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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학지식

황제 자리를 훔치려던 동탁

by 소시민스토리 2024.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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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자리를 훔치려던 동탁

舊京空虛  數百里中無煙火 구경공허 수백리중무연화 

낙양은 텅 비어서 폐허가 되고 주변 수백리에는 연기 나는 집이 하나 없었다.

 

집집마다 늙은 부모를 업고 어린애를 끌고 가는데 군사들은 빨리 가라고 채찍을 치로 말을 타고 와서 말발굽으로 밟았다. 엄청난 사상자가 속출했다. 동한 200년 그 찬란했던 도읍지는 완전히 폐허가 된다. 손견이 처음에 낙양에 입성해서 그 폐허를 보고 너무나 처참해서 눈물을 흘릴 정도였다. 

하지만 동탁의 끊없는 탐욕은 멈출 줄 몰랐다. 

 

 

동탁(139~192)은 여러 모로 분석하기가 복잡한 인물이다. 역사서의 평가는 '조맹유모(粗猛有謨), 거칠고 저돌적이고 꾀가 있다'라고 한다.

용병술뿐만 아니라 정치적 권모술수도 아주 탁월했다. 동탁은 감숙성 지역에서 태어났다. 강족들과 경계지역에서 태어났다. 강족羗族들은 중국 서부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이다. 강족들이 사는 지역이 칭하이 고원이다. 주거지가 높은 산속으로 산을 타고 다니기 때문에 강족은 몸이 날랬다. 싸움을 좋아하고 용맹한 습성을 가진 굳센 민족이었다. 동탁을 강족들과 경계지역에서 강족들과 섞여 살면서 말 타고 활을 쏘면서 자랐다. 

 

타고난 뼈대도 굵었고 몸도 아주 튼튼했으며 팔 힘이 장사였다. 동탁은 군 생활을 30년 간 하면서 사병으로 들어가서 장군까지 올라간다. 당시 동탁이 맡았던 임무는 3만 명의 병사를 인솔해서 강족 병사들을 방어하는 임무였다. 망원현에서 수만 명의 강족들에게 포위당했다. 군량미도 다 떨어지고 물러설 수도 없고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는 진퇴유곡(進退維谷)의 상황에 처했다. 동탁은 꾀를 내었다. 군사들을 풀어서 둑을 쌓으면서 물고기 잡는 시늉을 하는 위장술을 했다. 둑이 앞쪽으로 시야를 가려주었다. 뒤쪽 아래를 통해서 군사들을 철수를 시킨다. 그리고 군사들이 다 건너갔을 때 둑을 탁 터트린다. 강족 병사들이 보고 있다가 추격을 했을 때 이미 둑이 터져서 수심이 깊어졌다. 동탁은 위기를 탈피했다.

 

진급을 해서 하동태수가 되고 나중에 병주자사까지 된다. 당시 전국에서 동탁부대가 가장 강력했다. 군사들 자체가 서량쪽 병사들이었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동탁에게 중앙정부에 높은 관직을 줄 테니 들어오라고 한다. 동탁의 군사력이 강해지자 불안했던 것으로 군사권을 빼앗고 해체시키려고 불러들인다. 황제가 조서를 내렸는데도 동탁은 눈치채고 움직이지 않는다. 

 

 

 

중앙정부에서 하진이 대장군으로 정권을 잡고 있을 때였다. 

하진(?~189)은 백정 출신의 장군으로 황태후의 하씨의 오빠이다.

하진은 머리가 아둔했다. 출신이 미천하고 여동생이 황태후로 발탁돼서 대권을 잡은 것이다. 지식도 없고 배운 것도 없는 전략이 없는 사람이었다. 하진은 나중에 동탁을 불러들인다. 

 

하진은 환관들을 진압하기 위해 동탁을 낙양으로 불러들인다. 궁중내에서 처리하지 못하고 외부 군사를 끌어들였다. 그런데 동탁은 하진이 소환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즉각 수도로 들어온다. 처음에 들어올 때는 보병, 기병, 혼합부대를 3천 명 정도만 대동하고 들어온다. 적은 병사를 데리고 들어온 것은 신속하게 이동할 목적이었다고 추측된다. 

 

당시에 수도에 주둔하고 있던 병력들은 10배가 넘는 3~4만 명 정도가 수도에 있었다. 사례 교위 원소, 전군 교위 조조, 후장군 원술 등이 수도 안에 포진하고 있었다. 동탁이 상대가 안 되는 데 기만술을 쓴다. 3천 명을  심야에 은밀하게 성 밖으로 내보낸다. 이튿날 해가 뜨면 3천 명 군사들이 아침에 북 치고 나팔 불고 깃발을 흔들면서 요란스럽게 입성한다. 

 

양주에서 추가로 군사들이 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소문을 퍼뜨린다. 

같은 방식으로 4~5일 계속하다보니 낙양 성대가 완전히 떠들썩 해진다.  날마다 3천 명씩 들어오니 엄청나게 많은 군사들이 몰려왔다고 사람들은 생각하게 된다. 동탁의 기만술로 당대의 인걸, 원소, 원술, 조조와 같은 사람들이 완전히 속아서 뿔뿔이 성밖으로 도주해 나간다. 

군사는 놔두고 몸만 빠져 나간다. 동탁은 쉽게 기만술로 성안의 군사들을 모두 자기 병사들로 만들어버렸다. 

 

 

 

교묘한 이간책을 사용한다. 여포를 매수하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여포는 (?~198)는 당대 최고의 무공을 가진 사람이었다. 여포는 소설에서 키가 10척이나 된다고 한다. 

