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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학지식

생수 판매가 불법이던 시절

by 소시민스토리 2024.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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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수 판매가 불법이던 시절

어디에서든 생수를 팔고 있어 손쉽게 사서  마실 수 있다. 가격도 저렴해서 물을 사 마시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90년대만 해도 물을 사 마신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점점 생활환경이 좋아짐에 따라 건강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져 깨끗한 생수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다. 

 

 

생수 판매의 역사는 30년이 되었다. 80년대까지 수돗물을 끓여서 마셨다. 옥수수차, 결명자차, 보리차를 큰 주전자에 넣어서 끓인다음 델몬트 병에 넣어 냉장보관했다가 마셨다. 그때는 병이 귀해서 오렌지 주스(델몬트)를 사 마시고 씻어서 보리차물병으로 사용했다. 손잡는 부위가 들어가서 그립감이 좋아서 인지 물병으로 인기가 높았다. 어느 집 냉장고 문을 열더라도 보리차물이 들어 있었다. 

 

 

주부들은 더운 여름날에 혹시 식구들이 물 먹고 배탈이 날까봐 노란 주전자에 보리차, 옥수수차를 끓였다. 

식구가 많은 집은 들통에다가 끓였는데 식힌 다음 유리병에 부어서 냉장고에 넣으면 금방 동이 났다. 

매일 물을 끓여야 하는 주부들에게 물을 끓이는 일은 중요한 주부의 일과 중 하나였다. 

 

좋은 물을 마시려고 주말 아침에는 약수터에 말통을 들고 아버지를 따라가야 했다. 새벽에 가야 줄을 서지 않는다고 해서 잠을 자는 아들을 깨워서 같이 갔다. 물통에 물을 담으면 무거웠고 물통을 하나만 가지고 가지 않기 때문에 아들 동반은 필수였다. 수돗물 대신 맑고 깨끗한 약수터 물이 인기가 있었다. 집집마다 말통이 몇 개씩 준비되어 있었다. 

 

학교에서 주번은 물 당번이었다. 노란 주전자를 수돗물로 채워서 교실에 갖다 놓아야 했다. 운동하고 나서 운동장 수돗가에 가서 입을 대고 시원하게 수돗물을 마시곤 했다. 

당시 물을 사먹는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런 생각이 80년대 부터 조금씩 달라지는 계기가 있었다. 수돗물에 대한 불신이 생긴 것이다. 수도권 수원지는 팔당댐이었는데 80년대 팔당댐에 생활하수가 방류되어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사람들은 팔당댐의 생활하수 방류 보도가 잇따르자 수돗물을 믿지 못하게 됐다. 당시 상수도 시설이 좋지 않아 단수가 되기도 했는데 단수 이후 녹슨 물이나 흙탕물이 나오고 심지어 수돗물에서 지렁이가 섞여 나오기도 했다. 

아무도 수돗물을 그냥 마시지 않았다. 

 

수원지 대부분은 한강이었다. 공장 오폐수가 쏟아져 나왔고 생활 쓰레기가 어마어마해서 한강이 깨끗하지 않았다. 80년대 초반 한강이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2.2%에 불과했다. 서울 주부 90%는 수돗물을 끓여 먹었다. 1975년 우리나라 최초 생수 제품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군 부대 납품으로 한정되었다. 일반 시민에게 판매하는 것은 불법이었다. 1988년 서울 스포츠 축제가 열릴 때 한시적으로 생수 판매가 허용되었다. 

이때도 외국인만 생수를 사 먹을 수 있었다. 88스포츠 축제가 종료 후 다시 생수 판매는 불법이 되었다. 

 

생수 판매 금지 이유

당시 정부가 생수 판매를 금지했던 이유는 크게 두가지였다. 수돗물에 대한 불신을 조장한다는 것이었다. 수돗물에 대한 불신이 높아진 상태에서 생수를 판매하면 정부가 수돗물  수질관리를 포기했다는 소문이 날까 봐 금지했다. 물을 사 먹게 되면 계층 간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다는 이유로 금지했다. 당시 대다수의 가정에서 물을 끓여 마시는데 돈 많은 사람들이 비싼 생수를 사 마신다고 하면 위화감이 들어 국민 통합을 방해할 것이라고 생수 판매를 금지했다. 하지만 잘 사는 사람들은 이미 프랑스 물을 사 마시고 있었다. 

 

암암리에 불법으로 생수를 유통하는 곳이 생겼다. 당시 국내에서 판매 금지했던 생수가 강남 고급 아파트 촌을 중심으로 대량 불법 유통되고 있었다. 매일 생수를 실은 트럭이 들락거리고 있었으며 아파트 절반 이상의 주민들이 생수를 마시고 있었다. 

 

생수가 불법으로 유통될 수 있었던 것은 아파트 경비에게 웃돈을 주고 손님을 유치했다. 물에 문제가 있어서 경비원에게 따지면 떠돌이 물장수에게 소개 받아서 연락처를 모른다고 했다고 한다.

당국은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눈감고 있었다. 당시 조사에 따르면 1993년 국내에서 생산되는 생수의 98%가 불법 유통되고 있었다. 생수 판매가 허용도 아니고 불법도 아닌 애매한 상태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널리 일상화되지 못한 이유는 생수 가격이 비쌌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 휘발류 가격 1리터당 222원이었다. 그때 생수는 1리터당 300~400원이었다. 맥주는 1리터당 350원이었다. 막걸리는 1리터당 388원, 콜라는 387원이었다.

 

생수의 인기를 틈타서 생수 사기꾼까지 등장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분위기였다. 엉터리 생수가 대량으로 공급되기 시작했다. 포장지에는 '00 산에는 뽑아 올린 살아있는 물'이라고 표시하고 물 병아래에는 흙 찌꺼기가 가라앉혀있었다. 게르마늄 성분이 들어있다고 과대광고를 하기도 했다. 세균 수치가 너무 높아서 마실 수 없는 물로 판정이 되기도 했다. 

 

1989년 수돗물 중금속 오염 논란이 있었다. 수돗물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고 있던 와중에 1991년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이 발생했다. 1991년 약 30톤의 페놀 원액이 유출돼어 영남 지역의 식수원이 오염된 사건이었다. 물고기 떼죽음부터 오염된 수돗물로 밥을 지어 악취가 나는 등 실생활 전반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연이은 수돗물 불신 논란으로 정부에 상수도 관리에 대한 불신이 쌓여갔다. 이런 사건들로 인해 깨끗한 물에 대한 국민 관심이 상승했다. 

 

 

불만이 극에 달하자 이 문제는 대법원까지 가게 되었고 1994년 마침내 생수 판매가 합법화되었다. 

국민들은 정부 관리하에 깨끗한 생수를 마실 수 있게 됐다. 생수 판매는 어마어마했다. 

약18리터 '말통' 생수가 사무실과 식당가에 유통되기 시작했다. 지금의 정수기로 발달되었고 정수기 대중화의 첫 번째 단계였다. 

생수시장의 규모는 2조 3천억원이다. 1994년대까지 국내 생수브랜드는 14개였다가 2024년 약 300여 개로 늘어났다. 지금은 취향대로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는 생수 종류가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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