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학생 수 변천사
2022년 교육부 발표에 따르면 초등학교 학급 당 학생 수는 21.1명이었다. 서울 숭덕초등학교 1967년 한 학급 학생수는 90명이었는데 2019년 학생 수는 27명으로 줄었다.
학생수가 많아서 칠판 바로 앞에까지 앉아서 공부를 했는데 칠판지우개 먼지와 선생님 침 튀기는 것까지 감수해야 하는 자리였다. 키가 작은 학생은 고개를 치켜들어야 칠판이 보였다.
초등학교 학급 학생 당 학생수는 1970년 평균 62.1명이었다가 2022년 평균 21.1명으로 줄어들었다.
연령이 어려질수록 더욱 심각한 상황이며 2022년 서울시 605개 초등학교에서 입학생이 100명도 안 되는 학교가 절반이 넘는 315개 학교였다. 현재 전국 초등학교 22%는 전교생이 60명 이하이고 지금처럼 감소세가 지속이 되면 2030년에 초등학교 30%가 폐교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지방은 상황이 더 나빠져서 지자체마다 폐교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전학을 오면 일자리, 주택 등을 보장하며 학생 수를 유입시키려고 하는 지자체가 늘고 있다.
출산율이 감소하여 유치원이 있던 자리에 '노치원'이 생기고 있다. 학생 수가 줄어들면서 어린이집, 유치원이 있던 자리에 노인 시설로 간판을 바꾸는 경우가 최근 5년 간 82곳이다.
저출산은 인구 감소로 이어진다. 2022년 출생수보다 사망자수가 많다 보니 약 12만 명 정도 인구가 자연 감소했다. 충북 제천시가 13만 명 정도이므로 한 지자체가 사라진 셈이다.
세계 인구학자들은 이대로 가면 한국은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첫 국가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2022년 한국 합계 출산율 0.78명으로 사상 최저 수치를 기록했다.
경기도 안양국민학교는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전체 학생 수가 5천 명을 넘는 경기도 최대 규모의 국민학교였다. 1부제 수업을 마친 학생들과 2부제 수업을 기다리는 학생들로 운동장은 붐볐다. 하교하는 오전반 등교하는 오후반으로 '2부제 수업'을 해야 했다. 한 교실을 두 반이 함께 쓰고 신발도 2층을 쌓아 쓰던 시절이었다.
2부제도 모자라 3부제,4부제까지 생기자 결국 특단의 조치를 취한다. 강력한 산아제한정책을 펼친다.
'많이 낳아 고생말고 적게 낳아 잘 기르자', '덮어 놓고 낳다 보면 거지 꼴을 못 면한다'
취학아동 수는 해마다 늘어나게 되므로 가족계획을 통한 국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협조 없이는 교실 난을 완전하게 해결하기 어렵지 않겠습니까?"
"3자녀 이상의 가정에는 3번째 자녀가 출생할 때부터 주민세와 의료보험료를 추가 부담시킬 방침입니다. 이와 같이 다산 가정에 불이익을 주는 제도를 추진한다면 94년에 가서 인구 증가율이 1% 수준에 도달할 것이고 이 목표가 달성되어도 2023년경에야 선진국 수준인 0%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TV에서 연일 흘러나왔다. 산아제한을 안 하면 큰일이 날것처럼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너무 억제한 탓인지 이제 학생들 보기가 어려워졌다. 풍금 소리보다 아이들 목소리가 더 우렁찼던 그 시절 콩나물시루 교실을 다시는 볼 수 없다.
1955~1963년까지 합계 출산율이 6.1%였다. 학생은 많고 학교는 부족해서 2부제, 3부제, 4부제 수업도 속출했고 운동장이 비좁아서 1,3,5학년과 2,4,6학년이 날짜를 달리해서 운동회를 하기도 했다.
6학년까지 같이 한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동창회 나갔다가 처음 만나는 경우가 있었다. 학생들이 책상 사이로 지나가다 넘어지기도 하고 화장실이 부족해서 못 가는 등 과밀학급의 단점들이 발생했다.
학생수가 너무 많아 기네스북에 오른 학교도 있었다. 1970년대 학생수가 많은 학급은 한 반에 100명이 넘기도 했다. 전교생이 1만 명이 넘는 초등학교도 많았다.
동작구 신대방동에 문창초등학교와 동대문구에 전농초등학교가 학생수가 워낙 많아서 기네스북에 오를 것이라 생각했지만 1972년에 서울 숭인 초등학교가 기록에 의하면 학생 수 1만 1,965명이었다. 그러면서 동양 최대의 매머드 학교라고 알려졌다. 통계가 정확하지 않아 서로 학생수가 더 많다고 하기도 했다.
