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프 전쟁 지상작전, 레프트 훅
전쟁을 확실히 끝내려면 지상작전이 필요했다. 당시 여러 정보 보고에 따르면 다국적군 항공작전으로 이라크군이 받은 피해가 예상보다 적었다. 미군이 발표한 항공작전 성과는 이라크군 주요 장비는 30% 파괴, 이라크군 50% 손실, 공화국수비대는 25% 전투능력이 저하됐다. 이라크군은 아직 건재하다는 것이 미군 판단이었다. 항공작전은 이라크군 전력을 기대만큼 약화시키지 못했다. 확실히 전쟁을 끝내고 싶다면 지상작전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다국적군 대규모 지상작전이 시작된다. 지상작전의 목표는 후세인 정권 타도가 아니라 공화국수비대를 '섬멸'하는 것이었다. 슈와츠코프는 '섬멸'의 의미를 "파괴된 적이 더 이상 군대 기능을 하지 못하고 군사조직으로 존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로 정의한다.
공화국수비대를 후세인 권력의 기반으로써 역할을 할 수 없도록 연결고리를 끊어버린다는 의미였다.
1969년 공화국수비대는 대통령 경호를 위해 창설했다. 이란-이라크 전쟁을 거치면서 대규모 군대로 확대된다. 후세인 정권의 안정을 유지하고 내.외부의 적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징집이 아니라 자원한 군인들로 보너스, 차, 보조금, 주택 등 혜택이 좋았다. 이라크 정권의 근간이었다. 정규군보다 더 많은 훈련을 받았고 T-72 등 최신식 장비를 갖추었다. 공화국수비대는 이라크군 최고 엘리트 그룹이면서 정예부대였다.
따라서 공화국수비대를 무너뜨리면 후세인의 군사적 재기가 어려워진다.
공화국수비대에도 시아파 출신도 지원 가능했지만 장교는 없었다. 충성심이 입증된 극히 소수의 시아파만 발탁되었고 자랑스러워했다. 수니파가 장교단을 다수 차지했고 사담 후세인 동향인으로 장악하고 있었다.
이라크군은 미군 지상전에 맞서 막대한 병력을 국경지역에 배치한다.
이라크군은 세 겹으로 방어부대를 배치한다. 적과 대치하고 있는 1선 방어에 6개 군단 42개 사단을 배치한다.
쿠웨이트 남쪽에 2개 군단 16개 사단이 배치된다.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하구쪽에 미국 상륙작전을 예상하고 2개 군단 15개 사단 병력을 배치한다.
쿠웨이트 서쪽 내륙 사우디아라비아 국경 사막 지역에 2개 군단 병력은 10개 사단정도 배치한다. 1선에 6개 군단이 배치되어 있고 2선에 작전 예비대로 2개 군단 4개 사단은 쿠웨이트 후방에서 공격 대비하고 있었다.
3선에는 이라크의 핵심 최정예 공화국수비대가 배치되어 있었다. 기갑사단 2개, 기계화사단 1개, 보병사단 4개, 특수전사단 1개가 가장 내륙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다국적군 주공 방향으로 총병력을 투입할 계획이었다.
지상작전 시작전에 다국적군의 폭격으로 이라크군은 상당한 피해를 입었고 탈주병들도 있을 정도로 사기가 떨어져 있었다.
다국적군의 계획은 이라크군이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주공을 공격할 계획을 세웠다. 다국적군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공화국수비대를 섬멸할 수 있는 방법은 우회기동해서 퇴로를 차단하고 포위섬멸하는 것이다.
일익포위(一翼包圍) 계획으로 7군단을 투입하고 병력이 많아지면서 포위를 하는 깊이가 깊어지고 가는 기동거리도 길어진다. 대범한 계획으로 미식축구에서 쿼터벡이 롱패스로 고득점에 성공하는 '헤일 메리 플레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하나하나 점령하지 않고 한 방에 노리는 전술이다.
이 작전을 위해서 우회 기동해서 공격해야 하는 부대들을 미리 서쪽으로 보내야 한다. 20만 병력을 2차선 도로로 이동시켜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라크군이 눈치채지 못하게 이동해야 한다.
