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의 가시덤불과 그리스도의 가시관
고대 바빌로니아 현인들은 깊은 진리의 상징, 깨달음의 상징으로 '가시'를 이야기하였다. '가시'라는 상징이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서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이집트 탈출 사건은 우주적인 창조 사건에 비교될 수 있는 엄청난 의미의 사건이다. 창조 신화의 언어로 물을 가른 사건, 창조신화의 언어로 이집트 탈출 사건을 설명했기 때문에 우주적 의미가 깃든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집트 탈출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모세에게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주님의 천사가 가시덤불(떨기나무)
한가운데로부터 솟아오르는 불꽃 속에서 그에게 나타났다
그가 보니 가시덤불(떨기)이 불에 타는데도
그 가시덤불(떨기)은 타서 없어지지 않았다.
-탈출기, 개신교의 출애굽기 3장 2절
여기서 쓰인 히브리어는 '스네'라는 단어이다. 개신교 성경이나 가톨릭 성경은 여기서는 일치한다. '떨기나무'라고 번역한다. 떨기나무는 관목을 우리말로 순화한 것이다. 관목은 '덤불'이다. 그래서 영어 성경을 보면 '부시(bush)'로 옮긴다. 덤불은 곧은 줄기가 없는 나무다.
관목灌木은 키가 작고 주줄기가 분명하지 않으며 땅속 부분부터 줄기가 갈라져 나는 나무이다. 회향나무나 개나리가 관목에 속한다.
하느님이 처음에 구약성경에서 모세에게 당신을 드러내신 나무는 훌륭하고 멋지게 크는 큰 나무가 아니라 '덤불'이다.
길가메시의 서사시에서 '가시'는 깨달음의 상징이었다. 이스라엘은 '가시'라는 상징을 그냥 가져오지 않았고 자신들의 독특한 믿음과 체험으로 새롭게 발전시켰다. 이것은 신약성경에서 잘 드러난다.
신약성경 전에 '스네'라는 히브리어를 그리스어로 번역할 때 '바토스'라고 옮겼다. 그리고 신약성경에서는 바토스라고 하면 '가시'라고 본다. 신약성경에서 가시의 상징성은 그리스도의 가시관에서 절정에 달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리실 때 로마 병사가 예수님에게 가시관을 씌우면서 '유다인의 임금님'이라고 조롱한다. 예수의 수난사화 가운데 이 장면이 굉장히 중요한 대목이고 사람들, 신앙인들의 마음에 오래 남는 대목이다. '예수님이 가시관을 쓰셨고, 병사들이 놀렸다'이 말을 오래 남아서 예수님을 표현할 때 가시관으로 많이 표현한다. 때로는 가시관만 덩그러니 하나 있어도 예수님이 쓰신 가시관이구나,라고 생각한다.
<길가메시 서사시>에서도 최고의 신적인 상징 역시 '가시'였고 모세가 불붙은 가시 덤불에서 하느님을 만날 때, 이집트 탈출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에도 '가시'라는 것이 중요한 상징이었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리는 수난사화에서도 핵심적인 장면에서도 가시가 등장한다.
이후에도 '가시'는 사도들한테로 넘어간다.
필론은 예수와 바울의 동시대인 알렉산드리아 유다 철학의 학자이다. 유다학자 필론은 그리스도인은 아니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구약성경의 훌륭한 주석가였고 철학자, 관상적인 신비가였다.
필론이 쓴 책 중<모세의 생애>에서 가시덤불을 설명한다.
모세가 불붙은 가시덤불을 만났을 때를 설명하면서 '이 나무에서 중요한 것은 가시가 있다는 점'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거기에는 바토스(가시)가 있었는데,
매우 가시가 많고 가장 약한 종류의 것이었습니다
-필론 <모세의 생애>
그 바토스(가시)는 앞서 말했듯,
가장 연약한 종류의 것이었으며,
분명히 가시가 존재했기에 손에 닿으면 사람을 찌릅니다
-필론<모세의 생애>
떨기나무라는 번역어로는 '가시에 찔린다'는 것을 잘 표현할 수 없다. 필론은 '가시'와 '불'의 상징성에 집중했다. '불'과 '가시'가 하느님을 상징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신적인 최고의 상징에서 가시가 나온다'는 것은 길가메시의 신적인 최고의 영생을 이야기하는 부분과 비슷하다.
