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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학지식

삼겹살은 왜 한국인의 소울푸드가 되었을까

by 소시민스토리 2024.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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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겹살은 왜 한국인의 소울푸드가 되었을까?

3월 3일은 삼겹살 데이라고 할 만큼 한국인의 삼겹살 사랑은 유별나다. 유명한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이 한국에서 삼겹살을 먹고 갔다는 사실이 있을 만큼 해외 스타들도 한국에 와서 삼겹살을 먹고 간다.

한국인의 삼겹살 소비는 세계적으로도 가장 높다. 업계에서 추산한 합계에 따르면 한국인 1인당 소비 가능량은 연 7.2Kg이다. 1인분을 200g기준으로 국민 1인당 매달 3인분을 먹는다.

한국이 삼겹살을 수입하는 국가는 대부분 '축구강국'으로 독일, 프랑스, 브라질, 네덜란드, 스페인,칠레, 미국, 멕시코, 아일랜드, 오스트리아, 덴마크다. 

 

불판 앞에서 삼겹살을 구우면서 진솔한 대화들이 오고 간다. 

술자리에서 가장 흥미로운 말들이 술한잔과 함께 삼겹살을 먹으면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한국인의 소울푸드로 삼겹살을 꼽는다. 

 

 

삼겹살이 지방이 많은 부위라서 외국에서 저급 고기 취급을 받는 것을 비싸게 주고 사 온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지만 진실이 아니다. 나라별 조리 방식이 다르고 선호도부위가 다른 식습관 차이로 인해 유럽과 미국은 안심, 등심, 뒷다리살을 좋아하고 한국은 지방이 많은 삼겹살을 선호하는 식성 덕분에 오늘날 소울푸드가 되었다. 삼겹살은 서양에서는 베이컨으로 선호된다.

 

15세기 초 명나라에서는 조선사신을 맞이할 때 명나라 황제는 조선인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으니 소고기와 양고기를 대접하라고 지시를 했다. 조선후기 풍속화가 '성엽'의 풍속화첩을 보면 소고기를 화로에 구워먹는 선조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옛날 우리 민족에게는 고기하면 소고기를 일컬었고 돼지고기는 덜 선호되었다. 

 

옛날 돼지를 기르는 방식에서 토종돼지는 잔반이나 똥을 먹이로 주었고 고기에서 냄새가 너무 많이 나서 구워먹는 것을 기피했다. 그래서 돼지고기를 쪄서 먹거나 양념을 과하게 해서 냄새를 덜 나게 해서 먹었다.

삼겹살이란 말은 최근에 등장했다. 조선시대 돼지에 대한 자료, 1824년 간행된 가례증해에 실린 돼지를 보면 '갈비'라고 적혀있다. 기록상 삼겹살 이름은 20세기 초반에 발견된다. 1930년대 출간된 '조선요리제법'이라는 베스트셀러를 보면 삼겹살을 부르는 최초의 이름이 언급된다.  '세겹살은 돈육 중에 제일 맛있는 고기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삼겹살의 인기가 급상승한 것은 소고기 때문이었다. 1970년대 경제 성장이 이루어지면서 소득이 높아진 한국 사람들이 소비가 상승했고 당시까지 인기였던 소고기를 많이 접하게 된다. 그러면서 소고기 값이 많이 뛰어서 사회적 문제가 됐다. 정부는 소고기로만 몰리는 고기를 분산시키려고 대체제로 돼지고기를 선택했다.

소고기의 대안으로 양돈산업 투자가 시작되었다. 국민이 소비하는 고기 1위가 돼지고기가 되었다.

당시에 돼지고기값이 저렴한 것이 돼지고기 인기를 확산시키는데 한 몫했다. 70년대 청계천 전체가 노동자 단지였는데 삼겹살이 대유행하기 시작했다.  도시 노동자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았고 가격대비 가장 기름진 삼겹살과 가격대비 가장 빨리 취하는 소주의 황금 조합이 고된 하루를 끝내고 지친 심신을 달래주는 소울 푸드가 되어 주었다. 도시 노동자뿐만 아니라 수많은 직장인들의 애환을 달래주는 삼겹살과 소주가 이때부터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1990년대 초반, 삼겹살 100g에 600백 원이었다. 다른 돼지고기 부위보다 삼겹살 가격이 저렴했다.  2024년 서울시 기준, 삼겹살 1인분(200g)에 19,429원 되었고 삼겹살은 저렴한 고기가 더 이상 아니다.

삼겹살은 70년대 서민들의 고기로 등장했고 80년대가 되자 냉동 삼겹살이 등장해 전성시대가 되었다.

냉동 삼겹살은 간편해서 먹기도 좋았고 상추 위에 고기, 마늘, 파절임, 구운 김치, 밥 등을 취향껏 넣고 한 입에 먹으면 음식맛의 조화가 좋았다. 마무리는 돼지고기 기름에 밥과 남은 반찬들을 넣고  볶아먹는다.