1991년 1월 20일 2개 군단이 서쪽으로 이동을 시작한다. 2개 군단 이동 대형 길이는 약 190Km였다.
동원된 차량은 65,000여 대였다. 7군단은 240Km를 이동해야 했고 맨 서쪽에 있는 18 공정군단은 3주 동안 약 420Km를 이동해야 했다. 가능했다. 이 기간 동안 미 해병대는 마치 쿠웨이트 쪽으로 상륙하는 것처럼 계속 기만 작전을 실시했고 공군이 대규모 항공작전을 하고 있었다. 이라크군의 감시망을 피할 수 있었다.
미군의 군수능력으로 무사히 병력을 계획한대로 공격출발 지점까지 보낼 수 있었고 지상작전을 할 수 있게 된다. 지상작전의 핵심은 '레프트 훅'이다.
레프트 훅 작전을 하기 위해서 미 해병대 2개 사단과 범아랍연합군의 임무는 이라크군이 점령하고 있는 쿠웨이트 영토를 남쪽에서부터 공격을 하면서 이라크군의 주력군을 최대한 고착시키고 견제시키는 것이다. 이라크군으로 하여금 다국적군이 노리는 것은 쿠웨이트라고 착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라크군이 최대한 도망을 가지 않고 고착화시키게 만들어야 한다. 서쪽 지상군의 좌익을 담당하는 미 18 공정군단은 공격이 시작되면 신속하게 이라크 영토를 진격해서 유프라테스강까지 진격해서 유프라테스계곡을 차단해야 한다. 이라크 본토와 쿠웨이트에 주둔하고 있는 이라크군 사이 연결을 차단하는 것이다.
군단의 일부 부대는 이라크 영토에 깊숙이 진격해서 바스라 외곽까지 도달해서 외곽 포위망을 형성하는 역할을 한다. 다국적군 공격 핵심은 가운데있는 미 육군 제7군단이다. 해병대가 고착시키고 미 18 공전군단이 뒤에서 차단하고 있는 동안에 7군단은 공격해야 한다.
미 육군 제7군단은 5개 사단이 동원됐다. 중앙에서 이라크 주력 공화국수비대를 공격해서 파괴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임무이다. 제7군단은 사우디아라비아부터 곧바로 이라크 쪽을 공격해서 북쪽으로 진격하다가 중간 콜린스를 지난 후에는 공격방향을 틀어서 이라크군을 공격한다.
방향 전환 후 타격을 '레프트 훅'이라고 한다. 공화국수비대를 격퇴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런 기동계획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쿠웨이트 앞에 있는 아랍합동군과 미 해병대, 18공정군단이 공화국수비대의 주력을 다국적군의 포위망으로 밀어 넣는 것이 중요하다. 각 부대 간의 공격 타이밍과 협조가 중요하다. 계획 성공을 위해서 각 부대 사령관들의 손발이 잘 맞아야 한다.
다국적군 주요 지휘관
중부사령부 총사령관 노먼 슈워츠코프
중부사령부 해병대 제1해병원정군 월터 부머
중부사령부 육군 제3군 존 요삭 -제7군단 프레데릭 프랭크스, 제18공수군단 게리 럭
중부사령부 공군 제9공군 찰스 호너
중부사령부 해군 제7함대 스탠리 아서
아랍합동군 사령관 칼리드 알사우드
슈워츠코프와 칼리드 알사우드는 이원화되어있고 협조관계이다. 하지만 1990년 11월 사우디아라비아를 방어하기 위한 사막의 방패 작전에서 사막의 폭풍작전으로 전략이 수정되면서 모든 군사작전에 대한 최종 승인은 미군 사령관 슈워츠코프가 가지는 것으로 최종승인된다. 슈워츠코프는 다국적군 사령관으로서 전쟁에 참전한 모든 미국 육. 해. 공군 작전을 주관하고 동시에 아랍군을 포함한 다국적군의 육. 해. 공군 작전을 관리해야 한다. 미국 수뇌부와도 소통 역할을 해야 했다. 야전군 사령관 역할을 수행하면서 육군과 해병대를 조율해야 한다. 과중한 업무였지만 슈워츠코프는 스마트한 사람이었다.
덩치가 워낙 크고 성격이 불 같아서 '곰'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중부사령부 육군 제3군 존 요삭은 야전사령관으로 슈워츠코프 업무를 덜어주었다.
