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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학지식

한국 아파트 역사

by 소시민스토리 2024.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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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아파트 역사 

지금은 고층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선 한국의 아파트 풍경은 당연하게 여겨지고 대부분이 아파트에 거주한다.

1960년대에는 아파트에 연탄보일러가 갖추어져 있었고 80년대에는 15층이 고층이라는 공식이 깨지면서 더 높은 층의 아파트가 등장했다. 윤수일이 부른 <아파트>는 한국의 아파트 붐이 일었던 70년대, 80년대를 대변해 준다. 

 

 

60년대 아파트 옥상에 뾰족하게 솟아난 것은 연탄굴뚝이었다. 아파트 난방을 연탄으로 하던 시절이 있었다. 연탄아궁이 위쪽으로 스텐용기를 올려 물을 부어 놓으면 물이 따뜻해진다. 그 물로 머리 감고 씻고 설거지, 빨래도 하면서 뜨거운 물을 사용한다. 

 

 

1980~90년대 주공아파트, 구도심 아파트의 '고가수조타워(물탱크)'로 고가수조에 물을 끌어 올려서 저장했다가 필요한 세대에 급수하는 역할을 하고 원뿔모양은 물의 하중을 균일하게 분산할 수 있고 급수를 위해 적절한 수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든 모양이다. 2000년대부터는 기술이 발달해서 지하상수도관이 꼭대기까지 물을 끌어올려 수돗물을 공급하는 형태가 되어 고가수조가 필요 없어졌다.

철거비용이 수십억원에 달해서 철거를 하지 못하고 있고 아파트가 재건축이 되면 그때 철거할 예정이다. 

 

한국인의 52.4%는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1970년에는 단독주택 거주 가구가 95.3%였다.

한국인은 원래 아파트를 싫어했다. 초창기 60년대 아파트 촌을 성냥갑, 닭장이라고 표현했다. 머리 위에서 불때고 밥을 먹고 화장실을 가는 것이 망측하다는 것이었다. 된장, 고추장 담아서 항아리에 보관해야 하는 전통적인 주거 형태와 불일치했다. 아파트 초기의 난방 방법이었던 연탄보일러를 설치해 개별 온수난방으로 공기를 데우는 라디에이터 방식은 온돌방에 몸을 뜨끈 뜨근하게 데워야 하는 한국인은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주거 문화를 바꾸겠다고 정부에서는 야심차게 시작했는데 초창기 아파트는 서민형이었고 철거민을 대상으로 한 좁은 공간이었기 때문에 아파트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인식이 좋지 않았다. 

 

 

한국의 아파트 시초

일제강점기에도 아파트는 있었다. 하지만 학자들이 인정한 한국의 최초의 현대식 대규모 아파트 단지는 1962년에 지어진 '마포아파트'다. 마포형무소 농장터에 지어진 아파트로 10개 동에 642 가구로 구성되어 있고 단지 안에 넓은 녹지공간이 있었고 운동장, 공원 등 아파트 커뮤니티의 출발점이 되는 공간이 있었다.  단지 내에서 쇼핑과 레저 등 문화생활을 즐기는 최초의 시도를 한 아파트였다.

 

마포 아파트는 근대화의 상징이었고 생활 혁명을 가지고 왔다. 내부 설계가 옛날과 다른 방식, 재래식 화장실이나 아궁이 부엌이 끝나고 수세식 화장실과 입식부엌이 설치되었다. 그러면서도 안방은 온돌방식으로 절충점을 찾았다. 가장 편리한 주거형태라고 홍보는 했지만 인기는 별로 없었다. 마포아파트 준공 이후 초기 입주자는 전체의 10% 이하였다. 대중들은 생소한 아파트 건물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고층주택 건물 형태가 익숙지 않았다. 저렇게 높은 하늘에서 잠을 어떻게 자냐며 거부감을 나타냈다. 당시는 대가족이 함께 살던 시기라 아파트 양변기를 보고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볼기짝을 맞닿을 수 없다며 적대감까지 보였다고 한다.

연탄가스 위험에 대한 소문도 악영향을 끼쳤다.

 

초기에 아파트는 가난한 서민들을 위한 주거 대책이었지만 방향성을 바꾼 계기가 있었다.

1966~1968년에 판자촌이 많았다. 서민들 주거 개혁을 이루겠다며 정부는 시민 아파트 대규모 공급계획을 발표했다. 철거민들이 대거 시민 아파트에 살았다. 1970년 4월8일 아침 8시에 '와우 아파트'가 무너졌다. 와우 아파트가 무너지면서 33명의 안타까운 목숨이 희생됐다. 원인은 부실시공이었다. 사람들에게 아파트에 대한 신뢰는 바닥을 쳤고 아파트에 들어가서 살려고 생각하지 않았다. 시민 아파트의 건설은 백지화되었다. 

속도전으로 지었던 아파트를 양질의 아파트를 지어 중산층에 공급하기로 정책을 선회한다. 

 

1970년에는 강남은 상습침수 지역이었다. 압구정 일대는 개발 전에 배 밭이었다. 잠실 일대는 뽕 밭이었다. 

강남과 한강 일대가 70년대 아파트로 개발하면서 변화한다. 1970년대 영등포 한강일대 개발과 함께 아파트 건설이 본격화되기 시작한다. 1970년 동부이촌동 '한강맨션', 1971년 여의도 '시범 아파트', 1971년 구반포 '주공아파트', 1975년 압구정 '현대아파트', 1976년 '잠실지구' 등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아파트가 이때 지어졌다. 

평상시에는 도로였다가 홍수가 닥치면 한강 제방기능하는 강변도로를 건설했는데 이때 생긴 매립지에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1970년대에 지어진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경제 성장에 견인차 역할을 했다. 단독주택은 일정 규모 땅에 한 두 채씩 지어서 판매할 수 있지만 아파트는 일정 규모 땅에 몇 백채, 몇천 가구가 들어서기 때문에 대규모 개발을 할 수 있었다.

 

 

옛날 아파트가 지금 지어진 아파트보다 채광이 더 좋다. 1980~1997년 아파트 하루 평균 일조 시간은 6시간 30분이다. 2005년부터 현재 아파트 하루 평균 일조 시간은 6시간 미만으로 옛날 아파트보다 햇빛이 덜 들어온다.

아파트 배치 계획이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1970년 초기아파트는 방,거실이 나란히 있는 판상형으로 아파트가 일자모양이다. 일자형으로 지으면 같은 규모의 아파트를 지을때 다른 모양보다 남향집을 더 많이 지을 수 있다. 보통 거실과 주방이 서로 마주 보는 모양이라서 양쪽 창문을 열면 자연 환기가 돼서 통풍이 잘된다.

1990년대 2005년에는 미음자 모양, 격자형으로 지었다. 2005년부터 탑상형, 타워형태로 지어졌다. 2010년대부터는 L자형으로 유행하고 옛날 아파트보다는 일조량은 줄어들었다. 

 

한국 아파트 문화에서 세계 최초 디지털 도어록이 탄생했다. 1997년 일본에서 디지털 잠금기술이 만들어졌고 한국이 기술을 배워서  2000년 초반 한국 아파트에 디지털 도어록이 자리 잡게 되고 세계 최초가 된다. 디지털 도어록은 중국과 한국이 주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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