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잡학지식

고대근동의 창조신화

by 소시민스토리 2024. 11. 7.
반응형

고대근동의 창조신화

고대근동의 신화는 성경을 이해하는 데 매우 필수적이고 신화를 통해서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고대근동 세계에는 창조 신화가 많다. 고대 이집트 , 고대 메소포타미아, 고대 시리아-팔레스티나 이런 지방의 창조 신화에서 공통된 모티프가 존재했다. 창조신이 혼돈을 상징하는 물을 반으로 가르고 세상을 지었다하는 것이다. 고대근동 세계는 거대한 메소포타미아부터 이집트까지 굉장히 넓은 세계였는데 거대한 정신세계를 공유했다. 공통적으로 고대근동 신화가 나오는 이 세계에서 창조란 '무無'로부터의 창조는 아니었다.

 

고대근동 신화에서 창조란 새로운 질서의 탄생을 의미한다. 혼돈이었던 세상에서 창조라는 것은 혼돈을 꺾고 승리해서 우주의 질서, 사회의 질서,역사의 질서를 세우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따라서 '혼돈'이라는 개념과 '창조'라는 개념은 고대근동 신화에서는 상호 밀접하고 긴밀하게 연관된 개념이다. 

 

 

이집트의 대표적인 창조신은 '아툼(Atum)신' 이었다. 아툼은 '헬리오폴리스의 주님' 또는 '두 땅의 주님' 이라고 불렸다. 헬리오폴리스 창조 신화가 이집트에서 가장 오래된 창조 신화이다. 이 창조 신화에 따르면 태초의 물, 혼돈 같은 곳에 아툼 혼자 있었다. 아툼이 스스로 세상을 만든다. 어떠한 외부의 영향도 없이 스스로 창조의 과정을 시작한다. 아툼 혼자 완전한 신적인 과정을 시작했다고 이해한다. 그래서 아툼은 어떤 외부의 영향력 없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의 원인 (causa sui)이라고 한다. 스스로가 그냥 원인이다. 

아툼이 창조 이전에 있었던 혼돈의 바다를 '눈'이라고 하는 데 이 눈, 태초의 바다에서 아툼이 처음 시작한 행동은 눈이라는 바다를 아래위로 가른 것이다. 

그 사이에 공간을 만든 것이다. 공간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대표적인 창조 신화 '에누마 엘리쉬'에서 바다 신은 '티아맛'이다. 하지만 바다의 신이 '티아맛'뿐만은 아니었다. 크래머와 메츨러 학자가 최근에 에누마 엘리쉬를 다시 번역해서 잘 정리했다. 에누마 엘리쉬에서 마르둑이 티아맛을 물리치고 왕이 되는 것은 이 신화의 세 시대 가운데 둘째와 셋째 시대에 일어난 일이다. 

세계 창조의 세 시대(Weltalter) 가운데 첫 시대는 압수와 티암투(티아맛)가 지배했다. 

'에아'라는 신이 압수를 물리쳤다. 여기서 바다신을 물리쳤다.

 

둘째 시대에는 첫 시대에 때어난 두 신이 경쟁했다.바로 티암투(티아맛)와 그 측근들이다. 티아맛을 마르둑이 물리쳤다. 셋째 시대는 마르둑이 지배했다. 바다를 꺾고 질서를 세우는 일이 거듭해서 일어났다. 

이것은 에누마 엘리쉬뿐 아니라 이전의 수메르 신화에서도 '바다 신을 물리치고 질서를 세웠다'는 모티프가 여러 개 있었다.

 

고대 이집트와 고대 메소포타미아는 상당히 멀리 떨어진 지역이다. 두 지역이 교류를 하기는 했지만 편지를 주고 받거나 할때는 굉장히 오래 걸렸을 것이다. 그런데도 공통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거대한 하나의 세계가 된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사이에 있는 시리아-팔레스티나 지역의 대표적인 것은 바알 신화이다. 에누마 엘리쉬와 바알 신화는 언어도 서로 다르다. 에누마 엘리쉬는 아카드어로 되어있고  바알 신화는 우가릿어로 되어 있고 연대도 차이가 난다. 

에누마 엘리쉬는 기원전 1천 년대 신화이고 바알 신화는 기원전 2천 년대의 신화라서 최소한 몇백 년 차이가 난다. 그러나 공통점이 있다. 마르둑(질서의 신, 최고의 신)이 티아맛(바다의 신)을 죽였듯이 바알 신화의 질서의 신인 바알은 바다의 신, 얌무를 죽인다. 죽이는 방식도 똑같다. 마르둑이 티아맛을 두 갈래로 죽이는데 바알신도 얌무를 두 갈래로 죽인다. 신의 이름, 신의 성격, 신을 대하는 방식 모티프가 두 신화가 너무나 비슷하다. 

 

연대도 차이가 나고 언어권도 다르고 지역도 다른 두 신화가 왜 비슷할까?

