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정밀 폭격, 폭격기 마피아
미국은 영국과 달랐다. 주간 고고도 정밀 폭격을 주장한다. 1939년 9월 2차 대전 루스벨트 대통령은 프랑스, 영국, 독일을 향해서 전쟁은 민간인, 요새화되지 않은 도시는 절대로 폭격하지 말 것을 강력하게 호소한다.
미 육군항공대 사령관 '헨리 아놀드', 미 육군항공대 수뇌부 '아이라 C. 이커'는 공동집필 저서로 공군력으로 바뀌게 되는 세계의 모습과 국가 안보에 대해 저술한 <날개 달린 전쟁>을 출간한다.
책에서 인구에 대한 직접 타격은 비경제적이고 현명하지 못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1942년 미 육군항공대 제8공군 사령관 '칼 스파츠'는 영국군의 독일 지역폭격 참여 권유에 대해 강력하게 거절한다. 1943년에 아이라 C. 이커가 칼 스파츠 후임으로 제8공군 사령관으로 영국으로 간다. 그는 칼 스파츠에게 편지를 보내 영국의 전략 폭격에 대해 비판하면서 우리는 민간인 상대로 전략 폭격을 하지 말자는 내용을 써서 보냈다.
미국의 전략 폭격에 대한 주장은 도덕적, 윤리적으로 영국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고 정밀 폭격이 인구를 대상으로 한 지역 폭격보다 훨씬 군사적으로 적국 국민의 저항 의지를 없애는데 효율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정밀 폭격을 신봉하게 된 근원은 '폭격기 마피아'에서 나왔다.
폭격기 마피아는 버지니아 주 햄프턴 1971년에 설립한 랭글리 공군기지다. 랭글리 공군기지는 현재 랭글리-유스티스 합동기지로 미 3대 공군기지 중 한 곳으로 현재 전투기 F-22 랩터 운용기지다.
랭글리 공군기지에 미 육군항공대 전술학교(ACTS)가 자리하고 있었다. 다양한 항공전술을 가르치는 핵심 브레인의 집합소였다. 그들 중 정밀 폭격을 신조로 여기는 집단이 형성되었다.
미 공군력의 선구자 '윌리엄 렌드럼 미첼'의 애칭은 빌리 미첼이었다. 1926년 빌리 미첼은 불명예 제대를 하게 된다. 1925년 시연 및 홍보비행 중이던 미 해군 수상기 PN-9 3대와 비행선 세년도어가 추락했다.
빌리 미첼의 생각은 무리하게 비행을 강행시킨 군 수뇌부의 무능한 관리 탓이라고 판단했다. 강직했던 빌리 미첼은 1925년 9월 5일 군 수뇌부를 비난하는 공개 성명서를 발표한다. 대중적 인지가 높은 공개 비난에 미국 수뇌부도 펄쩍 뛰면서 빌리 미첼을 명령 불복종으로 군법회의에 회부한다.
항명죄인지 언론의 자유인지를 두고 숱한 논란과 화제 속에 7주 동안 군사재판은 이어진다. 미 육군 장군들로 구성된 13인의 판사 중에는 빌리 미첼의 '소년 시절 친구' 더글러스 맥아더도 있었다. 이때 미 육군항공대 후배들이 증인으로 출석하여 응원했다. 헨리 아놀드, 칼 스파츠, 아이라 C. 이커 등이 후배로서 응원했다가 곤경에 처한다. 수뇌부에서 젊은 장교들까지 부화뇌동한다며 압력을 가해 한직으로 잠시 좌천되기도 하고 진급에서 불이익을 받기도 했다.
결국 빌리 미첼은 전역을 하게 되고 그의 이론과 사상을 계승한 후배 장교들이 모여 거점이 된 곳이 미 육군항공대 전술학교(ACTS)였다. 대표주자는 당시 전술학교 교관 해롤드 L. 조지는 뜻을 같이 하는 엘리트 장교들을 결집시킨다. 헤이우드 한셀, 도널드 윌슨, 로렌스 S.쿠터 등이 전술학교 교관으로 활약하면서 미 조종사들에게 정밀 폭격 이론을 전파한다. 하나의 그룹으로 '폭격기 마피아'가 된다. 폭격기 마피아의 교리 이론은 '산업 그물 이론'이다. 핵심은 '불필요한 희생과 공포를 퍼트릴 이유가 없으며 적의 고도화된 산업시대에 맞게 적의 산업시설 급소만 노려서 폭격을 하면 급소를 맞은 거대한 경제시스템은 주저앉기 마련이다'는 것이다.
산업 가치 사슬의 대체 불가한 외통수를 타격한다면 연결된 생산 과정은 모두 마비가 돼서 전쟁 수행이 불가능하다. 당시 주요 정밀 타겟은 주요 산업 인프라(제철소, 발전소, 석유공장, 화학공장 등), 핵심 부품 공장(모터 제조 공장)이었다. 1943년 독일에 영국과 미국 전략 폭격에 미 폭격기부대가 가세한다. 미군은 정밀 타겟을 선정하기 시작한다. 1943년 8월 '슈바인푸르트-레겐스부르크 미션'을 계획한다.
