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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학지식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by 소시민스토리 2024.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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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우크라이나

현지시각 기준 2022년 2월 24일 새벽 04시 50분 러시아는 동시다발적인 전면 침공을 개시했다. 우크라이나는 새벽에 갑자기 포화에 휩싸인다.

우크라이나는 유럽에서 러시아로 가는 관문이다. 로마 가톨릭세력, 그리스 정교 세력이 서로 만나는 지역이고 위쪽에는 전통적으로 강국이었던 폴란드, 헝가리, 리투아니아가 위치하고 있다. 리투아니아 대공곡은 13세기말부터 18세기말까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한쪽에는 러시아가 있다.

우크라이나가 폴란드, 헝가리 등에 굉장한 어려움을 받을 때 러시아에 손을 내밀었지만 핍박을 받다가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연합에 의해서 많은 피해를 입었다. 우크라이나는 기름진 땅 흑토(黑土/체르노젬)라는 엄청난 땅을 가졌다. 씨앗을 뿌리면 엄청나게 잘 자라서 '유럽 제일의 빵바구니'는 우크라이나가 된다. 

때문에 유럽국가와 러시아는 흑토를 세력권으로 둔다면 자신들의 식량 안보를 확보할 수 있다.

중세 지주, 영주가 있을 때는 우크라이나 지역을 누가 차지할 것인가가 중요했다. 이 지역에서 끊임없이 세력들간의 각축을 벌이고 우크라이나 내부에서도 지역에 따라서 친 폴란드, 친 러시아를 지지하는 사람들로 나뉜다. 

 

우크라이나 면적은 남한의 약 6배 정도이고 러시아 다음으로 유럽에서 2번 째로 큰 나라다. 인구는 4,500만 정도로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홀로도모르' 기아에 의한 집단 학살이 있었다. 1차 대전이 끝나고 소련에 의해 우크라이나는 합병이 된다. 1930년대 초 엄청난 대기근이 일어났다. 소련은 이 지역을 집단농장화했고 식량을 가져가는 과정에서 250~500만 명이 죽었다고 한다. 1천만 명이 죽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당시 우크라이나는 농업국가였지만 농사는 가축으로 지었다. 소련이 합병하고 토지개혁을 하면서 가축을 전부 몰수해 간다. 일부 화가 난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가축을 전부 다 빼앗기기 보다는 차라리 먹어 버리자면 가축들을 잡아먹기도 했다. 절대적인 노동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대기근이 일어났고 소련은 할당량을 다 요구하며 식량을 몰수해 가서 먹을 것이 없어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굶어 죽는다.

 

1991년 12월 소련이 붕괴되며 우크라이나는 독립한다. 독립하면서 문제들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연방에 편입되어 있을 때는 많은 땅과 크림 반도를 우크라이나에 편입시켰다.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서기장이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에 준 이유가 있었다. 20세기 소비에트 정부가 들어서면서 소련은 우크라이나에 엄청 피해를 줬다. '홀로도모르 (집단 학살)' 뿐만 아니라 1941년 8월 독일군을 막기 위해 드니프로강 댐을 폭파하면서 비밀리에 해야 한다며 주민들을 대피시키지 않았다. 최소한 2만 명이 익사를 했고 이재민은 10만 명이라고 추정된다. 1986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일어났고 소련의 은폐와 늑장 대처로 피해가 확산되었다. 우크라이나는 계속해서 박해의 역사 속에 있었다. 

 

그러다 연방이 해체되자 우크라이나는 독립했고 러시아는 편입시킨 땅을 찾고 싶어 한다. 

크림반도는 흑해에서 위치적으로 중요하고 러시아의 전략적 항구 세바스토플이 있다. 

소련연방 정부가 해체되고 우크라이나는 독립을 하면서 1991년 세계 3위의 핵보유국이 되었다. 핵폭탄 약 5,000발과 ICBM 170기 이상을 보유하고 있었다.

1994년 12월 5일 부다페스트 조약을 맺는다. 러시아는 핵무기를 가져가는 대신 우크라이나의 안전을 보장한다. 하지만 2014년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병합했다. 

부다페스트 조약으로 각 나라마다 안전 보장 각서를 두고 제각각 해석을 한다.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벨라루스는 만약 위험에 처한다면 서방세계가 군대를 보낼 것이라 해석을 했다. 하지만 서방국가들은 부인한다. 서방 국가 중 미국의 최대 관심사는 핵무기를 안전하게 회수해서 폐기하는 것이었고 여기에 엄청난 돈을 쓴다. 벨라루스 경우 핵무기를 중동에 팔려고 하는 조짐이 있었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옛 연방국가들의 정부가 친 러시아이면 마찰이 없지만 반 러시아 정부가 들어서면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다. 반 러시아 정부는 서유럽이나 미국을 지지하려는 입장을 취하기 때문에 러시아와 분쟁이 일어난다. 우크라이나는 영토가 크고 흑토를 가지고 있으면서 러시아 옆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끊임없는 마찰과 분쟁에 시달리고 있다. 또한 내부적으로 복잡한 양상을 가지고 있다. 

 

러시아 쪽에 가까운 쪽은 러시아인들과 러시아어를 쓰는 사람들과 섞여있고 남쪽으로는 루마니아인과 루마니아어를 쓰는 사람이 섞여있고 중앙에는 순수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있다. 순수 우크라이나는 헝가리와 폴란드 영향을 받고 있는 세력들이 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냉전 이후 예전의 바르샤바 위성 국가들이 대부분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 편입되었다.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발트 3국이 NATO에 가입하자 러시아는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발트 3국은 러시아에 붙어있었고 러시아에서는 천연 방어막, 완충지대라고 여겼는데 NATO에 가입한 것이다. 아직 NATO에 가입하지 않은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놓아줄 수 없는 땅이 돼버렸다. 

 

 

영화 <대장 부리바>는 당시 동유럽의 강대국이었던 폴란드 리투아니아가 터키의 침공을 받자 폴란드에 인접한 기마족 코자키는 폴란드와의 동맹국으로서 전쟁에 참여하지만 폴란드와 코자키 동맹에 균열이 생기면서 대초원을 되찾기 위한 재기와 복수를 다짐한다는 내용이다.

 

우크라이나인은 역사적으로 폴란드 리투라니아가 강성하고 동쪽에서는 모스크바 대공국이 부상하여 러시아로 점점 확대되고 있을 때 사이에서 압제와 예속에서 자유를 찾아 탈출한 코자키(카자크)들이 만든 민족이다. 군사적 자치 공동체가 코자키(카자크)이다. 가장 대표적인 우크라이나 카자크 세력은 자포리자 지역을 중심으로 모인 자포리자 카자크가 세력을 점점 확장하게 된다. 당시 폴란드 리투아니아가 점점 세력이 약해지자 점점 자치 국가 수립에 대한 열망이 커진다. 보흐단 흐멜니츠키가 나서서 1648년 봉기를 일으키고 자치권을 확보한다. 러시아가 점점 세력이 커지면서 우크라이나 카자크인들을 포섭하여 러시아의 세력권 안에 편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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