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초의 패배, 베트남 전쟁

미국 최초의 패배, 베트남 전쟁

미국은 평시에는 모병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전시(독립전쟁, 세계대전 등)에는 징병제로 바뀐다. 냉전이 심화되었던 1948년부터 징병제가 강화된다. 1973년 닉슨 대통령 때 모병제로 전환된다. 

 

케네디 암살과 베트남 파병

케네디 암살과 베트남 파병

 

베트남 전쟁은 미국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이었고 최초의 패배로 남은 전쟁이다. 중국 공산화 이후 공산주의 확산을 막겠다는 명분으로 참전을 했지만 패배했고 미국인들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뮤지컬 '미스사이공'은 베트남 전쟁 속에서 꽃 피운 베트남 여인 킴과 미군 장교 크리스의 아름답지만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다. 베트남 전쟁은 미국 문화예술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영화 <람보>는 베트남 전쟁을 치르고 돌아온 람보가 보안관의 고문으로 베트남전 외상 후 스트레스가 발생하여 정글에서 게릴라전을 펼치는 이야기로 베트남 전쟁의 후유증을 그린 영화다.

 

미국 외교사에서 베트남 신드롬은 유명한 말이다. 베트남 신드롬은 베트남전 이후 미국의 군사 개입에 대한 혐오감을 이르는 정치 용어다. 

미국이 전쟁에 참여해서 정의 수호를 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숭고한 가치를 지닌 일이었다. 베트남전의 패배로 미국은 예상치 못한 패배 경험을 하게 되고 전쟁 개입에 베트남전 트라우마로 주저하게 된다. 계속되다가 1990년대 탈냉전 이후 걸프전부터 완화된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다시 베트남 신드롬의 악몽이 찾아왔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제공권을 장악한 압도적인 군사력에도 베트남전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미군의 발목을 잡은 것은 북베트남의 새로운 전략 게릴라전이었다.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은 열악한 장비와 수적 열세를 보완하고자 맹그로브 숲에서 작전을 벌인다. 하늘을 가릴 정도로 울창한 숲은 북베트남군의 든든한 방패막이되어준다.

미군은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막연한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미군은 전력 면에서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전투장소가 산림이 우거진 밀림지대였다. 당시 미군이 주로 싸우는 방식은 '라인배틀'을 한다. 라인배틀은 양측이 선형진(line)을 유지한 채로 전면전을 벌이는 형태의 전투다.

하지만 북베트남과의 게릴라전에는 무용지물이 된다. 북베트남의 게릴라전에 맞서 미군은 정글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펼쳐진다. 빽빽한 정글 숲 어디에선가 총알이 날아올 거라는 공포는 어마어마했고 공포가 커진 만큼 공중폭격이 많아지게 된다. 육군이 숲으로 들어가서 적군 위치 파악 및 전달을 하면 공군은 해당지역에 폭격을 한다. 폭격을 할 때 주변을 불바다로 만드는 살상무기 네이팜탄을 많이 썼다.

※네이팜탄은 네이팜 연료의 화염 무기로 3,000℃의 고열을 내며 폭격 주변 산림, 군사시설 등을 불태운다.

 

 

-소녀의 절규 (1973년) 닉 우트(AP통신)

미군이 투하한 네이팜탄에 죄 없는 어린아이까지 고통받는 모습이다. 1917년 제정된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퓰리처상을 받은 사진이며 전쟁의 역사를 바꾼 사진이다.

 

고엽제를 뿌리면서 폭격할 수 있는 지점을 확보하고 적들에게 식량이 될 수 있는 농산물을 말라 죽인다.

※고엽제는 미군이 베트남전 당시 밀림에 살포한 제초제로 폭격 지점 시야 확보 및 식량을 없앨 목적이었다. 

 무려 8천만 리터의 고엽제를 살포한다. 당시 미국은 고엽제안에 독성물질이 포함된 사실을 몰랐다. 적군 아군 구별 없이 모두 고엽제 피해를 입었고 베트남인 약 480만 명의 피해자가 발생했다.