존 요삭 휘하에는 제7군단 프레데릭 프랭크스와 제18공수군단 게리 럭이 있었다. 직접적으로 슈워츠코프가 이들에게 지시를 내리지 않고 존 요삭을 통해서 명령을 하달했다. 존 요삭은 사이를 중재하고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존 요삭과 프레데릭 프랭크스는 신중한 성격이었다. 슈워츠코프의 지상전 계획은 과감한 기동으로 한 방에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한발 한발 나아가면서 기회가 올 때 집중 공격하는 체계적인 공격을 선호했다. 빠른 속도보다는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을 선호했다.
제1해병원정군 월터 부머는 과감한 성향을 가졌다. 공명심이 있어서 언더독 해병대가 역할을 많이 하기를 바랬다. 제9공군 찰스 호너는 베트남 전쟁 당시 111회 출격해 전투 임무를 수행했다. 공군력으로만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상 항공작전은 슈워츠코프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육군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었다.
지상작전 개시일은 1991년 2월 24일로 정해진다. 공군 항공기 폭격에 더해 다국적군 강력한 포병 부대가 지상 목표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국적군에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무기가 있었다. MLRS '강철비'였다.
MLRS는 로켓 한 발로 축구장 3~4개 면적을 초토화시킬 수 있는 위력을 가졌다.
기갑차량도 뚫는다. 폭발과 함께 파편이 흩뿌려지며 주변 목표물을 타격한다. M26 로켓에 644발이 12발이 들어있어 한 차량에 7,728발이 탑재되어 있다가 한꺼번에 목표물에 흩뿌려지면 주변은 산산조각이 난다.
불발탄 집속탄을 밝으면 지뢰처럼 터진다.
첫날 7군단에서 야포 11,000발을 발사했고 MLRS로켓은 414발을 발사했다. 이라크군의 포병 진지를 쓸어버린다. 이라크 보병 진지도 수많은 자탄이 떨어지며 이라크군은 순식간에 불벼락을 맞는다.
야포와 MLRS 로켓 포격이 휩쓸고 간 자리에 AH-64 아파치. AH-1 코브라가 출격하면서 M1A1 에이브럼스 전차. M2 브래들리 장갑차가 휩쓸고 들어간다. 어마어마한 공포를 선사했다.
지하벙커에 숨겨 놓은 이라크 전차를 격파하기 위해 레이저 유도 폭탄으로 중요 지휘 벙커를 공격하고 B-52가 대량으로 출격하여 융단 폭격을 실시한다. 전방기지는 GPS와 레이저 유도 폭탄으로 파괴가 가능했다. 핵심 시설에 벙커 버스터 폭탄이 투하됐다. 벙커 버스터는 단 2발 사용되었다. 벙커 버스터 GBU-28이 최초로 사용됐다. 일반 지표면은 50m까지 뚫을 수 있고 콘크리트는 5m 이상 관통한다. 폭탄 무게는 2톤이다. GBU-28은 이라크 알타지 공군기지를 타격해 파괴했다.
아이오와급 전함 USS 미주리 BB-63, USS 위스콘신 BB-64는 초반에 들어오지 못했다. 상륙작전을 예상한 이라크군은 쿠웨이트시티 앞 페르시아만 입구에 기뢰를 깔아놓았다. 페르시아만 안쪽에 기름을 쏟아부었다. 전함이 상륙하면 불을 붙이려고 했다. 다국적군은 미군이 항공작전을 하는 기간 동안 소해 작업을 실시했다. 기뢰밭에 길을 내서 쿠웨이트시티 앞으로 2척의 전함이 진입한다.
지상작전이 시작되자 전함의 16인치 함포가 발사한다. 16인치 함포 포탄 하나는 거의 1톤이었다. B-52와는 차원이 다른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었다.
하지만 미군이 상륙작전을 포기한 이유가 되었다. 해병대는 상륙작전을 고집했지만 상륙작전에는 엄청난 화력 지원이 필요했다. 그러면 결국 쿠웨이트가 파괴될 수 있었다. 쿠웨이트를 엄청 파괴시키면서 쿠웨이트를 해방시키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 제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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