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테 해전을 끝으로 저물어 가는 전함의 시대
일본에게 레이테 해전은 해군 전력을 쏟아부은 최후의 일전이었다. 거함, 거포에 걸었던 희망은 완전히 신기루로 드러났다. 유명한 일화는 '포술계의 권위자' 이노구치 도시히라 전함 무사시 함장은 부하들에게 한탄을 했다. "내가 항공기를 간과했던 것이 큰 실수였다" 부하들에게 고백을 하고 유서를 작성한 후 함대 사령관에게 전하라며 포술장에게 유서를 인계하고 자결을 선택한다.
일본의 마지막 남은 거함, 거포주의의 신봉자들도 바뀐 현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고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해전의 패러다임의 변화였다. 전함의 시대는 종지부를 찍었다.
전함이 함대함 전투에서 결정타가 될것이다는 믿음이 깨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전함의 효용성이 끝난 것은 아니다. 전함의 함대함 전투용으로서의 의미는 쇠퇘했지만 강력한 주포를 가지고 있어서 지상군을 위한 화력 지원은 가치가 인정되었다.
6.25 전쟁 때 아이오와급 전함 미주리 BB-63은 인천상륙작전, 흥남철수작전 등에 포격지원을 했다.
냉전 초기 미국의 적은 해군력이 약한 소련이었기 때문에 많은 전함들을 남겨 놓았다. 미 해군이 소련 연안을 포격하거나 소련의 약한 함정 상대에는 전함이 필요 있다고 하여 남겨 놓는다.
전함의 최후는 1950년대 들어서 해군에도 핵무기가 보편화되면서 시들해진다. 당시 소련은 해군전력이 영국과 미국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어서 핵무기를 발전시킨다. 소련의 핵추진 전략은 미 항모 전단 한가운데에 핵폭탄을 투하해서 상대하겠다는 전략을 발전시키면서 핵무기 시대에는 보다 기민하고 생존력이 강한 함정이 필요했다. 1950년대 후반 미 전함들이 줄줄이 퇴역한다.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부활시킨다. 600척 함대 재건 계획에 따라 아이오와급 전함을 재취역한다. 당시에 나온 아이오와급 전함에 현대화 개수 아이디어 항공 전함을 만들자고 한다.
1969년 수직 이,착륙기 AV-8A 해리어가 양산돼서 수직 이, 착륙 플랫폼으로 미 항공전함 아이디어가 등장한다. 하지만 비용이 많이 들어 만들지 못하고 아이오와급 전함 미주리와 위스콘신이 순항 미사일 '토마호크'발사 플랫폼으로 걸프전에 투입되었다가 종전 후 퇴역한다.
재래식 무기와 핵무기의 관계
핵무기의 제한이 없을때는 재래식 무기가 쓸모가 없다. 1991년 7월 말 미국과 소련은 핵무기 감축 조약 스타트 1을 체결했다. 핵무기를 제한하기 시작하자 다시 재래식 무기가 필요해졌다.
그래서 80년대 레이건 대통령이 600척을 재건한 이유다. 1953년 아이젠하워 행정부가 도발에 대한 응징은 핵무기로 보복한다는 대량보복전략을 채택하면서 재래식 무기는 필요 없었다.
1970년대 미국과 소련이 핵무기 제한 협정 (SALT) 2차례 진행, 체결하면서 재래식 무기가 또 필요해졌다.
게릴라전, 테러 공격이 잦은 미국과 이라크, 아프카니스탄 전쟁에서 최신 무기가 동원된다.
미국은 재래식 무기를 다량 보유한 중국과 러시아와의 충돌을 대비하면서 재래식 무기, 전술에 중점을 두게 된다. 재래식 무기와 핵무기가 계속 순환하면서 이어지고 있다.
대함미사일도 전함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는데 일조했다. 항모 1척을 보호하기 위해서 호위함 10~12척이 필요하다. 전함도 마찬가지로 함대가 필요하다. 전함은 그 자체로 거대한 표적이 되고 비용적인 부분에서 효율성이 떨어진다.
전함의 시대는 갔지만 많은 전함들은 박물관에 남아있다. 레이테 해전에서 활약한 미 함정들이 현재 전시돼고 있다. 처음 시부야해전에서 일본함대를 타격했던 미 에식스급 항모 인트레피드 CV-11은 뉴욕 인트레피드 해양항공우주박물관으로 변신되어 있다.
함명에 미국 주(州) 이름이 붙었던 전함들은 그 주(州)에서 고철 판매 처분을 막고 박물관으로 전시하고 있다. 아이오와급 전함 4척은 모두 박물관이 되어 뉴저지주 캠던에 전함 뉴저지 박물관으로 정착했다.