레트로 열풍으로 최근 들어 냉동 삼겹살이 다시 유행하고 있다. 삼겹살을 구울 때 예전에는 불판에 기름 빠지는 구멍이 없었다. 기름이 모이면 식빵을 넣고 앞뒤로 뒤집어 가며 익히면 삼겹살 기름을 흡수하여 고소한 맛이 났고 거기에 설탕을 살살 뿌려 먹기도 했다. 

 

 

당시 냉동 삼겹살이 인기를 끌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냉장 유통 체계가 발달하지 않은 시절이라 냉동으로 유통될 수 밖에 없던 배경이 있다. 생삼겹살을 먹을 수 있었던 것은 냉장 시스템이 도입되고부터였다. 

80년대 삼겹살이 유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휴대용 가스버너가 등장하고부터이다.

그전에는 연탄이나 석유곤로에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직접 상위에서 구워 먹는 방식은 없었다. 일본에서 가스버너가 들어왔고 간편하게 빨리 불을 피워 고기를 구울 수 있어서 연탄보다 단시간에 화력이 좋은 부탄가스에 환호했다. 그때부터 식당 테이블 위에 가스버너가 올라가서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게 된다.

 

휴대용 부탄가스 출현으로 가정, 식당, 야외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고기를 구워먹을 수 있게 됐다. 이렇게 부탄가스와 삼겹살 구워 먹기  조합 덕분인지는 모르겠으나 현재는 우리나라 부탄가스 세계시장 점유율이 90%가 됐다. 

대패 삼겹살이 등장했다. 대패 삼겹살이라는 이름은 이미 80년대 있었다. 지금의 동그랗게 말린 모습은 아니고 한입 크기의 얇은 냉동 삼겹살을 대패 삼겹살이라 부르기도 했다.

90년대 전국적으로 유행했던 돌돌 말린 대패 삼겹살은 요리 전문가 백종원의 실수로 시작됐다. 1992년 식당을 차린 백종원 대표가 실수로 고기를 써는 기계가 아닌 햄을 써는 기계를 사서 얇게 썰어 말린 삼겹살을 내놓았더니 손님이 대팻밥처럼 말려서 이게 뭐냐라며 하는 말에 착안을 해서 '대패 삼겹살'이라는 메뉴명을 내놓았다. 입소문을 타면서 신문사에서 취재 요청이 쇠도 하고 전국적으로 유행이 퍼지면서 1998년에는 특허청에 상표 등록까지 했다. 대패 삼겹살은 불에 올리면 금방 익어서 먹기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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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겹살의 고급화 전략으로 숙성 삼겹살시대가 왔다. 1990년대는 남다른 삼겹살 요리가 다양하게 등장했다. 와인숙성, 허브 삼겹살, 마늘 숙성 삼겹살, 대나무 통 삼겹살, 드라이 에이징 등으로 삼겹살에 다양한 맛을 입혀 고급스러운 맛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고급화 전략으로 삼겹살의 가격이 오르고 있다. 

 

 

90년대 가마솥뚜껑이 등장해서 고기를 더 맛있게 즐길 수 있게 된다. 넓은 가마솥뚜껑에 구우면서 김치, 콩나물 등을 같이 구울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이 같이 먹을 수 있어 푸짐한 한상차림이 된다. 심지어 삽 위에서 구워주는 식당도 등장했다. 백반석, 수정돌판, 불판 전용 테이블까지 등장해서 삼겹살 구워 먹는 재미도 있었다.

삼겹살에 칼집을 넣은 벌집 삼겹살이 나왔고 짚불구이 삼겹살, 숯불 삼겹살 등 삼겹살 한 부위를 가지고 먹는 방법도 다양하게 만들어 같은 부위인데 다른 맛이 나는 경험을 한다. 

1급 발암물질인 줄 모르고 슬레이트 판에 고기를 구워 먹기도 했다. 기름이 잘 빠지고 간편하게 구워 먹을 수 있어 고기를 구워 먹곤 했는데 나중에 석면 함유 사실이 밝혀지며 금지됐다.

 

식당테이블에서 고기를 구워 먹다 보면 냄새가 베이게 되고 위에서 잡아당길 수 있는 환풍기를 설치해서 냄새를 제거했다. 테이블 아래에서 연기를 빨아들이는 환풍기 장치가 개발되었다. 삼겹살을 먹는데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맛 좋은 고기를 생산하기 위해 양돈산업도 발전하고 불판도 개발하고 환풍기 방식, 냉장, 냉동 유통 발전을 가지고 오면서 삼겹살의 인기는 다양한 분야의 발전을 가지고 왔다.

삼겹살은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친구, 가족, 연인, 직장동료와 먹을 수 있는 고기로 한국인의 소울푸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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