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승리 살라미스 해전 테미스토클레스
테미스토클레스는 기원전 5세기경에 활약한 아테네의 정치가이자 장군이다. 세계 해전사에 한 획을 그은 것으로 알려진 살라미스 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장군이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고대 그리스 문명의 기반을 만들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테미스토클레스의 말년은 특이하다. 아테네 도편추방제에 의해서 쫓겨나게 된다.
도편추방제는 투표를 통해 민주정에 위험한 인물을 추방하는 제도였다.
쫓겨나서 본인이 100만 대군을 전멸시켰던 페르시아로 도주를 한다. 페르시아에서 받아주고 한때는 적이었던 소아시아 한 지역에서 총독이 된다.
테미스토클레스 Themistocles(BC 528?~BC 462?)는 아테네의 주류 시민은 아니었다.어머니는 이방인이었고 본인도 이방인에 가까운 낮은 신분의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내가 보잘것없는 사람이 될 리 없다, 나는 분명히 큰 사람이 될 거야"라는 말을 자주 했다.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 황제 크세르크세스가 100만 대군을 동원해 그리스를 침공한다. 페르시아 영역이었던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병사들까지도 표범 가죽을 두르고 가죽 방패를 들고 동원되었을 정도로 제국의 모든 역량을 동원했다. 스파르타 왕 레오니다스와 300명의 전사들이 영웅적인 활약을 펼치지만 전멸하게 되고 육지에서 그리스 연합군은 패퇴한다. 아테네까지 침공을 받으면서 아테네가 불타버린다.
페르시아의 판단은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정복하면 특히 아테네를 정복하면 그리스는 항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테네 시민은 테미스토클레스를 따라서 배를 타고 바다로 탈출한 뒤였다. 엄청난 함대를 가지고 있었다. 아테네 군대는 해상에서 적을 격파하고 불탄 고향을 되찾아야 했다.
육상국가 스파르타로 들어가는 코린토스 지협은 폭 1Km 도 안되는 땅으로 연결이 되어 있다. 스파르타는 코린토스 지협을 막으면 된다고 하여 육지에서 싸우자고 한다. 모두들 스파르타의 말을 들으려고 하니까 테미스토클레스는 자기 노예 한 명을 거짓으로 페르시아군에 도망가게 해서 증언을 시킨다. 그리스 연합군이 후퇴해서 코린토스 지협으로 가기로 한 것을 말해 버린다. 그러자 크세르크스가 당장 해협을 봉쇄하고 섬멸하려고 해군을 출동시켜서 해협을 봉쇄해 버린다. 그리스군은 퇴로가 막혀서 싸우는 수밖에 없었다.
기원전 480년 살라미스 해전이 벌어진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당시 배는 노를 저어서 이동했다. 페르시아군은 계속 노를 저어서 바다 위에 떠 있었고 배들이 밀집되어 있었다. 배끼리 들어가서 들이받아서 충각으로 들이받아서 전복시키고 전복이 안 되면 보병이 상대 배로 넘어가서 싸우는 것이다.
페르시아 군의 약점은 배 운행을 잘 못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비해 아테네 배는 바다에서 단련된 숙력자들이었다. 배를 들이받기에는 페르시아군이 아테네군을 상대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배가 밀집되어 있어서 피할 공간이 없었다.
부딪혀 전복되지 않으면 배로 타고 올라가야 하는데 그리스 군은 중장갑 보병이고 페르시아군은 갑옷도 거의 입지 않은 경장 보병들이었다. 그리스군이 기동성과 백병전에서 유리했다. 페르시아 함대가 더 많았지만 살라미스에서 그리스군이 대승리를 거두게 된다.
그리스군이 승리하면서 아테네가 그리스의 맹주가 된다. 다음 지도자 페리클레스가 불탄 아테네를 재건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도시로 바꾸어 버린다.
그리스를 침공한 이유
그리스는 엄청나게 척박한 땅이다. 그래서 아테네 사람들은 바다 건너에 소아시아, 지금의 튀르키에 지역에 엄청나게 풍요로운 땅이 있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풍요로운 땅으로 건너가서 식민 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한다. 또한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였다. 훗날 르네상스 부를 만들었던 지중해 무역의 원천이 되는 지역이다. 이 지역을 엄청나게 발전하면서 막강한 부를 축적하게 된다. 손만 대면 무엇이든지 금으로 변한다는 마이더스 손을 가진 왕이 살고 있는 곳, 프리기아는 소아시아에 위치한 왕국이다. 그만큼 부가 엄청난 곳이었다.
페르시아 본국에서는 소아시아가 위험해졌고 직접 지배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이곳에 있는 그리스 식민 도시와 페르시아 정부와 싸우게 된다. 이것이 그리스 본토로까지 전쟁이 확장된다.
페르시아 다리우스 대제의 1차.2차 침공은 실패하게 된다. 1차는 폭풍우 때문이고 2차는 마라톤의 기원이 된 마라톤 전투 때문이다. 마라톤 전투는 제2차 페르시아전쟁 때 그리스군이 대파한 싸움이다.
아들 크세르크세스는 다시는 실패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여 역사상 최대의 군대를 동원해 침공을 하게 되었다. 아테네는 풍전등화의 위기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 사태를 예측하고 그리스의 전쟁 준비를 이끌었던 인물은 테미스토클레스였다. 그는 페르시아가 전쟁에 패하고 돌아갔지만 다시 침공할 것을 예견하고 있었다. 페르시아 제국은 전쟁에서 패배했음에도 번성하고 있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아테네가 살길은 더 부강해지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당시 아테네는 농업국가였다. 아테네 시민들에게 앞으로 아테네가 살길은 무역이라고 말한다. 해양국가로 나가야 하고 함대와 무역에 투자해서 부국강병을 이루자는 주장을 하게 된다.
이때 운이 좋게도 아테네 남쪽에서 은광이 발견된다. 정치인들이 은광을 나눠서 국민들에게 분배하자고 한다. 테미스토클레스는 반대를 한다. 머지 않은 시일 내에 전쟁이 일어날 것이고 사회를 바꿔야 된다고 주장하며 은을 성곽과 항구와 함대에 투자하자고 한다. 아테네 '피레우스' 항구를 만들었던 사람이 테미스토클레스이다.
2500년 전에 테미스토클레스의 항구와 해양무역에 대한 투자는 그리스가 오늘날까지 경제적 이익을 걷을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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