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잡학지식

항공기 등장과 전략 폭격

by 소시민스토리 2024. 3. 19.
반응형

 

항공기 등장과 전략 폭격

프랑스 혁명전쟁 중 플뢰뤼스 전투(1794년) 최초로 군사적 비행기구가 등장한다. 1797~1815년 나폴레옹전쟁에서도 수소 기구에 관측병을 태워 정찰했다. 1903년 라이트 형제가 최초의 동력 비행에 성공한다.

1911년 이탈리아-오스만 제국 전쟁, 리비아에서 싸웠는데 이탈리아군이 리비아의 터키 기지를 최초로 항공기를 이용해 폭탄을 투하한다. 손으로 던진 2Kg짜리 근접전투용 소형 폭탄이었다.

 

 

 

1차 대전에서 항공기가 본격적으로 활용이 된다. 진지전, 참호전으로 교착된 전선을 뚫는 타개책으로 구상되었다. 항공기를 동원해서 적의 포병을 타격하고 항공기를 향한 적 포병의 관측을 유도하는 임무였고 적의 진격 상황 관측용으로 활용한다. 동력항공기로 상대방의 항공기를 막기 위한 공중전으로 발전했다. 적기의 취약한 후미를 잡아 요격하는 근접전술 '도그파이트 전술'이 개발된다. 

속도와 무장이 빈약한 다엽기(날개가 2개 이상 ) 위주여서 여전히 지상군을 지원하는 보조하는 역할이었다.

 

1차 대전 이후 항공 이론가들이 등장한다. 항공기를 단순히 육군 지상군을 보조하는 역할만 할 것이 아니라 보다 큰 차원에서 항공기 활용을 고민해야 한다. 항공기가 전쟁 수행의 주력이 되기를 꿈꿨다. 항공병과가 육해군의 보조역할이 아닌 별도로 공군을 편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초창기 항공 이론가들의 주장은 상당히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고 이단적이며 과격하다는 당대 평가를 받는다. 

초창기 항공 이론가 들 중 이탈리아 육군 장교 출신 '줄리오 두에'는 최초의 항공 이론가로 평가된다. 

이탈리아는 1차대전 동안 프랑스, 영국, 독일에 이어 항공기 약 2만 대를 생산했다.

전쟁에서 동력 항공기로 정찰 및 폭격 사용도 1911년 이탈리아가 최초로 했다.

 

줄리에 두에 별명은 '항공력의 아버지'다. 전쟁에서 항공기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심사숙고해서 처음으로 '항공전략 이론서'를 저술했다. 1921년 발표한 저서 <제공권>에서 앞으로의 전쟁은 군인과 민간인이 구분이 없고 총력전이 될 것이다'라는 기본 전제가 깔려있다. 전제조건으로 공중공격 감행 시 적국의 방어 수단은 항공기뿐이기에 앞으로 전쟁의 선결조건은 제공권 장악이다. 제공권을 가지면 방해 없이 적의 영토를 자유자재로 타격할 수 있다. 자유자재 공중폭격으로 적국 국민의 전쟁 수행 의지를 꺾을 수 있고 이것은 전쟁의 승리이다.  고성능 폭탄, 소이탄, 독가스탄까지 사용가능하며 인구 중심지에 동시 폭격하여 민간인에게 공포심을 조장하여 사기를 꺾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줄리에 두에가 생각한 '전략 폭격'이다. 

 

영국 공군 원수 휴 트렌차드는 1918년 영국 왕립공군을 세계 최초로 창설한다. '영국 공군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가진다. 줄리에 두에와 마찬가지로 항공력은 국민의 전쟁 수행 의지를 꺽을 수 있고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 공군력의 선구자 '윌리엄 렌드럼 미첼'은 애칭으로 '빌리 미첼'이라 불렸다. 수많은 연설과 논문을 통해서 미군에서 독립적이고 강력한 미 공군을 창설해야 된다고 최선봉에 서서 주장했다. 전략폭격의 결정적인 중요성을 강조한다. 산업시설부터 인프라, 농업식량까지 모두 파괴해야 되며 공군력을 앞세워 전략폭격만으로도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런 주장들이 나왔지만 전략 폭격에 대한 이해는 부족했다. 대부분 국가에서 항공대는 육군 소속이었다.

전략폭격은 환상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런 상황을 바꾼 계기가 스페인 내전이었다. 의용군으로 참전한 독일 콘도르군단이 보여준 항공기 전술폭격의 위력을 보고 전략폭격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밀한 전술폭격이라고 이야기한다. 스페인 내전에 시범 투입된 독일 급강하폭격기 Ju 87 슈투카(초기형)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는 공포의 사이렌이 되었다. (구) 소련 전투기 폴리카르포프는 이탈리아제 전차 CV-33을 격파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전술 폭격이라 판단한다.

 

전략 폭격과 전술 폭격의 차이

군사적인 관점에서의 전략과 전술은 차이가 있다. 전략은 전쟁에서 승리하는 수단과 방법이다. 전술은 전투에서 승리하는 수단과 방법이다. 전략 폭격은 전략적 차원의 폭격이고 전략 폭격의 핵심 타깃은 적국의 수도이다. 

 

1차 대전에서 전략 폭격은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독일이 전쟁에서 진 이유는 독일제국이 붕괴하고 바이마르공화국이 탄생한다. 독일 내부에서 혁명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망한 이유도 1917년 러시아제국 역시 혁명으로 몰락했다. 국민들의 전쟁 수행 의지가 꺾였기 때문에 승패가 갈렸다. 

1차 대전 승전국 군사 전문가들은 전쟁 수행의지를 빨리 꺾이도록 유도하지 못했나를 찾았고 전략 폭격을 했다면 1차대전 패전국의 몰락도 빨라졌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전략 폭격이 태동하게 된다.

 

항공이론가들은 항공력이 전쟁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이제부터 전쟁 양상은 적군이 아니라 적국의 국민들이 타깃이 되는 것이다. 2차 대전 사망자는 군인은 약 1,800만 명이고 민간인은 약 2,900만 명으로 민간인 피해가 훨씬 컸다.

 

 

북마리아나 제도에서 도쿄까지는 약 2,360Km이다. B-29 발진기지로 만든 티니안 비행장은 당대 최대의 규모였다. 전쟁의 승리를 위한 타깃은 일본 본토, 1945년 3월 10일 B-29 334대가 전격투입된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