 

 

여포는 정원(?~198)의 부하였다. 정원이 여포를 자기 수하에 넣고 마치 자식처럼 총애했다. 여포도 정원을 아버지처럼 따랐다고 한다. 동탁과 정원 사이에 문제가 생겼다. 동탁은 정원을 죽이려고 했는데 정원 뒤에는 큼직한 사람 여포가 지키고 있었다. 

 

 

무시무시하게 생긴 신체도 건장하고 무예도 뛰어나 보였다. 여포가 무예가 막강하다는 소문을 들은 동탁은 여포를 매수하기 위해서 갖은 수단을 다 쓴다. 금은보화를 주고 천리마 적토마를 주면서 제물로 매수를 하려고 한다. 여포는 부자지간으로 지냈던 정원을 배신하고 재물에 눈이 어두워서 정원의 목을 치고 머리를 동탁에게 가지고 온다. 정원이 데리고 있던 군사들을 다 데리고 온 여포까지 가진 동탁은 범접할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막강해진다. 

 

 

 

동탁은 그뿐만 아니라 정치수완도 좋았다. 그때까지 황제로 있던 소제를 폐하고 9살 진류왕, 협을 임금으로 앉힌다. 헌제로 세운다. 동탁이 모든 것을 처리하면서 최초로 협천자 영제후를 한다. 

협천자 영제후 (挾天子 領諸候) 천자를 끼고 천하의 제후들을 호령한다.

 

동탁은 왕을 세운 다음 군부를 정리한다. 웅병 3만을 거느린 황보숭을 수도로 소환한다. 황보숭은 황건적의 난을 진압한 장군이다. 황보숭을 수도로 소환해서 병권을 박탈한다. 

주준의 병권도 박탈한다. 황보숭, 주준은 국가의 대들보였다. 그래서 동탁에게는 위협인물이 된다. 사전에 모든 병권을 박탈해서 나중에 있을 위협을 다 제거해버린다. 나머지 대신들은 그저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동탁은 뛰어난 정치 수완으로 권력을 독점하게 되었다. 

 

동탁의 정치 수완은 더욱 교묘해진다. 

높은 고위직에는 지명도가 높은 원로 중신들을 중용하고 자기 심복들은 절대로 높은 관직을 주지 않는다. 집정 초기에는 민심을 자기에게 모이게 하려고 상당한 고심했다. 그러나 나중에 대권을 장악한 후에는 본색이 드러난다. 흉악하고 잔인하고 비정한 본성을 숨길수가 없었다. 본성을 드러내면서 폐제를 황제에서 쫓아내고는 독살을 시켜버린다. 어머니 하태후도 살해한다. 그리고 스스로 상국相國이 된다.

대권을 장악하고 군사를 풀어서 부호, 귀족들의 집을 약탈한다. 금은보화를 뺴앗고 부녀자들을 간음하고 형벌을 너무 가혹하게 하면서 기준이 없이 자기 멋대로 적용한다. 완전히 기강이 무너진다.

 

 

폭정을 일삼는 동탁을 토벌하기 위해 관동 군벌들이 일어나니 낙양을 버리고 장안으로 수도를 옮긴다. 

장안으로 옮기면서 낙양에 불을 지른다. 낙양 2백리 내의 수백만 주민들에게 소거 명령을 내린다. 

전부 집집마다 늙은 부모를 업고 짐을 이고 지고 어린애를 끌고 가는데 군사들은 뒤에서 빨리 가라고 채찍질을 해대고 말말굽으로 밟는다. 엄청난 사상자가 속출했다. 동한 200년 그 찬란했던 도읍지가 완전히 폐허가 돼버렸다.

강표전에 이렇게 전한다.

舊京空虛  數百里中無煙火 구경공허 수백리중무연화 

낙양은 텅 비어서 폐허가 되고 주변 수백리에는 연기 나는 집이 하나 없었다.

 

나중에 동탁토벌에 나선 군웅들 중에 손견(156~192)이 맨 처음 낙양에 도착했다. 광경을 보고 눈물을 흘린다.

"제성이 밝지 못하니 역신이 나라를 어지럽히고 

만민은 도탄에 빠졌다.

도성이 텅 비게 되었구나!"

 

동탁은 탐욕을 멈추지 않는다. 미 지역에 성채 만세오萬歲塢를 쌓는다. 장안성과 규모가 똑같은 성을 축조했다. 30년 식량을 비축한다. 황금, 은, 온갖 것들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내가 앞으로 황제가 되면 천하를 지배할 것이고 실패하면 이곳에 돌아와서 내 여생을 마칠 것이다"라고 한다.

황제가 될 야심을 드러냈다. 

 

동탁은 왕윤과 여포의 손에 피살된다. 동탁이 패망한 원인은 재주는 있었지만 지식은 없었기 때문이다.

정치 수완과 경영 기술을 뛰어났지만 민심의 향배를 몰랐다. 대중의 마음을 공략하지 못했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타인의 권리를 짓밟는 것쯤은 예사롭게 생각해서 살상과 방화, 약탈, 폭력 등을 거리낌 없이 했다.

천하대세의 민심은 무시하고 황제 자리에 눈이 멀었다. 

 

동탁은 후대 역사에 미친 영향은 상당히 크다. 동탁이 궁중에 들어가서 정권을 잡았다. 그러자 관동 군벌들이 일어났다. 동탁을 토벌하기 위해 연맹을 맺었는데 군벌들이 동탁 토벌에는 마음이 없고 각각 독립할 궁리를 했다. 10년 군벌 혼전이 일어난다. 10년 군벌 혼전의 도화선이 동탁으로 인해 만들어졌다. 

조조는 동탁을 발판으로 삼아서 세상에 나와 영웅이 될 수 있었다. 동탁은 조조가 정치 입문하는데 길을 터준 셈이다. 동탁은 최초로 황제 자리를 탐한 군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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