고엽제를 소독제로 생각해 피부에 맞기도 했다. 고엽제 살포는 인류에 큰 후유증을 남긴 비극이다.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미군들이 유독 두려워했던 곳은 '철의 삼각지'였다. 사이공으로부터 북쪽 약 32Km 지점에 있는 벤 캇, 벤 쑤억, 푸 추옹 세 지점을 잇는 40 제곱마일 규모의 지역이다.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밀림지역이면서 밀림 아래에는 미군에 대응하기 위한 베트콩의 비밀기지 땅굴(터널)이 있었다.  부상자들을 위한 병원시설, 더 지하 깊숙한 곳에는 각종 무기를 모아놓은 무기고가 있고 더 깊이 내려가면 조리시설까지 완비된 식당이 있다. 옷을 수선하는 공간 등이 있으며 지하 곳곳에 필요한 시설들이 빼곡하게 있는 지하도시였다. 

 

구찌라는 지역에 만든 터널 '구찌터널'이 있었다. 구찌터널은 베트남군의 전략적 요충지였다. 미군들을 구찌터널을 공략하려고 노력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구찌터널 입구는 아주 작으며 나뭇잎으로 덮여 있었고 이곳을 통해 베트콩들이 비밀기지를 드나들었다. 입구는 미군이 진입이 불가하게 베트콩 신체 사이즈에 맞춘 크기였다. 구찌터널 주변에 설치된 베트콩 부비트랩에 미군들이 당하기도 했다. 부비트랩 안에는 독이 묻은 죽창을 설치했고 미군들이 독이 묻은 죽창에 발을 찔려 생사를 오갔다. 

더메이스는 20kg의 강철 공에 철심을 박은 베트콩 부비트랩의 한 종류이며 줄을 건드리면 떨어지게 설치되어 있었다. '철의 삼각지'에는 이런 부비트랩 외에도 독사 구덩이 등 다양한 부비트랩이 설치되어 있었다.

구찌터널은 프랑스 독립전쟁 때 만들어졌다. 맨손, 호미, 바구니 등을 이용하여 건설했다. 구찌터널 길이는 프랑스와 독립전쟁을 할 때는 48Km였다가 베트남 전쟁 때는 250Km가 된다.(서울- 대구 간 거리가 237Km이다)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적과 함정에 미군들은 사기를 잃어간다.

 

미군들은 마치 부적처럼 '스페이스 에이스'카드를 몸에 지니고 다녔다.  프랑스 미신에는 스페이스 에이스 카드는 죽음과 불운을 상징한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베트남 사람들도 인지하고 있을 것이라 추측하고 숲이나 죽은 시신 위에 뿌려 놓았다.

 

베트남에서 고전하고 있는 미군 상황에서 파병을 승인했던 존슨 대통령의 입장을 잘 보여주는 상원의원 리처드 러셀과의 전화 녹취록이 있다.

"매일매일 상황이 나빠지고 있어요. 희망이 보여야 싸울 의지도 생기죠. 베트남에서는 전혀 희망이 안 보여요."

"폭탄을 계속 떨어뜨릴수록 우리에 대한 반감만 커져갑니다"

존슨 대통령은 베트남전쟁이 실패라고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철수하지 않는다. 존슨 대통령은 자신의 오랜 의원생활로 준비된 대통령으로 미국인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본인의 '위대한 사회 정책'을 펼쳤는데 대외 전쟁 패배로 그동안의 공적이 수포로 돌아갈 것을 우려했다. ※위대한 사회정책은 미국 존슨 대통령이 1960년대에 추구한 인종 차별 철폐 및 빈곤 추방정책이다. 

또한 차마 미국 최초의 패배를 선언할 수 없었다. 미국 역사상 최초 전쟁 패배 대통령으로 이름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패배 선언은 냉전 시대 세계 균형이 무너질 위기가 될 수 있었다. 

 

존슨 대통령은 재선을 앞두고 있었다. '위대한 사회 정책'을 펼치며 간절히 염원하던 꿈을 실현하고 싶었다. 

전쟁에서 패배한다면 모든 것이 무너질 것이기 때문에 철수를 망설였다.

 

1968년 1월 31일 저녁 미국 전역에 충격적인 보도가 전해진다. 주베트남 미국 대사관이 베트콩에게 기습 공격을 당했다. 새벽 2시 47분에 시작해 동이 틀 무렵까지 이어진 베트콩들의 공격을 가까스로 미군은 막아냈지만 이날 뉴스에 송출된 장면들로 베트남 전쟁은 이전의 흐름을 바꾸어 놓는다.