일찍이 제이콥슨 학자는 이렇게 풍우신이 바다 신을 꺾고 승리하는 질서의 신이 바다신을 꺾고 승리하는 모티프 자체는 어디 한 군데서 기원한 것이다, 어디냐면 바로 '시리아-팔레스티나 지방'이다, 우가릿이 속한 시리아-팔레스티나에서 기원했고 이것은 시대적으로 워낙 많이 앞서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이 아카드어 사용자들한테 접촉하면서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가서 바빌론의 에누마 신화에 이 신화 요소, 이 모티프가 수용된 것이다라고 1970년대 추측했다. 많은 학자들이 이 견해를 많이 따랐다.

최근 학자 '투겐하프트', '듀렁'은 이것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논문을 냈다. 

 

 

우가릿 토판을 연구한 것으로 바빌로니아의 바다의 신 '티아맛'과 우가릿의 바다의 신 '얌무'를 동일한 신으로 인식했다. 바다 신에 대한 우가릿과 바빌로니아의 인식이 거의 같다. 시리아-팔레스티나 지역도 메소포타미아 지역도 서로 "저쪽에서는 바다의 신을 '얌무'라고 부르는데 우리의 티아맛과 거의 같은 신이구나'라고 알고 있었고 우가릿 쪽에서도 '우리 언어로는 바다의 신을 얌무라고 부르는데 저쪽의 티아맛과 같은 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시리아-팔레스티나에서 1천년 이상 세월을 두면서 비슷하게 공통된 것이 나온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이것은 고대근동의 3대 지역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시리아-팔레스티나에서 각자의 고유한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거대한 정신 문명을 공유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로 보면 서쪽으로 가면 이집트, 리비아 지방부터 이스라엘, 레바논, 시리아를 거쳐서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이란을 아우르는 엄청나게 넓은 지역이다. 이렇게 넓은 지역에서 공통적인 신화가 있다는 것은 매우 느렸겠지만 고대근동인들은 공통의 모티프로 대화하며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고대근동의 3대 지역의 창조 신화에서 보면 고대근동의 사람들은 질서의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믿었다.  

창조란 무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지금이 질서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이 질서를 만들기 이전 상태를 '혼돈'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혼돈'은 물로 표현했다. 창조라는 것은 '혼돈'의 물을 반으로 가르고 세상을 만든 것이다. 질서의 신, 창조의 신, 권능의 신은 '혼돈의 물을 가르고 지배하는 신'이다. 

고대근동 신화에서 '어떤 신이 물을 갈랐다, 세상을 지었다'고 하면 창조의 신으로 이해해야 한다. 창조신이 가진 권능은 물을 가르는 것이다. 물을 가르는 행위는 창조의 행위라고 이해할 수 있다. 

 

 

고대 이스라엘은 작은 백성이었다. 이스라엘은 작은 나라였다. 지정학적인 요충지에서 비교적 뒤늦게 나라를 세웠고 나라를 세운 뒤에도 오랜 세월 고난을 받았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고대근동 세계의 한 나라의 한 백성으로서 이널 공통의 모티프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스라엘은 이런 상황속에서도 자신들의 독특한 믿음, 유일한 믿음을 끝까지 지키고 버티면서 전승하는데 성공한 굉장히 특이한 민족이다. 그들이 자신들의 고유한 신앙을 표현하기 위해서 고대 근동의 신화적 언어를 사용한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구약성경의 창세기 1장의 언어를 분석해보면 고대근동의 신화적 언어와 거의 같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물 한가운데에 궁창이 생겨 물과 물 사이를 갈라 놓아라"

 

하느님께서 이렇게 궁창을 만들어

궁창 아래에 있는 물과 

궁창 위에 있는 물을 가르시자 그대로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튿날이 지났다.

-창세기 1장 5~6절

 

하느님이 창세기 1장에서 한 일은 여러 일을 했지만 그중에서 중요한 일은 물과 물 사이를 갈라놓은 일이었다. 이 행위는 고대근동의 창조 신화에서 다른 신들이 한 것과 비슷하다. 창조신으로서 반드시 해야 하는 행위 중의 하나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세상을 창조한 사람은 대제국 이집트의 아툼신도 아니고 메소포타미아 신, 마르둑도 아니고 바로 '우리 하느님 야훼가 세상을 가른 신이다' 이런식으로 자신들의 신앙을 고백한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이 최고의 신이구나, 이스라엘 사람들한테는 당연히 유일신이니까 그렇게 얘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느님이 또 한번 물을 가른다. 이집트 탈출 사건에서 홍해 바다를 갈랐다. 그리고 예수님도 물을 통제한 적이 있었다. 성경에 고대근동 신화의 언어 비슷한 것이 나온다. 

질서의 신, 새로운 권능의 신이 물을 반으로 가르거나 물을 통제하는 것이 신약성경과 구약성경에서도 많이 나온다. 

 

다음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주원준의 <성경과 고대의 신화>를 통해 배운 내용입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