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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학지식

신윤복 조선 후기 상류 사회의 풍류를 그리다

by 소시민스토리 2024.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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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 조선 후기 상류 사회의 풍류를 그리다

정조 시대 문화 절정기를 이끈 두 명의 천재 화원은 김홍도와 신윤복이다. 조선 후기 양반 상류사회의 드라마의 일인자는 혜원 신윤복(1758~?)이었다. 신윤복이 남긴 풍속화첩을 보면 정조 시대 호사스러운 문화를 짐작할 수 있다. 신윤복의 풍속화첩을 <혜원전신첩>이라 부른다. '전신'이라는 단어는 원래 초상화에 쓰던 표현이다.

전신傳神은 초사화를 그릴 때 외형뿐 아니라 인물의 정신까지 담아야 한다는 초상화 이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풍속화 속 인물들의 정신 또한 화첩을 통해서 드러날 수 있어서 '혜원전신첩'이라는 이름은 멋들어진다. 

 

 

<상춘야흥> 봄을 즐기는 들놀이의 흥겨움. 

 

신윤복 화첩에 가장 많은 계절은 봄날이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꽃은 진달래이다. 한국인의 봄날을 진달래가 상징한다. 오른쪽의 풍채 좋은 선비와 죽침을 옆에 두고 있는 선비가 주인공이다. 조선 선비들은 외출할 때 갓을 쓴다.  따라서 장소는 집 뒷마당이 아니라 야외이다. 야외 놀이 필수품은 돗자리이다. 적당한 장소에 돗자리를 펼치면 그곳이 놀이장소로 변한다. 음악은 빠질 수 없다. 맨 오른쪽은 거문고, 가운데 해금, 맨 마지막에  대금이다.

 

신윤복은 거문고 주자와 대금 주자는 뒤통수를 그렸는데 해금 주자만 고개를 돌려놨다. 해금 악기는 연주 중에 얼굴이 자유롭다. 해금 주자까지 얼굴이 안 보이고 뒤통수만 그렸다면 악공들의 얼굴을 알 길이 없다. 맨 아래쪽 왼쪽에 개다리소반에 주안상을 마련한 주모가 종종걸음으로 놀이장소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유일하게 움직이는 사람은 주모이다. 한 사람을 움직여서 그림의 움직임을 보이게 만드는 것은 신윤복의 재능이다. 

 

두 기녀의 눈빛은 잘 보면 왼쪽 살짝 나이든 기녀가 오른쪽 젊은 기녀를 째려보고 있다. 젊은 기녀의 미모를 시기 질투하며 견제하자 젊은 기녀가 무서워 기를 펴지 못하고 있다. 이렇듯 신윤복의 그림은 눈빛만으로도 드라마가 완성된다. 

 

 

 

<연소답청> 젊은이들의 봄나들이

 

젊은이들이 어른들과 달리 각자 집에서 멋진 조랑말 한 마리씩 끌고 기녀들을 태우고 진달래 꽃 구경하러 가기 직전의 모습이다. 

두 쌍은 이미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고 아래 왼쪽의 조랑말은 헐레벌떡 달려 들어오고 있다. 장옷 바람에 펄럭이며 갓 덜렁거리며 마구 달려오는 모습으로 마지막 한 쌍이 도착한다. 이 모습으로 그림이 훌륭한 동영상으로 탈바꿈한다. 선비 세 명, 기녀 세 명, 마부 두 명이 그려져 있다. 마부 한 명은 없다. 마부 손에 들린 갓의 주인공은 찾는 것이 그림의 비밀이다. 맨 오른쪽의 말고삐를 쥐고 있는 사람은 마부이며 벙거지를 쓰고 있다.

 

선비가 집에서 출발하면서 마부한테 한마디 한 것이다. "오늘 모자 한 번 바꿔 써보자"해서 선비는 마부 벙거지를 냉큼 썼는데 마부는 선비의 갓을 쓸 수 없는 노릇이라 손에 들고 얼굴 찌푸리며 따라가고 있다. 그래서 맨 뒤에 마부 손에 선비 갓이 들려있다. 오늘 마부를 데리고 오지 않은 선비는 가운데 두 손으로 담뱃대를 두 손으로 잡은 선비이다. 

호사스러운 장면을 더욱 돋보이게 한 것은 앞에 있는 기녀 머리에 꽂은 꽃이다. 진달래 가지를 머리에 꽂았고 입에 담배를 물고 있다. 두 명의 화사한 기녀 전신全身에 흐르는 것은 진달래 꽃에 대한 기대와 흥분이다. 

 

 

 

<청금상련> 가야금 소리 들으며 연꽃을 감상하다

 

집안, 후원後園에 선비들과 기녀들이 있다. 선비 세 명 중 집주인은 누굴까를 찾아본다. 서 있는 선비와 가운데 선비는 갓을 쓰고 있고 맨 왼쪽 선비만 관이 없다. 아래에 사방관이 떨어져 있다. 사방관은 집에서 쓰는 관이다. 그래서 이 집주인이다.

가운데 선비는 왜 다리 혼자 아프게 서 있을까? 모두 앉게 되면 그림이 무거워진다. 한 명이 서 있으니 삼각 구도가 만들어진다.  인물의 효율적 배치를 통해 그림의 안정성과 멋을 높였다. 

 

두 명의 기녀가 다소곳이 앉아 음악을 즐기고 있다. 기녀는 가야금 연주를 시작했는지 조율 중인지 알 수 있다. 왼손으로는 안족을 움직이고 있고 오른손으로는 중간 부분에서 튕긴다.