치열한 경합 끝에 로스앤젤레스에 전함 아이오와 박물관이 유치됐다.
일본 무조건 항복 서며의 역사적 무대였던 전함 미주리는 하와이 호놀룰루에 정착했다.
세계 최대 해군기지가 자리한 버지니아주 노퍽에는 명성에 맞게 전함 위스콘신 박물관이 건립되어있다.
전함 앨라배마 BB-60은 앨라배마 주 모빌에 앨라배마 기념공원으로 남아있고 매사추세츠주 폴 리버에 해양박물관과 전쟁기념관으로 전함 코브가 변신하고 있다.
사우스다코타 BB-57, 인디애나 BB-58은 해체가 되었다.
2000년대 들어 레이테 해전의 '침몰 함정'을 발견하면서 밝혀진 사실들이 있다.
심해탐사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요즘은 심해탐사정이 무인화등으로 비용부담이 감소했다. 심해에 가라앉은 군함 잔해 발견이 빈번해졌다. 심해탐사 사진과 영상들이 새로운 단서가 되어 과거에 알고 있었던 가설들을 뒤집고 있다. 근래 들어 레이테 해전의 새로운 실마리가 추가되고 있다.
사마르 해전 중 중순양함 초카이 침몰 원인이 논란이 되었다. 산소 어뢰 유폭으로 침몰했을 것이다고 생각했는데 2019년 초카이를 찍은 심해사진이 공개가 되었다. 초카이 어뢰 발사관이 멀쩡하게 남아있었다.
산소어뢰 유폭설 가능성은 줄어들고 반면에 아군 전함 공고, 하루나의 오인사격설이 급부상하고 있다.
심해탐사 사진을 통해 중순양함 스즈야는 산소어뢰 유폭으로 확인됐다.
2015년 전함 무사시 잔해가 발견되었다. 무사시 침몰 위치가 베일에 싸여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 공동 창업자 폴 G. 앨런이 마이크로소프트 주식 팔아서 엄청난 돈을 벌어 2006년 포브스 선정 '세계의 부자' 6위에 오른다. 심해탐사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진행하여 심해탐사로 군함 30여 척을 발견했다. 8년간의 탐사 끝에 무인 잠수정으로 전함 무사시 잔해를 찾아낸다. 2015년 3월에 무사시를 발견해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일본에서는 야마토에 비해서 무사시는 관심이 덜했다. 명성에 비해 빈약한 전과와 처참한 최후로 인해 관심이 덜 했으나 잔해 발견을 계기로 전함 무사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어 일본에서 구조된 사람들이 다시 위령제를 지내기도 했다.
세계적인 영화감독 '제임스 카메론'은 비스마르크호의 비밀 전함, 비스마르크 탐사 과정을 취재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했다.
2021년 3월 놀라운 발견을 한다. 미 구축함 존스턴 잔해가 발견되었다. 수훈함 존스턴DD-557이 심해에 깊이 잠들어 있었다. 시부얀 해는 심해지형이 필리핀의 동쪽은 태평양 쪽에 지각판이 밑으로 말려들어가는 필리핀 해구가 형성되어 있다. 필리핀 해구가 갑자기 절벽처럼 있어서 수심이 6,000~7,000m이다. 사마르 해전에서 가라앉은 배들을 그동안 찾을 수 없었다. 처음 발견은 2019년 5월 '로버트 크래프트' 미 탐사업체 심해탐사 책임자가 무인잠수정을 이용해서 수색하다가 수심 6,220m 지점에서 함정을 발견한다.
탐사 화면 공개 후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하자 사마르 해전에서 격전을 벌인 미 구축함 3척 중 하나로 추정했다. 2021년 다시 한번 수색하다가 선체 옆면에 557 숫자가 선명하게 보였고 플레처급 구축함 존스턴의 선체 번호였다.
존스턴은 거함 야마토의 46cm 포를 맞고도 분전했던 흔적이 생생히 남아있었다.
2021년 3월 존스턴의 잔해 발견은 미 유력 언론에 집중조명되었다. 존스턴 발견으로 인해 기네스북에 레이테 해전기록이 하나 더 추가된다. "The world's deepest shipwreck" <기네스 기록> "세상에서 가장 깊은 곳에 가라앉은 배의 잔해"라는 기록이 추가된다. 존스턴 DD-557은 수심 6,468m에서 발견되었다.
이전의 "The world's deepest shipwreck" 1위 기록은 독일 상선 리오그란데가 1996년 남대서양 수심 5,762m 지점에서 발견되어 가지고 있었다.
존스턴 잔해 발견에 활약한 자율 무인 잠수정은 RV 페트럴이다. 소유주는 폴 G.앨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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