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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학지식

그때 그 시절 춤의 변천사

by 소시민스토리 2024.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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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시절 춤의 변천사

60년대는 트위스트, 70년대는 고고춤, 80년대는 디스코, 90년대는 힙합이 유행했다. 

60년 대에는 전 국민이 발바닥을 비비던  춤, 트위스트가 유행했다. 미국에서 탄생한 트위스트는 전 세계적으로 유행을 했고 발바닥을 비비고 손을 위아래로 흔드는 간단한 동작으로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어 남녀노소, 장소 불문하고 사랑받았던 댄스이다.

 

1960년대 음악 감상실에서 정기적으로 트위스트 경연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트위스트를 예명으로 쓴 연예인까지 등장했다. 트위스트 김은 국내 최초의 남성 댄스가수였다. 1964년에 개봉한 영화 '맨발의 청춘'에서 당대 최고의 배우 신성일, 엄앵란씨와 호흡을 맞추면서 트위스트 실력과 재치 넘치는 입담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라서 그 시대를 대표하는 청춘스타가 되었다.

 

 

70년대에는 청춘들의 핫플레이스는 '고고장'이었다. 고고장은 클럽 문화의 시초였다.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질주하며 고고춤을 추었다. 런던 보이즈의 '런던나이트'에 맞춰서 손가락을 여기 저기 찌르며 춤을 추었다.

당시 유행했던 휴대용 야외전축을 들고 언제 어디서나 야외에서 모여 춤을 추었다. 70년대에는 통행금지, 장발, 미니스커트 단속까지 있어 젊은 청춘들을 억압하였다. 억압의 시대 자유를 표출하는 상징적인 춤이 고고춤이었다.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고고미팅이 유행했는데 주로 낮시간에 적당한 다방을 빌려서 단체로 미팅을 하는 것이다. 학과 대 학과 단체로 미팅을 했고 고고춤을 출 수 있게 빠른 음악이 몇 곡 나온 후 블루스 음악이 나왔다. 밤새 고고춤을 추면서 술 마시는 사람을 '고고족'이라 했다. 

 

1971년 서울 호텔안에 '고고클럽'이 10곳 정도 있어 성황을 이루었다. 저녁때부터 이튿날 통금이 해제될 때까지 새벽 4시까지 영업을 했다. 일 년에 딱 한 번 크리스마스이브날은 통행금지가 해제되었고 나이트클럽은 들어갈 자리가 없을 정도로 난리가 났다. 당시 고고장은 어른들 시선에서 탈선과 범죄의 온상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1972년 10월 고고춤은 퇴폐로 규정되 금지되었다. 밤 10시 라디오에서 '사랑의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청소년 여러분 밤이 깊었습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고고족이 열차안에서 춤을 추는 바람에 많은 승객들과 시비를 붙는 경우가 있었고 행락철 단골 사고뭉치로 떠올랐다. 1978년 4월에만 열차 안에서 춤을 추던 고고족 21명이 즉결심판에 보내졌다. 1974년 대왕코너 화재로 88명이 사망했다. 이중 78명이 고고클럽에서 춤을 추다가 화재로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존 트라볼타가 주연한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가 디스코 열풍을 몰고 오면서 고고춤은 시들해졌다. 

고고춤을 물러나고 디스코가 전 세계를 열광시킨다. 

 

80~90년대에 넘어오면서 본격적으로 음악과 춤이 결합하는 시대가 열렸다.

대중 가요에 댄스가수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HOT의 망치춤이 유행했고 후드티를 입고 추는 현진영의 춤이 유행했다. 한국의 마돈나라는 별명을 가진 김완선은 매력적인 춤으로 이전의 가수들이 보여주지 못한 원조 섹시 가수로 평가받았다. 자유로운 몸놀림과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한국 가요의 독보적인 여자 가수로 한 획을 그었다.  아이돌 그룹의 시초가 된 소방차의 춤은 소녀팬들을 열광시켰다. 무대에서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신드롬급 돌풍을 일으켰다. 

 

 

 

세계적으로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가 등장했다. 모든 춤은 마이클잭슨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1983년 문워크 공연은 TV가 생긴 이래 역사상 가장 중요한 한 장면으로 선정되었다. 

대중음악계에 시각적 효과를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마이클 잭슨의 또 다른 춤 '린댄스'는 문워크 성공 이후 심리적 부담을 느꼈고 인간이 할 수 없는 동작을 생각하다 탄생시킨 댄스이다. 린댄스는 다리는 가만히 있고 상체만 앞으로 숙이는 춤이다. 마이클 잭슨의 의상 담당자였던 데니스 톰킨스는 댄서 신발 뒤꿈치에 V자 홈을 파서 바닥에 홈을 키우고 앞으로 넘어지듯이 춤을 췄다. 발목 고정장치가 있는 신발을 제작을 해서 반중력 환영을 일으키는 것까지 특허를 받았다고 한다. 

 

80~90년대는 회식을 마치면 나이트에 가서 춤을 추었다. 스페인 세비야 출신 남성 듀오 로스 델 리오의 댄스곡 '마카레나'가 유행을 했고 사람들이 똑같이 따라했다. 단순하면서도 섹시한 춤 동작이 흥겨운 노래와 함께 인기를 끌게 되었고 마카레나 노래에 자동으로 몸이 반응했다. 중독성 있는 후크송이면서 우스꽝스럽게 끌리는 동작이 전 세계를 마카레나 춤 열풍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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