베트남 미국 대사관이 습격당한 날은 베트남 최대 명절 음력 설날이었다. 연휴에는 휴전을 하는 관행을 깨고 미 대사관을 급습한 것이다. 이 소식은 미국 저녁 뉴스에 보도가 되면서 미국 내의 베트남 전쟁 여론이 뒤집힌다. 

 

1968년 당시 취재 통제 시스템이 체계적이지 않았다. 기사증만 있으면 자유롭게 취재가 가능했다. 하지만 베트남 전쟁 이후 종군 취재 프로그램이 매뉴얼화 돼서 정착된다. 90년대 이후 전쟁에서는 사전 허가, 보안 유지 등의 통제 시스템이 체계화된다.

베트남 전쟁 이후 징병제가 폐지되고 모병제로 바뀌었고 종군 취재 프로그램이 매뉴얼화됐다. 베트남전쟁은 현재의 미국에 영향을 줬다. 

미국 지도부는 베트남 실상을 숨기고 싶었겠지만 텔레비전 기술의 발달로 실상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신뢰성 격차, 정부의 약속과 결과가 다른 것을 뜻하는 'Credibility gap'이라는 단어가 생긴다.

베트남전 이전에는 정부를 무조건적으로 신뢰했던 미국인들이 베트남 전쟁 이후 일단은 의심하고 진짜가 돼야 완전히 믿겠다는 풍조로 바뀐다. 

 

 

매일 5시에 군사 언론 브리핑이 진행했는데  5 O'clock follies(5시의 바보들)라고 대놓고 비난하기도 했다. 

반전여론으로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고 60년대 말 세계적으로 진보적, 좌파운동이 퍼진다. 미국 대학 가는 학생운동이 강타했고 록 음악, 히피문화 등이 유행했다. 당시 진보의 가치는 권위, 전통에 대한 반대였다. 서구권은 기독교 등 보수적인 가치관에 도전했고 동구권에서는 사회주의에 반대했다. 전쟁 반대는 공통적인 추구 상황이었다. 

당시 미국 대학생이 좋아하는 지도자는 체게바라, 호찌민, 마오쩌둥이었다.

 

1968년 대선에 출마한 로버트 F. 케네디가 암살당한다. 같은 해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당한다.

국내 미국 정치는 대혼란에 빠져든다. 1968년 3월 31일 재선을 원했던 존슨 대통령은 차기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다. 민주당 정권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존슨 대통령은 평화 회담을 제의한다. 북베트남은 거절한다. 미군이 철수한다는 약속을 하면 평화 회담을 하겠다는 것이다. 

※'출구전략'의 유래는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이 승산 없는 싸움에서 철수할 방안을 모색하며 제기된 용어이다. 

 

1969년 1월 20일 리처드 닉슨이 제37대 미국 대통령 자리에 오른다. 닉슨은 1969년 12월까지 베트남 파병군인 수를 대폭 철수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닉슨의 공약에 국민들은 환호했다. 하지만 취임 후 불과 2개월 뒤 국민들 앞에서 평화를 외쳤던 닉슨 대통령은 캄보디아 북베트남 기지에 공습명령을 내린다. 

닉슨 대통령이 공습을 감행한 이유가 있었다. 분위기 전환 목적으로 유럽 순방 계획을 세운다.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해외 순방으로 세계적 리더 이미지를 구축했었다. 다시 한번 세계적 리더십을 드러내고자 순방 계획을 세운 것이다. 닉슨 순방 하루 전에 북베트남군은 미군과 남베트남군을 상대로 대공세를 했고 미군은 베트남 당시 최대 피해를 입는다. 닉슨 행정부에 큰 부담을 준다. 

 

닉슨은 캄보디아 공습을 한 번으로 끝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전히 북베트남은 평화 회담에 응하지 않았다. 캄보디아 공습으로 평화 회담을 성사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캄보디아를 공습하려고 한 이유는 호찌민 루트로 캄보디아가 북베트남을 지원한다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호찌민 루트는 북베트남에서 라오스와 캄보디아 국경을 통해 남베트남에 게릴라, 물자를 보급하던 경로다.

