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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학지식

김성곤의 중국 한시기행 제서림벽, 음주

by 소시민스토리 2024.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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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곤의 중국 한시기행 제서림벽, 음주

시의 향기가 감도는 산, 강서성의 구강시에는 여산이 있다. 광산이라 불리기도 하는 여산은 높이가 약 1600미터이다. 기원 381년 진나라 고승인 혜원이 이곳 여산에 입산해서 수행도량으로 삼은 이래로 중국 불교의 한 종파인 정토종의 성지가 되었다. 산속의 수많은 사찰들이 들어서고 고승과 문객과 문인들이 끊임없이 찾아들어 많은 일화와 시화를 남겼다.

 

동림사의 백련사지, 서림사의 고탑,주자가 경학을 강론한 백록동 서원, 도연명이 살았던 정절서원, 이백이 '비류직하삼천장'이라고 읊은 폭포천이 유명하다. 많은 사찰들이 청나라 말기 태평천국의 난 때 소실됐고 동림사와 서림사를 비롯해서 40여 개의 절의 현존하고 있다. 서림사는 고승 혜원이 주지로 30년 동안 있던 고찰이다. 세월에 따라 부침을 거듭하면서 쇄락했지만 오래된 고탑이 아직도 높이 솟아있다. 서림사가 유명하게 된 데는 사찰안에 북송 최고의 시인 시서화 각 방면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여준 소동파의 제서림벽이라는 시가 있기 때문이다. '서림사벽에 시를 쓰다'라는  칠언절구는 40대 중반에 정치적 핍박을 받고 유배지로 가던 도중에 벗과 함께 여산에 오르며 지은 시이다. 여산을 두루 유람하며 몇 편의 시를 썼는데 이 시는  여산 유람의 총결이라 할 수 있다. 

 

 

<題西林壁 제서림벽 서림사 벽에 쓰다>

 

"가로로 보면 산맥이요 옆으로는 봉우리 

원근 고저 각기 다른 모습이구나

여산의 진면목을 알 수 없는 것은 

내 몸이 이 산속에 있기 때문이 아닌가"

-소식 (소동파)의 제서림벽 題西林壁

 

여산의 뛰어난 명승을 두루 유람하면서 그 기이함과 수려함을 마음껏 감상하던 소동파는 그 천재적인 필력으로도 여산을 모습을 일괄해 내지 못했다. 남북으로 뻗은 여산은 멀리서 가로로 보면 산맥처럼 이어서 보이고 가까이 다가가면 높은 봉우리이다. 높은데서 내려다보는 풍경, 낮은 데서 올려다보는 풍경이 각각 다르다.

웅기험수雄奇險秀, 웅장한 산세, 기이한 봉우리, 험한 절벽, 수려한 폭포의 각각의 절경이 만든 무한한 감동이사람을 절로 황홀하게 만든다. 시인으로서 천재적인 재능을 자부하던 소동파는 무한한 변주의 감동적인 풍경을 만들어내는 여산유람을 일괄할 수 있는 시구를 써내고 싶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여산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시구를 쓰고 싶어했던 소동파는 무지 애를 썼지만 여산의 진면목은 숨어버렸다.

소동파는 자신의 한계를 깨닫는다.

 

"오호라! 여산의 진면목을 끝내 알 수가 없던 까닭이 바로 내가 이 여산 속에 있었기 때문이로구나!

내가 여산 곳곳에서 바라본 모든 풍경은 그저 여산의 한 조각이었을 뿐 

내가 여산 속에 머무르는 한 나는 끝내 여산의 전체 모습을 볼 수는 없는 것이로구나!"

이 시는 경치를 묘사한 사경시가 아니라 심오한 철리시, 철학적 이치를 논한 철리시로 바뀐다. 

 

 

여산의 진면목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여산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당국자미當局者迷 방관자청旁觀者淸'

일에 마주해 있는 당사자는 헤매는데

오히려 옆에서 바라보는 방관자가 분명하다'

 

복잡한 문제를 마주하고 끙끙대고 있는 사람에게 이 시를 들어서 문제에 집착하지 말고 거리를 두고 흥분을 가라앉히고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할 것을 말한다. 

 

"여보게, 여산진면목을 보지 못하는 까닭은 

그 자신이 여산 속에 있기 때문이라고 했네

자네가 처해있는 상황의 진실을 보려면 

그 상황으로부터 일단 벗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소동파가 특별하게 흠모하던 시인이 있었다. 전원시인으로 유명했던 위진남북조 시대  동진사람, 도연명이었다. 소동파가 존경했던 도연명의 고향이 여산자락에 있었다. 여산은 도연명을 낳고 시를 길러낸 어머니이다. 도연명의 아름다운 시에 종종 등장하는 남산은 바로 여산이다. 부귀영화를 사모하지 않고 안빈낙도의 삶을 산 도연명의 삶과 그런 삶으로 써 내려간 시는 진실된 인생이었다.

 

 

<飮酒음주, 술을 마시다>

 

"사람들 사는 곳에 오두막집 엮었으나

수레와 말의 시끄러움이 없도다

묻노니 그대는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마음이 멀어지니 땅은 절로 외지는 법

돌쪽 울타리 아래에서 국화를 따다가 

멀리 남산을 바라본다네

산 기운 저녁 되어 아름다운데

나는 새들 더불어 돌아간다네

이 가운데 참뜻이 있으려니

따져서 말하려다 이미 말을 잊었노라"

 

 

도연명의 삶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세속에서 살고 있지만 세속에서 가치로 여겨지는 부귀영화에 관심이 없었다. 수레와 말을 부귀영화의 상징이다. 세속을 떠나 깊은 산속에 살고 있는 세상을 등진 은자의 모습이다. 사람들이 묻는다. 세속에 살면서도 세속의 가치를 부정하며 사냐고 묻는다. 그대의 삶은 위선이 아닌가 묻는다. 그럴 바에야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은자로 사는 것이 어떠냐고 질문한다. 

 

"마음이 멀어지면 땅은 절로 외지는 법, 내가 비록 세속의 몸을 두고 있으나 마음은 세속의 최고의 가치인 부귀영화에서 이미 멀어져 있으니 내가 사는 곳이 어디든 그곳이 화려한 왕궁이든 복잡한 저잣거리이든 그곳은 깊은 산중과 다름이 없다네, 은자들이 깊은 외진곳을 찾는 것은 세속의 가치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함인데 

나는 이미 세속의 가치에서 마음이 멀어졌으니 깊은 산중을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도연명의 이런 차원은 은거의 최고의 경지이다. 국화꽃 향기 가득한 가을날 저녁, 아름답게 노을지는 여산으로 새들이 돌아가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시인은 시인 스스로 산이 되고 풍경이 되어서 자연이 된 듯 '물아칠제物我一體 물아양망物我兩忘의 오묘한 경지에 들었다.

'내가 그토록 갈구했던 인생의 참된 의미로구나!'

도연명은 여산의 품속에서 마침내 말로 형용못할 삶의 참된 의미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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