최근 기록에 따르면 1978년 서울 독산초등학교 2학년 5반 학생수가 104명으로 세계 최고로 인정을 받았다고 알려진다.
초등학교 2부제 수업은 1970년대 교육 현장의 대표적인 특징이었다. 오전반 수업이 1시쯤 끝나면 하교하고 오후반 수업하러 등교하는 학생들이 교차하면서 북새통을 이뤘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오전에 전교 학생들이 운동장에 모여 조회를 했다. 뙤약볕에서 교장선생님 훈화 말씀을 듣다 보면 쓰러지는 아이도 있었다. 쓰러지는 아이는 보통 남자 담임 선생님이나 체육 선생님 등에 업혀 양호실로 향했다.
옆에 있던 친구 두 명이 양쪽으로 부축해서 양호실로 가곤 했는데 친구와 짜고 일부러 쓰러지는 아이도 있었다. 교장선생님 훈화 말씀은 항상 '마지막으로 "하면서 마지막이 끝나지 않고 이어졌으며 마이크 확성기 소리는 '웅웅' 울려 정말 지루한 시간이었다.
장학사 온다고 '환경 미화' 한다며 학교 교실 바닥을 치우고 물걸레질을 하고 초로 반질반질 문지르고 창문을 닦는 등 야단법석을 떨었다. 집에서 걸레 만들어오라고 해서 못 쓰는 수건을 어머니가 네모로 바느질해서 주면 학교 가서 교실 바닥을 닦았다. 당시 나무 마루 바닥에는 가시가 일어나서 걸레질하다가 손에 찔리기도 했다.
70~80년대 야간반 <근로청소년>
70~80년대에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던 근로청소년이 있었다. 6시부터 수업하는 야간 특별반으로 산업체 부설 학교에 다니던 근로청소년이 있었다.
남들은 야간에 잠자리에 들 시간이지만 근로청소년들은 학교로 향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산업현장에서 근무하고 오후 6시부터 밤 9시까지 학교에서 공부했다. 밤 10시~새벽까지 기숙사에 돌아와서 복습까지 했다. 부모의 걱정을 한시름 더는 의젓한 학생들이었는데 그들은 졸업식에서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오빠나 동생들 공부시키겠다고 산업근로자를 선택한 여학생들이 많았다.
방적공장이나 버스 안내양으로 일을 하러 갔었다. 1976년 12월에 산업이 부흥하면서 야간 특별학급(야학)이 시작된다. 산업체 내에서 주야간 고등학교 설립이 시작됐고 전국적으로 4만 2천여 명 정도가 일을 하면서 야학을 했다. 산업현장의 근무 환경이 좋지 않아 이직률이 높아서 고민하던 시기에 야학을 시작하면서 일도 하고 공부도 할 수 있게 해 주겠다고 해서 이직률이 낮아졌다. 구로공단, 구미공단, 마산공단, 사상공단 등을 중심으로 야학이 활발했다.
1980년대부터 교육환경이 좋아졌고 생활여건이 좋아지면서 고등학교 진학률이 높아지면서 1990년대 섬유업계가 쇠퇴하며 산업체 학교도 급감했다. 2016년 이후 공식적으로 산업체 학교는 완전히 없어진다. '여공'이라 불렸던 어린 여직공들은 산업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며 집안을 유지하는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했다. 공장에서 일을 끝내고 교복을 입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했다고 한다.
현재는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이지만 국민학교, 중학교는 육성회비(월사금, 기성회비)를 내야 했다.
육성회비는 1970년부터 자녀 교육을 위해 학부모의 자진 협찬 형식으로 마련했던 회비였다. 1997년 모든 학교에서 완전 폐지됐다. 육성회비를 못 내서 학교 오는 아이들의 발걸음이 무거웠는데 육성회비를 안 내면 교무실로 불려 가서 손바닥을 맞기도 했고 복도에서 손들고 서 있어야 했다. 친구들 앞이라 너무 창피했다.
있는 집 아이들은 몇 달 치를 한꺼번에 내기도 했다. 그런 아이들은 반에서 큰 소리를 쳤고 보통 부모가 학교 육성회장, 학부모회장을 맡았고 학교 행사 때 찬조를 많이 했다. 예를 들면 소풍 갈 때 도시락을 준비하거나 운동회 때 부족한 물품을 준비하기도 했다. 농촌 학교 육성회장을 맞았던 부자 농사꾼은 김장철이 되면 배추를 후원하기도 했고 과일 농사를 짓는 학부모 회장은 과일을 후원하기도 했다.
도시 학교는 육성회비가 450~600원이었는데 시골에서는 육성회비가 150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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