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잡학지식

미국의 태평양 보급전쟁

by 소시민스토리 2024. 3. 7.
반응형

미국의 태평양 보급전쟁

레이테 섬에 상륙한 미 육군의 제6군은 일본군 제10군단 24사단과 두 달 동안 엄청난 혈전을 벌인다.

미 77사단의 오르모크 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일본군이 후퇴했고 미 육군의 제6군은 제8군에게 지휘권을 넘기고 루손섬으로 상륙할 준비를 한다. 

 

레이테섬 지상전 미 육군의 제6군

 

레이테섬 지상전 미 육군의 제6군

레이테섬 지상전 미 육군의 제6군 1944년 10월 20일 미 육군의 제6군은 레이테 해전이 끝나기 전에 앞서서 레이테 섬에 상륙한다. 태평양전쟁의 수많은 고립된 전장 중 잊힌 전투가 많다. 미 육군의

bringbacon.tistory.com

 

미국의 태평양전쟁의 보급 부담은 매우 컸다. 미 육군을 위한 태평양전쟁 보급 비용은 유럽전선에 비해 약 2.5배로 추산된다. 태평양전선 20만 명의 보급력이 유럽 전선  50만 명의 보급력과 같은 수준이다.

필리핀으로 보급하던 당시 루트를 보면 연료수송은 미국의 동해안, 멕시코만에서 필리핀으로 수송해 온다. 

초반 정유시설이 부족할때는 페르시아만에서 원유를 공수했다. 카리브해, 멕시코만, 미국동해안 쪽에서 연료를 실어가지고 파나마운하를 거쳐서 호주로 실어 나른다. 호주에서 뉴기니 쪽의 전진보급기지로 이동시킨다. 

보급선 길이가 길고 필요한 화물선도 엄청 많았다. 다른 물자들도 미국 서해안에서 실어서 태평양을 건너서 와야 하므로 어마어마한 길이였다. 태평양전쟁은 미국이 순탄한 전쟁을 치른 것처럼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뒤에서는 보급 전쟁을 하고 있었고 여러 번의 위기를 맞았다. 

 

보급은 과달카날 전역때부터 심각했다. 과달카날 전역 1942년 8월 8일~9일 사보섬 해전에서 일본의 초카이, 중순양함들이 산소 어뢰로 야간 기습하여 미, 호주 연합 해군 순양함 4척이 침몰되었다. 이때 미카와 군이치 일본 제8함대 사령장관이 야습 후 곧장 철수하지 않고 미 수송선을 공격했다면 과달카날의 해병사단은 아사직전에 직면했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미국 수송선이 넉넉하지 않았었기에 미군은 가슴을 쓸어내려야만 했다. 

 

 

그 뒤로 미국의 숨통을 틔워준 전시 표준형 화물선 리버티선이 건조된다. 1943년 9월 리버티선 225척이 병력 수송선으로 긴급 투입되었다. 하지만 증원되고 있는 병력만큼 보급품도 늘어났고 미 육군과 해군 병력이 동시에 증가하여 화물선 수요가 감당이 불가능하였다. 1944년에도 보급 수송의 어려움으로 작전을 고민했었다. 

결국 보급 문제를 해결한다. 레이테 전역에 미 3함대와 7함대가 투입이 되었다. 고속전함, 에식스급 항모 중심의 미 3함대는 연료를 엄청나게 소비하는 기동함대다. 미 3함대를 지원하기 위해 미 3함대 전용 보급 함대를 만든다. 미 3함대 전용 보급함대는 유조선 34척, 유조선 34척을 호위하기 위한 호위 항모 11척, 구축함이 19척, 호위 구축함 16척이 따라붙는다. 미 3함대 연료 보급에만 이 정도를 쏟아부었다.

1944년 미 3함대 연료 보급량은 중유 850만 배럴, 항공유 1,450만 배럴이었다. 무게로 따지면 중유는 약 127만톤, 항공유는 약 230만 톤이다. 

 

태평양 곳곳에 전진기지를 건설하고 미국, 하와이, 호주, 태평양 전진기지, 필리핀으로 릴레이 수송을 하면서 보급품을 나른다. 태평양전쟁 뒤 보급 전쟁은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리버티선 수송선은 원거리 수송을 위한 해결책으로 대서양-태평양 양면 전쟁 수행으로 수송선이 부족해지자 

미 해사위원회(The United States Maritime Commission)는 <원거리 수송선 건조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아주 표준화된 만재배수량 약 15,000톤, 화물 적재 약 1만 총톤으로 표준화해서 미국 18개 조선소에서 건조한다. 용골 부설 상태에서 조립, 진수까지 리버티선 건조 최단 기록은 SS-로버트 E. 피어리가 4일 15시간 29분이었다. 2차 대전 동안 리버티선 총 2,710척을 생산했다. 18개 조선소 합산 1944년 평균 2일에 3척이 진수된다. 

미국 서부 해안에 위치한 카이저 조선소가 있다. 카이저 조선소 중 1곳은 워싱턴주 밴쿠버에 위치하고 있다. 1942년 작은 어촌 마을 밴쿠버에  조선소가 설립되면서 2차 대전 동안 밴쿠버 조선소 생산량은 카사블랑카급 호위항모 49척, 리버티선 16척 등 147척이 건조되었다. 

급하게 만들다 보니 수송선에 결함이 있었고 리버티선 수명을 3~5년으로 예상하고 만들었고 전후 리버티선은 많이 폐선이 된다.

 

1950년 12월 15~24일 <흥남철수작전>에서 리버티선이 활약하기도 했다. 피난민 14,000여 명을 구한 '기적의 배' 매러디스 빅토리(리버티선 후속 모델)였다. 

전시체제로 가동한 미국 내 조선소는 종전 후 폐쇄되었다. 

 

1943년 ~1944년 미 육군은 태평양전선 보급 작전에서 병력 130만 명과 화물 2,300만 톤을 수송했다. 보급작전은 레이테전투, 루손 공략 등 필리핀 탈환의 밑받침이 되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