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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학지식

김홍도 마지막 그림 기로세련계도, 추성부도

by 소시민스토리 2024.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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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 마지막 그림 기로세련계도, 추성부도

김홍도의 그림 세계에서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배려를 했던 사람은 정조였다. 정조 즉위 후 제일 먼저 시작한 사업은 창덕궁에 규장각을 설치한 일이다. 규장각奎章閣의 규장은 임금의 문장을 뜻한다. 규장각에 할아버지 영조가 지은 글들을 보관하게 된다. 규장각(왕실 도서관)이 준공되고 나서 규장각 준공 그림을 일등 화원이었던 김홍도에게 맡긴다. 

 

 

<규장각도> 김홍도作

 

우뚝하게 솟은 산은 북악산이다. 북악산은 창덕궁 뒤에 있지 않다. 김홍도는 왼쪽에 있는 북악산을 오른쪽으로 끌어당긴 것이다. 그래서 그림의 중심을 잡아준다.

북악산 왼쪽에 멀리 아스라이 보이는 바위산은 봉우리 세 개가 우뚝하다. 삼각산이다. 삼각산은 북한산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산봉우리다. 위의 그림만 보면 멋진 한양의 진경산수화가 된다.

규장각을 아름다운 소나무가 둘러싸고 있다. 32살의 김홍도의 짙푸른 소나무 그림은 대가의 경지에 오른 김홍도의 손길이다.  규장각을 올라가는 작은 문은 '어수문'이다. 현판은 달지 않았다. 옛날 기록화에서 건물들의 현판은 적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어수문漁水門은 물고기 어魚, 물 수水, 문 문門 이다. 임금이 물이라면 신하들은 물고기, 물이 좋고 넓어야 신하들은 마음껏 헤엄을 칠 수 있다. 

아래에 창덕궁에서 가장 아름다운 멋진 연못이 펼쳐진다. 이곳에 정조는 도서관을 세웠다. 정조 시대 선비들은 규장각에서 책을 읽다가 연못에 가서 머리를 식혔다.

김홍도가 그렸다는 명확한 증거는 그림 오른쪽 끝에 있다. 소신 김홍도 봉 교 근사, 소신 김홍도가 임금의 가르침을 받들어 삼가 그리다.

 

조선 도화서 화원들이 가장 중요하게 그렸던 공공 기록화는 임금의 초상화(어진御眞)였다. 

임금뿐만 아니라 많은 신하들도 당대 최고의 화가에게서 자신의 초상을 남기게 된다. 

 

 

<서직수 초상> 이명기. 김홍도作

 

김홍도가 그린 초상화 중에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단 하나의 작품이다. 하지만 이 그림은 온전한 김홍도의 솜씨가 아니다. 얼굴은 정조 대 초상화의 일인자, 이명기가 그렸고 김홍도는 몸체를 담당하게 된다.

초상화의 주인공은 62세의 서직수이다. 아주 깊고 그윽한 눈빛이 찬란하게 빛을 발하고 있다. 이것을 옛 분들은 전할 전傳, 정신 신神, '전신'이라고 불렀다. 그림 속 주인공의 정신이 전달돼야 된다는 것이다. 왼쪽 뺨에는 점 세 개가 있고 털 두 개가 점에 고스란히 박혀있다. 문화절정기에 사실성을 추구한 시대정신이다.

의젓한 도포 품, 검고 가느다란 띠, 하얀 버선발을 우아하게 그렸다. 손은 그리지 않았다. 조선 초상화의 특징 중에 하나이다. 흰 버선발을 그려 선비의 고아한 기품이 살아난다. 

 

<기로세련계도> 김홍도作

 

김홍도는 61살에  손에서 붓을 내려놓았다. 61살에 그린 그림 두 점이 있다. 돌아가시기 전 두 번째로 그린 '기로세련계도'가 있다. '기로'는 옛날에 70대의 노인들을 불렀던 용어이다. '세련'은 대대로 이어졌다는 뜻이고 '계'는 모임, 만남, 약속이라는 뜻이다.

기로세련계도는 70대 노인들을 위한 경로잔치 그림이다. 개성에 사는 70대 노인들이 1804년9월 9일에 송악산 아래의 옛날 고려 왕궁터였던 만월대에서 잔치를 펼쳤다. 송악산의 늠름한 자태가 가을 단풍과 어우러져 아름답다. 붉은 단풍을 더 찍었어도 될 텐데 그러지 않았다. 옛날 선비들은 결코 현란한 것을 원하지 않았다.

붉은색을 아껴 격조 있게 송악산의 단풍을 표현했다.

