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심과 지조를 지킨 제갈량
제갈량의 생애를 표현한 말 두 마디로 표현하면 충심과 지조였다.
27살의 제갈량은 유비 곁으로 내려와서 정치가의 길로 들어선다. 능숙한 외교 수단을 보여준다. 208년 조조가 30여만 대군을 몰고 남하했다. 동으로 건너가서 손권을 설득해서 외교 성과를 올린다. 유비는 땅 한 뼘 없었다. 유표 밑에 의탁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동오로 건너가서 조조와 여러 번 싸워 본 사람은 유비뿐이다며 손권을 설득시킨다. 유비는 손권과 대등한 입장에서 연합하게 된다. 정족삼분을 약속받았다. 이 전쟁은 틀림없이 이길 것이며 이기고 나면 우리에게 땅 일부분을 빌려달라고 했고 손권도 그 약속을 이행했다.
외교의 성과를 바탕으로 형주와 익주를 차지하게 된다. 유비와 손권의 연압 사실을 조조가 알고 편지를 쓰다가 붓을 떨어뜨릴 정도로 놀랐다. 그리고 적벽대전이 승리로 마감하고 유비는 승승장구한다. 219년 한중을 탈취하고 한중왕으로 등극한다. 그해에 관우가 양번전쟁에서 승리한다. 촉한 국력이 최고 정점에 올랐다. 갑자기 이 상황은 급전직하로 바뀌게 된다. 관우가 피살되고 형주를 빼앗기게 된다. 유비가 관우의 원수를 갚고 형주도 되찾기 위해서 이릉대전을 무리하게 일으킨다. 육손에게 대패당하게 된다. 그래서 부끄러워서 수도로 돌아오지 못하고 백제성에 남아 있다가 세상을 떠나게 된다.
세상을 떠나면서 제갈량을 부른다. 후사를 부탁한다.
"내 아들을 잘 도와주시오
만약에 내 아들이 군주의 그릇이 아니거든
당신이 나라를 맡으시오
힘을 길러서 역적을 몰아내고
한실을 부흥시켜 주시오"
제갈량은 모든 군정 대권을 쥐고 국가를 운영해 나간다. 내정과 외교 안정에 주력한다. 손권과 다시 외교를 회복한다. 45살에 남정에 나선다. 지금의 윈난성이다. 소수민족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자주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을 일으킨 이면에는 동오쪽에서 사주를 했다. 반란이 점점 확대되자 '맹획'이라는 소수민족의 영웅이 나타나서 소수 민족들의 신망을 얻었다. 여러 민족을 통합해서 맹획은 큰 골칫거리가 됐다.
촉한의 마속은 젊은 사람으로 머리가 아주 좋았고 병법에 능숙했다. 마속은 '남중지역은 무력으로 정리하는게 아니라 마음을 잡아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攻心爲上 攻城爲下 공심위상 공성위하, 사람의 마음을 공략하는 것이 상책이고 성을 공략하는 것은 하책이다.
제갈량은 맹획을 일곱번 잡아서 일곱번 놓아준다. 소설이 아니라 '화양국지'라는 기록에 나온다.
칠종칠금 七縱漆擒 7번 잡았다가 7번 놓아줌으로써 진심으로 복종하게 만드는 공략
맹획은 진심으로 복종하게 된다. 나중에 맹획은 촉한의 수도에서 벼슬까지 한다. 이민족 정책의 성과이다.
남만 정벌의 성과는 후방이 안정되고 동시에 병력 자원을 확보하였다. 남중을 정리하고 난 뒤에 1만여 가구를 수도 쪽으로 이주시킨다. 건장한 청년들을 군대에 편입시키고 비군군대를 창설한다. 북벌의 정예부대 중에 한 부대가 된다. 남중지역에 우경 농작이나 광산개발과 같은 여러 혜택을 준다. 남방지역에는 제갈량과 관련된 전설이 많이 남아있다.
그런 다음 북벌을 시작한다. 삼군을 통솔해서 한중으로 진주한다.
한중에 본부를 차리고 떠나기 전에 출사표를 써서 후주(유비의 아들)에게 올린다.
출사표 문장은 간결하고 내용은 완전하고 표현은 솔직하고 감정이 넘쳐나는 데도 불구하고 감정을 고스란히 내면으로 수렴하는 문장이다. 천고의 명문장이라고 한다. 출사표에는 진심이 담겨있었다. 먼 길을 떠나는 아버지가 자식에게 건네는 따뜻하고 간절한 충고가 담겨있다.
"한 나라를 이끄는 주인은 절대로 자신을 비하하지 말라, 스스로 모자란다 못났다고 생각하지 말라, 신하들의 건의를 잘 듣고 그 재능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들어라. 현명한 자를 가까이하고 소인을 멀리하라고 한다.
