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메시의 깨달음의 상징, 가시
바빌로니아는 고대근동 사회에서 문화적, 문학적으로 위대한 나라였으며 고대근동 세계의 최고의 선진국이었다. 문화적으로 대단하고 앞서가는 바빌로니아는 이스라엘에게는 '악의 제국'으로 인식되었다.
이스라엘은 고대근동 세계의 후발주자였고 작은 나라였고 지정학적 요충지에서 간신히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나라였는데 바빌로니아가 이스라엘을 침략하고 예루살렘을 함락했고 성전을 무너뜨렸다. 구약성경에는 바빌로니아가 '악의 제국'으로 묘사된다. 바빌로니아는 이스라엘에게는 '악의 제국'이었지만 당대 최고의 문화선진국이었다.
이스라엘은 유배를 바빌로니아로 갔기 때문에 바빌로니아의 최고의 문화적인 자양분을 섭취해서 이스라엘의 신앙을 더욱 두텁게 만드는데 도움을 많이 받았다.
바빌로니아 4대 문학 중에 '길가메시 이야기는 인류최초의 장편 서사시라고 할 수 있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우루크의 전설적인 왕 길가메시에 대한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서사시이다. 길가메시가 태어나면서부터 죽기까지 한평생을 그린다. 초반부터 흥미진진하다. 혈기 왕성한 청년이 모험도 하고 사랑도 하고 우정도 배우고 여러 지혜도 배우고 하면서 흥미로운 드라마가 펼쳐진다. 길가메시도 마찬가지이며 엔키두, 훔바바, 이쉬타르, 이런 등장인물들 (신, 괴물, 인간)도 재밌다.
길가메시의 흥미진진한 모험 이야기는 갑자기 종교적 이야기로 전환된다.
길가메시의 가장 친한 친구 엔키두가 죽었을 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 전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절대 느끼지 않았다. 훔바바를 잡으러 삼목산 여행할 때는 원로들은 '너희들이 가서 훔바바를 잡으로 삼목산에 들어가면 그 괴물은 너무 크고 강하기 때문에 너희들의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른다'며 말렸다.
길가메시와 엔키두는 젊은 날의 용기만 믿고 대수롭지 않게 떠난다. 그런데 엔키두가 죽었다. 그때 길가메시는 죽음을 느꼈다.
하던 일을 다 멈추고 길가메시는 영생을 찾아 떠나려고 한다. 죽음을 넘을 수 있는 것이 무언인가를 찾으려 했다. 태초에 홍수가 있었고 다 죽었는데 한 명이 살아남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 인물은 '우트나피쉬팀'이다. 이 사람을 찾아가면 영원히 살 수 있는 비결을 알 수 있다. 길가메시는 영생의 비결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우트나피쉬팀을 만났다. 길가메시는 우트나피쉬팀에게 영생의 비밀을 가르쳐 달라고 하지만 그는 거절했다. 여기까지 고생해서 찾아왔는데 빈손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아쉬웠다.
우트나피쉬팀 아내가 우트나피쉬팀에게 길가메시가 여기까지 왔는데 자기 나라로 돌아갈 때 어떤 것을 선물로 주겠습니까" 이러면서 남편의 마음을 살짝 돌린다. 길가메시가 잘 생겼고 우트나피쉬팀의 아내의 마음을 움직였다.
우트나피쉬팀은 마음을 돌려 가르쳐주기로 한다. 길가메시 서사시의 아카드어 원문에 나와있다.
'이 식물(Sammu)은 가시덤불처럼 생겼소,
그것의 가시는 덤불처럼 그대의 손을 찌를 것이오
그대의 손이 그 식물을 취하면 그대는 새 삶을 얻을 것이오'
길가메시 이야기에서 바빌로니아 현인들이 영생의 식물을 가시라고 생각했다는 것을 알수 있다. 영생의 식물은 지금까지 약초로 이해해 왔다. 왜냐하면 식물을 '샴무Sammu'라고 했고 샴무는 아카드어로 식물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식물 중에서 '약에 쓰는 식물'이라는 뜻이 있다. 마술적이고 의학적으로 사용되는 '치유 식물'이라는 의미가 있다. 아카드어 사전에는 독일어로 Heilpflanze라고 쓰여있고 '약초'라는 뜻이다.
그래서 '불로장생의 약초를 얻었다' 라고 해석이 많이 되어 있다. 또는 '해초'라고 이해하는 부분도 있다. 길가메시가 이것을 바닷속으로 내려가서 가져와야 하기 때문이다.
