작해서 몇백년 지나서 북부에 도시들이 생겼다. 남부에 있던 사람들이 북부에 가서 도시를 만들었다.
이때 우르 사람들이 하란을 만드는데 결정적 기여를 하거나 어떤 연관을 맺었을 것이다.그래서 두 도시가 같은 신을 섬기고 서로 밀접하게 교류하는 것이 많았다.
달신이 왕권의 상징이고 중요하고 남성신이고 최고신 엔릴의 아들이라고 믿는 것은 메소포타미아뿐이었다. 이집트, 시리아-팔레스티나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고대근동 세계는 거대한 하나의 세계다. 메소포타미아부터 이집트까지 지금의 이란, 이라크 지방부터 이집트와 리비아 지방까지 큰 지역이지만 거의 하나의 정신세계를 갖고 살았다. 이 안에서 공통의 전승이 있지만 이질적인 그림을 그릴 때도 있다. 신화마다 모티프마다 다르지만 대표적으로 달신이 이질적이다.
달신이 메소포타미아지역에서는 왕권의 상징이었는데 이집트에서는 별 볼 일 없었다. 이집트에서는 태양신이 처음부터 왕권을 가져갔기 때문에 달신이 왕권을 가져갈 수 없었다. 이집트에서 여러 가지 달신이 있는데 달신이 변덕스럽다.
시리아-팔레스티나의 달신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사이에 있는 지역은 시리아-팔레스티나 지역이다.
이 지역의 달신은 또 다른 모습이다. 여기서 달신의 이름은 '야리후'라고 한다. 야리후가 어떤 신인지를 보기 위해서는 우가릿 토판 중에서 KTU 1.114번이 있다. 이 토판에서 '야리후'라는 신이 나온다. 신들이 연회를 벌이고 있었는데 잔치를 하면서 어디에 앉는냐가 중요하다. 주신主神, 최고신과 얼마나 거리가 있느냐를 가지고 사람들이 이 신들의 위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알 수 있다.
토판의 기록에 따르면 시리아-팔레스티나에서 달의 신, 야리후의 위계는 식탁에 앉지 못했다. 오히려 신들이 먹고 버린 음식을 던져주면 개들이 와서 먹었는데 거기서 개와 함께 먹고 있는 신이었다.
메소포타미아지역에서 강력한 왕권을 상징하던 달의 신은 이집트에서는 중요한 신이 아니었고 시리아-팔레스티나 지역에서는 보잘것없는 존재였다. 어떤 모티프는 세 지역에서 공통성이 있지만 어떤 모티프는 이질적이기도 하다.
시리아-팔레스티나 지방에 있었던 작은 나라 이스라엘은 달신을 어떻게 묘사했을까?
아브라함은 우르 출신이다. 창세기에는 아브라함이 우르에서 출발하여 가나안으로 온다. 가나안으로 오면서 거친 도시는 하란이었다. 아브라함은 달신 숭배지 우르에서 출생해서 달신 숭배지 도시 하란을 거쳐서 가나안으로 왔다. 성경에는 여기에 대해서 아무 말이 없다. 우르 출신으로 하란을 거쳐서 가나안 땅으로 왔다는 것 외에는 없다.
여기에 대해 학자들은 추론했다. 아브라함이 달신과 어떤 관련을 맺은 것 같다는 생각은 많이 한다. 증거가 없어 추측만 할 뿐이다. 아브라함은 우르에서 75세까지 살았다. 종교적으로 높은 수준이었고 많이 배운 리더였다. 우르에서 75년 사는 동안 우르의 언어에 정통했고 우르의 문화, 종교, 신화, 의례 등에 대해서 잘 알았을 것이다. 경유지를 하란을 선택한 것은 어떤 인연이 있어 중간에 쉬어가기에 적합한 도시로 생각했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혼자 움직이지 않았다. 어느 정도 규모있게 움직였다. 아들, 손자, 조카, 하인들도 있었을 것이다.
당시 유목민으로 가축떼도 데리고 갔을 것이다. 아브라함이 이끈 공동체는 거의 우르 사람들이었다. 아브라함이 우르에서 왔다는 사실은 이스라엘이 고대근동 세계의 한 부분이고 처음부터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자명해진다.
아브라함이 우르에서 나왔다는 것 자체가 일반적인 고대근동 역사에서 이스라엘의 특수한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의미한다. 그래서 학자들이 추측하기에 아브라함이 우르에서 나왔을 때 아브라함의 믿음은 달신 숭배와 아무 상관이 없고 야훼 하느님에 대한 믿음으로 충만했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브라함과 함께 나온 무리에는 어느 정도 달신 숭배가 있었지 않았을까라고 본다. 그 사람들의 문화와 언어 속에 달신을 믿었던 흔적이나 기억이 남아 있지는 않았을까 추측한다.
이런 것으로 달신숭 배와 이스라엘이 어떤 관련이 있지 않았을까라고 추측할 수 있는 포인트이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탈출하고 '시나이산'에서 십계명을 받았다. 시나이산은 달신 숭배의 산이라는 유력한 가설이 옛날부터 있었다. 이스라엘 역사 초창기부터 달신 숭배에 대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익숙했다. 뭔가 관련이 있다고 보는 가설들이 많았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처음부터 어떤 순수한 신앙공동체, 야훼 하느님을 향한 순수한 신앙 공동체의 모습은 아니었고 이스라엘은 초창기부터 지상에 존재하는 나라, 다른 이웃과 서로 관련을 맺는 나라였다. 이스라엘은 달신 신앙에 대해 신학적인 많은 성찰과 말들을 이야기했다. 이스라엘은 달신 신앙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졌을까는 다음 시간에 이어집니다.
주원준의 <성경과 고대의 신화>를 공부하고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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