구체적인 사람 이름까지 말한다. 문신들 곽유지, 비의, 동윤, 진진, 장예, 장완 등이고 무신으로는 상총 이런 사람들을 가까이하라"라고 이야기한다.
두 번째 북벌의 이유를 설명한다. "북벌은 죽은 아버지와 약속한 것이다, 개인적인 야심으로 권세를 확장하기 위함이 아니다, 북벌의 목적은 한실의 부흥이다, 내가 만약에 이 일을 해내지 못한다면 나를 벌하시오, 처벌을 달게 받겠습니다, 내정을 잘 이끌어 가시고 또 보좌진들도 책임을 다하도록 만들어주십시오"
눈물을 흘리며 구구절절 간절한 어조로 자식을 타이르듯이 임금을 타이른다. 구체적인 국가 경영 건의서인 셈이다.
"이제 멀리 떠나는 자리에서 표문을 올림에 눈물이 앞을 가려 무슨 말씀을 아뢰어야 할지 모르겠사옵니다"
-출사표 마지막 문장
북벌에 나서서 한중에 베이스캠프를 차려놓고 여섯 번 기산으로 나간다. 육출기산 六出祁山이라 한다.
기산은 오늘날 감숙성 동쪽이다. 산이 있는데 한중지역과 통하는 교통요충지였다. 제갈량이 제1차 기산으로 나갈 때가 48살이었다. 대군을 몰고 나갔지만 마속이 실책을 한다. 가정전투에서 패전을 한다.
본부로 귀환한다. 울면서 마속의 목을 베었다. 음참마속 泣斬馬謖이라는 말이 여기서 생겨났다.
읍참마속泣斬馬謖 울면서 마속을 베었다는 뜻으로 큰 목적을 위하여 아끼는 사람을 버리는 것을 비유한다.
내가 사랑하는 후배지만 법률을 세우기 위해서는 또 이런 식으로 실패하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마속의 목을 벤다. 눈물을 흘리면서 마속의 목을 베었다는 게 1차 기산 때였다.
2차 출병은 같은 해 겨울에 산관으로 진격해서 진창을 포위한다. 식량이 부족해서 퇴군한다.
3차 출병은 그다음 해에 나가서 무도와 은평 이런 지역을 잠식한다.
4차 출병은 위나라 군사가 쳐들어와서 반격을 한다. 장마가 져서 위나라 군사는 다시 퇴각한다.
5차 출병으로 기산으로 진격을 한다. 이때 오나라와 촉나라가 합동으로 공격을 했다.
유비가 죽고 난 뒤 제갈량이 다시 오나라와 외교 관계를 설립했다. 사마의가 나와서 제갈량을 막는다. 사마의는 같이 싸우지 않고 성안에서 틀어 박혀 방어만 한다. 두 번째 기산 진격으로 국력이 소진돼서 2~3년 동안 준비를 다시 해서 6차 출병으로 대군을 몰고 나온다.
워낙 열심히 하고 준비를 많이 하다 보니 피로가 누적되어 병이 났다. 제갈량은 병이 나서 오장원에서 병사한다.
당시 촉한은 삼국 중에서 약소국이었다. 형주도 잃어버리고 촉한은 사천성 안에 갇혀버렸다. 인구 숫자도 오나라,위나라에 비교도 안 됐다. 위나라는 명제, 조예가 명군이었다. 조조 후예들 중에 조예가 가장 훌륭했다. 촉나라는 매사 제갈량이 다 관리를 해야 했었다. 북벌, 국내 정치 모든것을 보고를 받아서 제갈량이 지시를 내려야 했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식소사번 食少事煩이라는 말이 나온다.
식소사번食少事煩 먹을 것은 적은데 할 일은 많음을 의미한다.
제갈량은 아주 사소한 것까지 챙기면서 일하는 완벽주의자였다. 그러다 보니 병을 얻을 수밖에 없었다.
사마의는 제갈량이 언제 자고 뭘 먹고 일을 얼마나 하는지 알아보고는 제갈량이 얼마 못 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제갈량이 북벌을 끝까지 추진한 이유가 출사표에 나온다.
"간흉 조조의 아들 조비를 물리치고 한실을 부흥하고 수도를 옛 도읍낙양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한실을 빼앗은 도적을 몰아내고 한실을 재건하는 것은 유비와의 약속이며 제갈량의 염원이었다.
제갈량은 지나칠 정도로 신중하고 근면하고 진실했다. 피로가 누적되어 병을 얻어 54살의 나이로 세상을 하직했다.
제갈량은 유가의 삼강오륜三綱五倫과 충의忠義를 끝까지 지킨 사상가였다.
제갈량이 죽을 때 가지고 있던 재산은 뽕나무 심을 밭 3경뿐이었다.
모종강은 "제갈량은 만고에 빛나는 재상이다"라고 했다.
삼국지는 이어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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