1955년 캄보디아 정부는 중립선언을 했다. 미국에서는 중립선언이 미국에 등을 돌리는 것처럼 느꼈다.

캄보디아 공습 이후 반미 감정이 고조되었다. 이후 크메르루주와 킬링필드로 연결되는 비극의 시작점이 된다.

※킬링필드는 1975~1979년 캄보디아 급진 공산주의 정권 크메르루주가 양민  200만 명을 학살한 사건이다. 

 

베트남에서 미군이 철수한 이유

닉슨은 캄보디아 공습 작전을 하고 국민에게 공습 사실을 철저히 숨겼다. 1969년 5월 9일 캄보디아 공습 사실을 뉴욕타임스가 보도한다. 닉슨은 숨겨 논 비밀이 터지자 국방부, 국무부, 백악관 등 주요 관리들에 대한 뒤조사를 FBI에 지시한다. 1971년 펜타곤 페이퍼가 뉴욕 타임지를 통해 폭로가 된다. 

※펜타곤 페이퍼는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 관련 1급 기밀문서이며 이를 통해 뉴욕타임스는 1971년 통킹만 사건은 조작된 것으로 폭로한다.

 

이때 닉슨에 의해 조직된 팀은 'Plumber(배관공)'이다. 정보가 새어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팀이다. 백악관에 그 팀을 구성한다. 이후 워터게이트 사건에 연류가 된다.

※워터 게이트 사건은 1972년 닉슨의 비밀공작반이 워터게이트빌딩 내 민주당 본부에 침입하여 도청 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 체포된 사건이다. 

 

 

미라이 학살 사건이 보도가 된다. 

※미라이 학살은 1968년 미국 23 보병사단이 미라이 양민 567명을 학살한 사건이다. 

미국 시민들, 대학생은 거리에 나와서 반전을 외친다. 미라이 학살 보도는 반전 확산에 도화선이 되었다. 베트남전 참전용사들도 시위에 동참하면서 받았던 무공훈장 700개를 백악관을 향해 던지기도 했다. 

 

닉슨 대통령은 1973년 1월 북베트남 공격을 중단한다. 

파리 평화협정은 1973년 1월 27일 파리에서 북베트남, 남베트남, 미국 사이에 조인된 베트남 전쟁 종결을 약속한 협정이다. 베트남 독립을 인정하고 미국의 남베트남 문제 불개입 등의 내용이 포함된다. 이에 따라 베트남에서 미군은 철수한다. 하지만 베트남에서 내전은 계속된다. 1975년 사이공이 함락되어 무너지고 1976년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이 선포된다. 적화 통일된 베트남과 주변국(캄보디아, 라오스)은 공산화가 된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미군 5만 8천여 명이 사망했고 살아남은 군인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거기에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감당해야 했다. 당시 기준 천억 달러(48조 원 이상)를 날려버린 것이다.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통화량을 증가시켜 달러 가치를 하락시켰고 인플레이션을 발생시키고 오일쇼크까지 겹쳐서 미국 경제는 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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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닉슨 대통령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했다. 이어서 취임한 포드, 카터 대통령은 베트남 전쟁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981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경제부흥과 냉전종식 두 가지 목표를 세운다. 이전까지는 정치, 군사, 외교의 시대였다면 레이건 대통령 이후에는 경제 중심 시대가 된다.

WTO, FTA 등이 논의된 시기이다. 새로운 시대로 넘어가는 분기점이었다. 

베트남 전쟁은 역사의 흐름을 바꿨다. 1970년대 미국 패권의 몰락 가능성이 제기된다. 세계 경제를 호황으로 이끌고 호령하면서 자유주의, 자유무역, 자본주의를 열었던 미국은 자세를 바꾸게 된다. 

보호무역주의를 채택하고 관세를 부과하고 일본, 유럽에게 지켜주는 대가, 안보 부담금을 요구한다. 

레이건 대통령 이후 세계 최강국의 자리를 30년간 유지하던 중 중국의 도전을 받는다.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정책을 이어나가고 있다. 베트남과의 전쟁은 미국 정치, 외교, 경제에 큰 영향을 주었고 베트남 전쟁 패배는 다른 전쟁에서 전면전에 쉽게 나서지 않은 이유가 된다. 베트남 전쟁은 오늘날 세계정세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