'샴무'라는 뜻에는 해초라는 뜻은 없다. 아카드어 원문, 길가메시 서사시의 원문을 보게 되면 텍스트에서 정확하게 설명을 한다. '이 식물은 어떻게 생겼다'라고 하면서 우트나피쉬팀이 길가메시에게 설명을 해 주는데 설명에 쓰인 단어가 세 개였다. 첫 번째 단어는 '엣데투(eddetu)' 이며 가시덤불이다. 두 번째 단어는 '시흘루(sihou)이며 가시이다. 세 번째는 아카드어로 '아무르딘누(amurdinnu)'라는 표현으로 '장미, 덤불'이다라고 얘기를 한다. '길가메시가 어떤 장미를 얻었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길가메시 이야기의 아카드어 원문과 모든 판본을 가장 치밀하게 연구해서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은 조지(A.George)학자는 이 식물을 묘사하는 세 가지 표현을 연구하면서 긴 각주를 달아놨다. 세 식물의 공통점은 '가시'밖에 없다. 조지(A.George) 학자는 '아무른딘누' 때문에 '가시가 아니라 장미일 수도 있다'는 학설을 비판하려고 했다. 그래서 '가시 외에는 아무르딘누와 샴무가 공통적으로 주장될 수 있는 것은 없다'라고 정의한다.
<길가메시 서사시>의 마지막에 바빌로니아 최고의 현인들이 생각했던 '인간이 죽음을 넘는 비결, 그것은 가시구나'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왜 가시일까 세상에 아름답고 풍요로운 식물이 많은데 왜 최고의 깨달음의 상징을 '가시'라고 했을까?
우트나피쉬팀이 길가메시한테 가시를 주면서 ' 이 가시는 덤불처럼 그대의 손을 찌를 것'이라고 했다.
길가메시는 이 말을 듣고 두 가지 행동을 한다. 하나는 이것을 잡기 위해 이것이 있는 바다속으로 주저하지 않고 들어간다. 태초의 심연으로 내려간다. 진리를 얻기 위해서 컴컴한 바닷속으로 들어갈 용기가 없다면 얻을 수 없다. 하지만 길가메시는 들어갔다.
두 번째, 그 깊은 바다에서 식물을 잡아야 한다. 길가메시는 손으로 그 식물을 잡았고 손을 찔렸다. 그것이 그의 손을 찔렀다고 본문에 나온다. 과감하게 깊은 물속에 들어가서 가시에 찔리는 고통을 무릅쓰고 가시를 들어 올리는 모습은 바빌로니아 현인들이 진리를 그렇게 얻는 것이다고 이야기한 듯하다. 진리는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고통을 무릅써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가시'라는 상징이 진리하고 하는 것은 훌륭한 성찰이고 구약성경의 '욥기'와도 잘 통한다.
우리가 어떤 것을 얻기 위해서는 심연의 깊은 물 속에 들어가서 숨을 오래 참고 고통을 무릅쓰고 손을 찔러야 얻을 수 있다.
길가메시는 그것을 가져왔다. 깊은 물속에서 손에 찔리며 가져왔는데 길가메시는 힘들어서 잠이 들었다. 그때 뱀이 와서 가져가 버린다. 뱀이 길가메시가 샘에서 목욕하는 동안에 뱀이 이 식물을 가지고 달아나 버렸다.
길가메시가 침묵하면서 이 이야기는 끝난다.
가시나무를 움켜쥔 순간의 체험만이 길가메시의 손과 마음에 남았다.
깨달은 것이 나에게 어떻게 남는가?, 나는 이 깨달음을 계속해서 발전시켜야 하는가?, 깨달음은 다시 찾아올 수 있는가? 하는 <길가메시 서사시>가 수많은 질문들을 남겼다. 길가메시 이야기는 초반에는 화려하게 진행되다가 마지막에 침묵한다. 길가메시는 오랜 시간 많은 일을 겪었고 사랑과 우정과 별별 이야기를 다 겪었다.
그리고 친구도 죽었고 천신만고 끝에 태초의 우트나피쉬팀을 만나서 영생의 비밀도 알았고 영생의 비밀로 자신이 움켜 쥐었는데 마지막에 남은 것은 가시를 움켜준 손의 체험, 아픔, 상처뿐이었다.
<길가메시 서사시>를 읽고 나서 길가메시는 깨달음을 얻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면서 생각이 많아진다.
마지막에 '샴무' '가시'가 남는다. 길가메시 이야기는 중간에 완전히 구도자의 이야기로 바뀐 다음에는 최후에 '가시'하나만이 남은 이야기가 된다. 바빌로니아 현인들이 훌륭한 가시에 대한 성찰을 이 이야기에 맨 마지막에 두었다. 가시 이야기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서 새로운 방향으로 부활한다.
다음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주원진의 <성경과 고대의 신화>를 공부하고 정리한 내용입니다.
'잡학지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대근동 세계의 달의 신 (1) | 2024.11.12 |
---|---|
모세의 가시덤불과 그리스도의 가시관 (0) | 2024.11.11 |
고대근동 신화와 물을 가른 예수 (2) | 2024.11.08 |
고대근동의 창조신화 (0) | 2024.11.07 |
그때 그 시절 춤의 변천사 (5) | 2024.10.0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