주요 정밀 타겟으로 독일의 항공기 시설을 방해하기 위해 독일 최대의 전투기 생산라인 메서슈미트 공장이 자리한 레겐스부르크를 폭격하고 슈바인푸르크에 밀집한 볼 베어링(회전축의 마찰을 최소화해 주는 부품) 공장을 폭격한다. 1943년 8월 17일 치열한 작전 끝에 슈바인푸르트를 폭격한다.
미국 전략 폭격의 한 획을 그은 인물은 '커티스 르메이'이며 영. 미 전략 폭격 당시 미 305 폭격비행단 지휘를 했다. 폭격기 마피아의 교육을 받은 전술학교 출신으로 일요일 오전에도 일하는 일중독이었다. 일요일 오후만큼은 가족과 보낸다는 원칙은 있었다. 솔선수범하며 부하들을 압박하여 많은 사람들이 학을 뗐다고 한다.
1942년 11월 '커티스 르메이'는 직접 출격해서 생나제르 유보트 기지를 폭격하러 간다. 미 폭격기는 1대도 잃지 않고 폭격 정밀도는 2배 이상 향상된다. 1943년 9월 '커티스 르메이'는 37세로 준장으로 진급한다.
1944년 7월 사이판 함락 이후 일본은 본토 폭격 위험을 느끼고 있었다. 전쟁 전 1937년 3월 30일 가결된 법안 <방공법>이 제정된다. 일본의 반공법은 등화관제 및 화재 대비 방공 교육, 훈련 실시등이 있다. 방공법은 단순히 폭격기만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전쟁수행을 할 수 있을까라고 해서 이때 반상회가 조직된다. 도나리구미/ 반(班)을 조직해 수시로 반별 모임 반상회를 개최한다. 12 가구 씩 묶어 1팀으로 하고 일본 전역에 반(도나리구미) 약 100만 개가 조직되었다. 일본은 목조 주택이 많았고 반상회 주임무는 소이탄에 의한 화재 진압이었다. 소방훈련 도구로 모래, 양동이, 빗자루로 훈련을 한다. 1943년 국민방공법이 제정되어 전략 물자 생산 노동자 이동 금지가 포함된다. 모든 동네에 방공호, 참호를 설치하고 화재 진압을 위한 방화 수통을 설치한다. 하지만 부작용이 발생한다.
방공호를 파 놓으니 취객들이 빠져서 골절 피해가 속출했다. 그래서 다시 메꾸었다.
언제든지 불을 끌 수 있게 방화수통을 준비했는데 모기떼가 서식하기 좋은 환경이라 모기가 급증한다. 일본은 습해서 모기가 많은데 방화수통까지 있으니 모기가 더 늘어났다. 그래서 방화수통을 다 엎어버린다. 한동안 모기 박멸을 해야 했다. 이러면서 방공 활동이 흐지부지해진다.
일본군의 방공력 고사포(대공포)
미국은 1943년 개량화 B-29 슈퍼포트리스를 개발한다. 엄청난 보안 속에 개발했지만 정보가 새서 일본이 알게 된다. 미국이 초장거리 자이언트 폭격기를 만든다는 것을 감지하고 스파이 활동을 한다.
1943년 말에 미국 신문에 보도가 된다. 강력한 장갑과 무장을 갖추고 고고도를 비행하며 기존 B-27, B-24와 비교되지 않는 항속력을 가진 폭격기를 생산 중이라는 기사가 쏟아진다.
일본 수뇌부는 정보를 입수해서 미 항공기 배치는 중일전쟁에서 활약했던 플라잉 타이거즈의 근거지이자 미 제14항공군 일부가 주둔한 중국 계림(구이린), 유주(류저우)를 예상한다. 이곳에 배치해서 일본을 공격할 것이라 예상했다. 1943년 12월부터 일본 본토 방공망을 재정비하려는데 여러 군데에서 심각한 난관이 있었다.
일본 66개 주요 공업도시에 고사포를 배치하려는데 일본 고사포 배치 현황은 1941년 880문 있었는데 1943년에는 850문으로 줄어 있었다. 관리가 안 되었었다.
일본군 고사포는 중국 국민당군이 쓰던 독일제 대공포를 노획해서 카피한 것이다. 일본 99식 8cm 고사포는 실제 유효사거리가 (고도) 8,000m였다. 미국의 B-29 슈퍼포트리스는 비행 고도가 10,200m였다. 고사포는 소용이 없었다. 1945년 일본이 자체 개발하고 생산한 5식 15cm 고사포는 1945년 8월 초 일본 본토 폭격 당시 B-29 2대를 격추(확인)했다. (추가 2대 격추 주장)
5식 15cm 고사포는 단 2문만 생산해 도쿄 외곽에 배치했다. 포탄 길이는 총 180cm였다. 배치 수가 적다 보니 성능이 뛰어나도 효과가 없었다. 미군이 일본을 폭격할 때 야간 폭격을 했다. 야간 폭격을 방어하기 위해 서치라이트를 운용해야 하는데 여력이 없었다. 서치라이트 유효거리는 짧았고 수량도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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