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색 장판이 유행한 이유
1980년대에서 90년대까지 노란색 장판이 유행한 이유는 옛날 왕실에서 사용하던 귀한 바닥재였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 왕실에서는 비닐 소재가 아닌 한지였다. 한지를 바닥에 깐 후에 불린 콩을 갈고 들기름과 섞어서 바닥에 바르는 과정을 반복하면 한지의 노란색이 점점 진해진다. 이것은 전통 '콩댐 작업'이라 부른다.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라서 옛날에는 왕실에서 사용한 고급 기법이었다.
콩댐 작업을 한 한지 장판은 물이 스며들지 않고 오래오래 사용할 수 있었고 아름다운 윤기가 났다. 하지만 손이 너무 많이 가서 가격이 비싸다는 큰 단점이 있었다. 70~80년대 서울에 아파트가 대량 공급될 무렵부터는 빨리빨리 아파트를 지어야 하기 때문에 전통방식인 한지 장판은 사용하기 어려워졌다.
1985년 한지장판을 똑같이 흉내 낸 L사의 민속 장판이 등장했다. 70년대 니스 장판이나 PVC비닐장판이 유행했는데 사람들이 고향집 아랫목에서 따뜻하게 누웠던 콩댐 한지장판을 그리워하는 것을 공략했다.
민속 장판은 장판지가 겹치는 경계선 자국도 흉내 내서 출시했다. 장판의 붓 자국까지 똑같이 재현했다.
1990년대에는 옥색 인테리어가 유행했다. 옥색은 싱크대, 욕실 타일, 변기, 세면대, 몰딩 등 다양하게 사용했다. 관공서, 군대식당 의자 식탁 등에서도 주로 사용했고 공중전화도 옥색이었다.
1990년대 옥색이 유독 많이 사용되었던 이유는 90년대 옥색인테리어가 그 당시 가장 인기 있던 힙합 스타일이었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옥색(비취색)을 귀하게 여겼다. 고려시대 고려청자의 색깔도 옥색이고 조선시대 장신구 비녀, 가락지도 옥색이 많았다. 동양 최고 보석은 옥이었다.
국회의사당 지붕 색깔이 처음에는 검붉은색이었다. 국회의사당은 1975년 완공되었는데 공사가 끝날 무렵에 지붕에 검붉은 색 동판이 올라가니 어울리지 않았고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그러자 건설 담당자가 "세월이 지나면 녹이 슬어서 고급스러운 푸른색으로 변할 것"이라 말했다. 정말 시간이 지나자 지붕이 녹이 슬어서 지금의 옥색 지붕이 되었다.
1990년대 아파트 자재를 대량으로 양산하면서 한 건설업체가 옥색 트랜드를 주도했다. 당시에는 나무 색 인테리어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처음으로 밝은 옥색으로 바뀌니 세련되고 신선한 느낌을 선사했다.
옥색 유행이 지나자 2000년대는 '체리색' 열풍이 시작된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이어진 아파트의 체리색 몰딩이 많은 이유는 브랜드 아파트의 '고급화' 전략 때문이었다.
브랜드 고급화로 아파트 인테리어에 신경 쓰기 시작한다. 아파트 이름이 어려운 영어식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몰딩색깔을 고심하다 원목의 고풍스러움을 살릴 수 있는 체리색을 선택했다. 처음에는 신박했고 고급스러워 보였다. 체리색이 유행을 타면서 여기저기 다 체리색으로 꾸미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자 촌스로운 색깔이 되었다. 체리색은 강한 색깔로 인테리어를 하면 체리색과 어울리는 가구선택이 제한되었고 집이 좁아 보이는 효과가 있다. 가족이 점점 핵가족화되면서 집 크기가 점점 좁아졌고 체리색 몰딩을 기피하게 되었다.
2000년 대 중반부터 포인트 벽지가 유행을 탔다. 한쪽 벽만 벽지를 바르는 방식으로 비싼 도배사를 부르지 않고도 저렴하게 셀프 인테리어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고 집안 분위기를 전환하는데 좋았다. 주부들이 거실, 침실, 주방, 아이들 방에 포인트 벽지를 발랐다.
큼직하고 화려한 꽃무늬벽지가 답답하고 집을 좁아 보이게 해서 점점 사라졌다.
요즘 최신 인테리어의 트렌드는 전체 화이트로 꾸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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