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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학지식

김성곤의 중국 한시기행, 장강삼협 백제성, 조발백제성, 등고

by 소시민스토리 2024.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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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곤의 중국 한시기행, 장강삼협 백제성, 조발백제성, 등고

백제성白帝城은 장강삼협의 초입에 있다. 장강삼협은 중경시 봉절현의 백제성으로부터 시작해서 호북성 의창시 남진관에 이르는 총길이 193킬로미터의 긴 협곡이다. 상류로부터 구당협, 무협, 서릉협의 세 협곡을 통칭한다. 이 협곡의 구간에는 높은 봉우리들이 좁은 강을 사이에 두고 하늘 높이 치솟아서 장관을 이룬다. 빼어난 장관에 역사와 문화, 신화와 전설이 굽이굽이 서려있다. 그래서 장강삼협 여행은 중국 여행의 백미라고 한다.  촉한의 군주 유비가 손권과의 싸움에서 패해서 마지막 숨을 거둔 봉절 백제성, 부하에게 죽임을 당한 장비 목이 몸과 분리된 채 묻혀있는 운양 장비묘, 모두 삼국지 역사 현장이다.

 

아침에는 구름으로 저녁에는 비가 되어 찾아오는 아름다운 신녀의 애정고사를 품고 있는 무산신녀봉이 있는 신화와 전설의 무대이기도 하다.

무산신녀 전설에서 비롯된 사자성어, 남녀의 사랑을 뜻하는 운우지정雲雨之情이다. 중국 남방문학의 비조라 일컫는 애국 시인, 굴원의 고향도 있다. 중국 4대 미녀 중 한 사람인 왕소군의 고향이 장강 삼협에서 멀리있지 않다. 

 

백제성은 시의 성으로도 이름이 높다. 수많은 내노라하는 시인들이 이곳에 들러서 시를 남기고 있다. 백제성 위쪽에 이 성을 처음 쌓은 공손술을 모신 백제묘라는 사당이 있다. 정문 앞에 모택동, 주은래, 강택민의 시비가 나란히 서 있다. 세 개의 시가 모두 같은 시다. 이백의 조발백제성早發白帝城이라는 시다. 백제성에서는 이백의 시, 조발백제성이 가장 빛나는 시로 소개된다. 

 

 

조발백제성 <아침 백제성을 이별하고>

 

"아침 채색 구름 속에서 백제성을 이별하고

천리 강릉길을 하루 만에 돌아간다네

강 양쪽으로 원숭이 울음소리 끊임없이 이어지는데

가벼운 배는 벌써 만첩 산을 지났구나"

 

 

이 시는 숙종황제와 영왕 이린의 권력 투쟁에 연루되어 유배를 가던 이백이 백제성에 이르러 사면령을 받고 돌아오며 감격과 환희를 노래한 것이다.  60세 가까이 된 이백에서 하늘 끝 불모의 땅으로 가는 유배는 살아서 돌아올 수 없는 길이었다. 유배를 가는 절망적인 끝에서 들려온 사면의 소식은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시의 곳곳에 녹아있다. 백제성을 둘러싼 채색 구름은 희망의 밝은 아침을 맞은 이백의 찬란한 기쁨을 상징한다. 백제성에서 강릉까지는 아침에 출발하면 저녁에 도착할 거리였다. 마음의 가벼움, 무거운 절망을 다 벗은 뒤의 후렴함을 표현했다. 가을바람이 불 때 이곳을 지나는 길손들은 원숭이 울음소리에 애간장이 끓었다. 고향에서 멀리 가는 나그네, 귀향 가는 유배객에게는 원숭이 울음소리가 주는 울림은 각별했다. 

그런데 이백이 사면될 당시 우는 원숭이 울음소리는 쓸쓸하거나 애처로운 느낌이 없다. 오히려 시인의 사면과 귀환을 축하해주는 환호성으로 들렸다. 강물처럼 평안하고 고요한 삶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소망을 마지막 구절에 담았다. 

 

명대의 양신은 이백의 조발백제성을 평가하기를 "바람과 비를 놀라게 하고 귀신을 울게 만든다"하였다.

무려 1300년의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이 시가 사랑받는 이유는 생생하게 다가오는 시인의 환희와 감격이 그대로 전해져서이다. 

 

 

백제성을 찾아 온 시성 두보

이백이 백제성을 떠나 간지 8년 후 병든 모습으로 시성 두보는 백제성을 찾아왔다. 

고향으로 가는 길에 병이 깊어져서 백제성에 머물게 되었다. 백제성에서 두번째 가을이 찾아왔고 음력 9월 9일 중양절이 되었다. 중양절은 음력 9월 9일로 옛 세시 명절 중 하나이며 온 가족이 함께 가을 산에 올라가 하루를 즐기는 날이다. 가을이 깊어가는 계절에 붉게 익어가는 산수유 열매를 따다 머리에 꽂아 액운을 쫓고 산 가득 피어있는 국화꽃을 따다가 술에 띄워서 마시면서 장수를 기원한다. 전란 이후 동생들과 헤어진 두보는 해마다 찾아오는 중양절은 더욱 외롭고 쓸쓸한 날이었다. 홀로 술잔을 기울이며 다음 해에는 동생들과 함께 중양절을 보내리라 기대했지만 전란은 멈추지 않고 끝도 없이 이어지면서 고향 가는 길은 열리지 않았다. 올해도 높은 산에 올라가 한 맺힌 사향의 노래를 불렀다.

 

 

<등고> 높은 곳에 올라

 

"바람 급하고 하늘 높아 원숭이 울음소리 애절하고

맑은 강가 흰 모래밭에 새는 날아돌고 있다

끝도 없이 낙엽은 쓸쓸히 지건만

다함 없는 장강만 굽이쳐 흐르누나

만리타향 늘 나그네 되어 가을을 슬퍼하고 

평생 병 많은 몸 홀로 높은 곳에 오른다

간난에 흰 머리 많아 슬퍼하는데

노쇠한 요즈음 탁주마저 멈추었구나"

-두보의 높은 곳에 올라

 

 

바람에 슬픈 원숭이 울음소리가 실려왔다. 슬픈 시인의 눈에 강가에서 날고 있는 새가 들어온다. 숲에 앉지 못하고 강가를 맴돌고 있는 새의 모습에서 고향을 떠난 뒤로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방랑하고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쓸쓸히 지는 낙엽은 저무는 시인의 노경을 비유적으로 표현했다.

지체 없이 흘러가는 강물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늙어가는 시인을 아랑곳하지 않고 무정하게 흘러가는 세월을 비유한다. 거친 강물과 같은 무정한 세월이 자신을 고향으로부터 만리 떨어진 이곳까지 휩쓸어왔다.

격랑의 세월속에서 남은 것은 병든 몸뚱이와 좋은 명절에도 홀로 높은 곳에 오르는 지독한 고독뿐이었다.

전란에 의한 방랑과 방랑에서 기인한 절절한 가난에 머리카락은 서리라도 내린 듯 하얗게 되었다.

서리발 같은 백발은 시인 혼자서는 어찌할 바가 없는 시대가 안긴 불운의 상징이자 고통의 표상이었다.

그래서 진실로 한스러울 수밖에 없다. 늙은 시인의 고독과 그리움에 절로 깊은 동정이 생긴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이 시를 읽으며 함께 고독하고 외로워하며 울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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