필론은 길가메시를 몰랐을 것이다. 길가메시 토판이 발굴되고 해독된 것은 18세기이다. 길가메시 이야기는 한동안 잊힌 이야기였다. 한 문학권, 하나의 거대한 정신세계에서 살기 때문에 이런 핵심적인 가시 상징이 서로 통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스도 교부敎父들도 이것을 알고 있었다.
2세기에 활약했던 교부들 중에 알렉산드리아 클레멘스는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기독교 신학자이자 알렉산드리아 교리문답 신학교의 수장이다. 알렉산드리아 클레멘스가 쓴 '교사이신 그리스도'라는 문헌이 남아있다.
전권이 다 남아있지 않고 일부 문헌만 남아있다. '그리스도의 가시관'과 '불타는 가시덤불'을 서로 연결시킨다.
구약성경에서 하느님이 모세에게 본인을 드러내시는 핵심 장면이 탈출기 3장에서 불붙은 가시인데 바로 거기서 하느님은 어떤 분이신가, 가난한 사람을 이집트에서 해방시킨 분이시다, 역사에 내려오셔서 역사에 참여하시는 분이시다, 하느님은 여기서부터 새로운 인간 질서, 완전히 새로운 질서를 세우신다. 이것을 알려주는 대목이 '불타는 가시'이다.
예수님이 가시관을 쓰고 십자가에 올랐을 때가 예수님의 신적 신비가 가장 잘 드러나는 장면이다. 구원자는 세상의 가장 큰 임금은 세상의 임금처럼 저 멀리 높은 데서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희생해서 십자가에 올라가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우리도 예수님을 따르려면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는 것이 가시관을 쓰고 십자가에 올라가신 장면에서 잘 드러난다.
2세기의 클레멘스는 최초의 가시로 나오신 분이 나중에 십자가에 올라가신 가시관을 쓰신 그분이라고 하면서 삼위일체로 가는 다리를 '가시'라는 상징을 통해서 놓는다. 가시라는 상징은 그리스도교에서 중요한 상징이다.
'그분께서는 모세에게 거룩한 장면을 보여주셨습니다
불타는 가시덤불이 밝게 빛났던 것입니다
이제 덤불은 가시로 가득 찼습니다...
이와 같이, 말씀이 사람들 사이에서 주님으로 머무르실 때
그분은 신비한 상징으로서 가시관을 쓰게 되셨습니다
그분은 내려오신 그곳으로 돌아가시면서
원래 계셨던 그곳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그분은 맨 처음 가시덤불에 나타나셨으며,
훗날 가시로 둘러싸이게 되신 것입니다
이로써 이 모든 일이 하나의 동일한 권능께서
하신 일이란 점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분과 그분의 아버지는 한 분이고
영원한 시작이요, 끝이십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2세기의 클레멘스는 '가시'라는 하나의 상징을 성찰하면서 성경의 핵심 상징을 요약했다.
모세에게 가시덤불로 나타나신 그 분이 가시관을 쓰면서 본인이 어떤 분인지를 드러냈다는 것입니다.
불타는 가시덤불에 싸인 성부와 가시관을 쓰시고 십자가에 올라간 성자가 결국은 한 분이라고 클레멘스는 성찰하게 된다. 2세기에 클레멘스는 삼위일체 교리가 형성되기 이전에 살았던 인물이다. 성부, 성자, 성령이 한 분이시다는 그리스도교의 핵심 진리가 아직 모습을 드러내기 이전에 '가시'라는 상징을 통해서 핵심 진리를 스스로 깨달은 분이다.
그리스도교의 핵심 진리를 이야기하는 '가시'가 중요한 상징이고 탈출기 3장에서 불붙은 떨기나무가 아니라 불붙은 가시덤불로 번역해야 옳다고 생각한다.
중세기를 거치면서 가시관의 가시가 예수를 상징하게 된다.
중세 성경은 화려하다. 중세 성경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있는데 겉에 13세기까지 성경이나 성화의 테두리에 가시 장식이 자주 사용되었다. 가시안에 하느님의 말씀을 모셨다는 뜻이다.
길가메시의 가시 상징, 모세의 불붙은 가시나무, 예수님의 가시관, 클레멘스로 이어지는 성찰들은 깊이 성찰하면서 인류 사회에 드러나는 깊은 의미와 깨달음의 계보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신화적인 언어를 통해서 성경을 새롭게 해석하는 것이 많은 신학적이고 철학적인 설명들보다 때로는 더 단순하고 직관적이면서 이해를 도울 때가 있다.
다음 시간에 이어집니다
주원준의 <성경과 고대의 신화>를 공부하고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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