※안족은 각 현의 기본 음높이를 결정하는 기러기발처럼 생긴 가야금의 부속이다. 

신윤복이 후원에서 펼쳐지는 양반들의 가야금 연주에 정통하지 않았다면 결코 잡을 수 없는 장면이다. 

늘 상류사회와 놀았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표현이다. 신윤복은 상류 사회의 전속 화가 인 셈이다. 

 

 

<주유청강> 맑은 강에서 뱃놀이하다

 

기녀와 선비의 숫자가 맞다. 가운데 젓대(대금)를 물고 있는 총각, 맨 왼쪽 뱃사공까지 총 8명이다. 젊은 총각 두 명은 기녀와 딱 붙어 있는 데 가운데 수염 있는 선비는 자신의 파트너가 혼자 뱃머리에 외롭게 생황을 불면서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있다. 배 옆에 턱을 괴고 있는 선비는 젊은 선비로 기녀를 바라본다. 눈빛이 똑같은 사람은 없다. 신윤복은 눈빛만으로도 드라마를 만들고 여러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든다. 

젓대(대금)를 불고 있는 총각과 생황을 부는 기녀, 생황과 대금의 이중주로 뱃놀이 음악은 풍성해진다. 

 

 

 

<단오풍정> 단옷날의 풍속 정경

 

<혜원전신첩> 30장 중에 가장 인기가 있다. 음력 5월 5일에 지내는 우리나라의 명절, 단오이다.  날씨 좋은 단옷날 기녀들이 가까운 산 계곡을 찾아 창포물에 머리 감고 그네 타고 목욕한다. 창포물에 머리를 감으려면 아리따운 검은 가체를 풀어야 하지만 가체를 푼 여인이 한 명도 없다. 아름다운 가체를 그려 넣어 기녀의 아름다움을 표현했고 한 명의 기녀가 서 있는 것은 한양 기녀의 몸매를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옷을 반쯤 벗고 있는 기녀들이 목욕하는 곳은 당연히 금난의 구역이다. 젊은 스님 '사미승' 두 명이 바위틈에서 모래 훔쳐보고 있다. 전문용어로  '훔쳐보기'라고 하며 동양뿐만 아니라 서양에서도 아주 고전의 방법이다.  서양은 '피핑탐(Peeping Tom)', 훔쳐보는 탐'이라고 부른다.

 

기녀들은 창포물에 머리 감고 머리 말리고 새 옷 갈아입고 그네를 탄다. 

붉은 치마를 입은 기녀가 오른손은 위로, 왼손은 아래로, 왼쪽 다리 올리고, 오른쪽 다리는 내리고 우아하게 그네를 탄다. 뒤에 앉은 기녀는 푸른 치마를 입었다. 신윤복 그림에서 감상포인트는 붉은 치마와 푸른 치마이다. 우리 전통의 양대 색이다. 옛날 사람들은 '단청丹靑'이라고 불렀다.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서 여인이 막 그림으로 들어온다. 보따리에는 술병 주둥이가 불룩 튀어나와 있다.

단오의 풍속이 신윤복 그림 한 장에 오롯이 살아있다. 

 

 

 

<쌍검대무> 쌍검으로 마주 보고 춤추다

 

신윤복이 가장 많은 사람을 그린 그림이다. 28.2 × 36.6cm의 종이에 16명 인물이 그려져 있다. 돗자리가 7장이나 깔려있다.  신윤복은 정통 시점, 부감법으로 사람을 겹치지 않게 그렸다. 그래서 16명이 그려져 있지만 화폭이 좁다는 생각은 안 든다.

※부감법俯瞰法은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본 풍경을 그리는 방법이다.

 

조선 선비들의 최고 풍류는 칼춤 감상이었다. 오늘날에는 명맥이 거의 끊긴 칼춤의 향연을 신윤복의 그림에서 맛볼 수 있다. 칼춤 추녀 기녀는 붉은 치마와 푸른 치마를 입고 있다. 왼쪽 기녀는 뒷모습, 오른쪽 기녀는 앞모습을 그렸다. 다 그리면 재미없다. 동양 그림의 묘미, 감상자로 하여금 상상의 여지를 북돋는 것이다. 

기녀들 옷자락에 바람은 휘날리고 있고 도포를 입은 악공들은 푸른색으로 맞춰 입었다. 맨 오른쪽 북재비만 옷이 다르다. 악공들의 대장일 것이다.  6명의 악기구성을 '삼현육각'이라 부른다.

※삼현육각은 향피리 2. 대금. 해금. 장구. 북의 6인조를 원칙으로 하는 국악의 악기편성법이다. 

악공들은 푸른색 도포를 입었다. 푸른색 도포 색깔이 푸른색이지만 다 다른 색을 입고 있다. 

'화이부동和而不同' 조화롭지만 같지 않게 그려낸 악공들의 의상이다. 

 

맨 왼쪽 아래에 수염을 쓰다듬고 있는 선비는 오른손에 얼굴 가리개 부채를 가지고 있다. '차면선遮面扇'이라 부른다. 얼굴을 드러내면 안 되는 지체 높은 선비들이 외출할 때 가지고 다녔던 것이다. 지금 차면선을 내려놓고 있다. 얼굴을 가리고 있다가 잠깐 내려놓았는데 신윤복이 기가 막히게 놓치지 않고 그려냈다. 양반들의 풍류를 순간 포착해서 화폭에 담아냈다. 춤사위도 맛볼 수 있고 삼현육각 음악 소리에도 빠질 수 있다.

신윤복 그림으로 200백 년 전 풍류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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