 

 

 

경로잔치에 흰색 천막을 쳤다. 병풍을 처 놓고 70 노인들, 64명이 빙 둘러앉아있다. 실제로는 65명이다. 김홍도는 왜 1명을 더 그렸을까는 아직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가운데 갓 쓴 선비가 열심히 술잔을 아동들에게 넘긴다. 무대 가운데는 동자 두 명이 마주 보고 춤을 추고 있다. 아래 부분에 악공들이 일렬로 앉아서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악공들의 악기는 삼현육각이다. 

※삼현육각(三絃六角)은 향피리 2. 대금. 해금. 장구. 북의 6인조를 원칙으로 하는 국악의 악기편성법이다. 

삼현육각은 조선시대 춤 반주의 가장 기본이었다.

 

오른쪽 아래 초가로 만든 임시 주막이 있다. 앞에 주안상을 머리에 인 세 명의 여인이 있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여성 네 명 가운데 세 명이다. 여성 한 명은 왼쪽 위에 흙바닥에 털썩 주저 않아 있다. 여인 앞에는 항아리가 놓여 있다. 이동식 주막이다. 경로잔치 구경하러 온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 잔술을 팔고 있다. 임시 주막 아래에 소나무 한 그루가 있다. 소나로 아래서 노인 두 명이 춤을 추고 있다. 

 

아래쪽 만월대 계단에 지게 두 개가 놓여있다. 조선 나무꾼만 썼던 지게는 김홍도가 마지막으로 그린 지게이다. 지게의 주인, 두 어린아이가 오른쪽에서 정답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만월대 위로 올라서려 하고 있다. 

잔치 구경을 하자며 손짓을 하고 있다. 두 아이의 손짓이 그림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맽 밑에는 이날 잔치에 참석한 64명의 이름과 본관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추성부도秋聲賦圖> 김홍도作

 

김홍도의 마지막 작품이다. '부'는 산문시를 뜻하는 용어다. 추성부는 북송 시대 구양수가 지은 산문시이다. 

※구양수(1007~1072)는 중국 송나라의 정치가 겸 문인이다. 구양수는 당대 최고의 시인이었다. 많은 시 중에 가장 사랑받은 시가 <추성부>이다. 가을 소리를 읊은 시'라는 뜻이다. 

 

구양자(구양수)가 밤에 막 책을 읽으려는 참에 서남쪽에서 오는 소리를 들었다.

내가 동자에게 이것은 무슨 소리냐? 너는 나가서 살펴보도록 하라 "라고 하자 

동자는 "별과 달이 밝게 빛나고 밝은 은하수가 하늘에 있습니다, 사방에는 사람의 소리라고는 없고 

소리가 나무 사이에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구양자가 말했다.

 

"슬프다. 이것은 가을 소리이다, 어찌하여 우는 것인가?"

동자는 대답 없이 머리를 떨구고 자고 있었다.

다만 사방의 벽에서 벌레 소리만 찌르르 들려 나의 탄식을 돕고 있는 듯하였다.

 

가을낙엽을 다 떨군 가을밤 인생의 조락凋落, 혹은 세상 만물의 쓸쓸함을 가슴 깊이 느끼는 때이다. 

이때 김홍도는 병을 앓게 된다. 자신의 화려했던 영광이 점점 사그라드는 이때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해 붓을 잡고 추성부도를 그렸다. 그림 속 집의 창문은 동그랗다. 조선의 집 창문은 아니고 중국에서 소재를 가져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동그란 창안에 앉여있는 사람이 구양수이다. 왼쪽에 동자 한 명이 손을 들고서 하늘을 가르키고 있다. 나무 사이에서 나는 바람소리를 가리키는 모습이다. 나무는 단풍잎이 몇 개 남아있지 않고 스산한 나무 뒤편에는 완전히 비어있다. 가을밤을 그린 것이다.  동양화의 중요한 특징은 빛과 그림자가 없다. 그래서 밤을 그리는 법은 안개를 어둡게 여백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쓸쓸한 정경만 봐도 가을날에 스산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환하게 보름달이 떠 있다. 왼쪽 하늘에 아스라이 떠 있다. 달을 그리지 않고 주변을 물들여서 달을 표현한다.

김홍도는 <추성부>의 전체 내용을 여백에 옮겨 놓았다. 이렇게 김홍도의 친필로 글이 많은 그림은 이 그림이 유일하다. 김홍도의 마지막 서명은 단구사(丹邱寫 단구가 그리다)이다. 2m짜리 두루마리 <추성부도>는 김홍도의 절필작絶筆作이다. 마지막 김홍도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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