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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열도 상륙작전 준비, 몰락작전 일본 열도 상륙작전 준비, 몰락작전 미군의 일본 열도 상륙작전은 '몰락작전(Operation Downfall)'이었다. 몰락작전의 기본내용은 1945년 11월 1일을 기해 미군 500만 명, 영국군 100만 명이 일본 본토에 상륙한다는 작전이다. 일본 점령 작전 기간은 최대 2년까지이며 필요하면 원자폭탄을 7발까지 투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몰락작전은 2단계의 하부작전으로 나뉜다. 올림픽 작전으로 1945년 11월 1일 규슈를 공격하고 코로넷작전은 1946년 3월 1일 혼슈를 공격하겠다는 단계가 있었다. 몰락작전의 1~2단계 소요 기간은 2년이 걸릴 수 있다. 올림픽작전, 규슈에 상륙하면서 미 육군 14개 사단 25만여 명, 미 해병대 9만 여 명 투입하고 항공모함 42척, 전함 24척, 400척 이상의.. 2024. 4. 19.
미군 병사 집으로 가는 길, 점수제도와 마법 양탄자 작전 미군 병사 집으로 가는 길, 점수제도와 마법 양탄자 작전 1945년 4월 12일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이 사망했다. 1945년 4월 30일 독일 아돌프 히틀러가 자살했다. 독일의 항복은 일본 전쟁 수행에 전혀 영향이 없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1945년 5월 13일 당시 일본 전 총리 겸 정치가 '고노에 후미마로'는 빨리 항복해야 한다고 히로히토 일왕 쇼와 덴노에게 상주문을 올린다. 일왕은 '아직도 우리에게는 미국에 일격을 가할 힘이 남아있다'라며 거부했다. 일본 내부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일본 육군은 독일 패망으로 소련군 병력이 극동지역으로 더 이동할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1945년 5월 일본 육군 추정 소련군 35개 사단이 만주-소련 국경선에 배치되어 있었다. 일본 .. 2024. 4. 18.
오키나와 미 군정 오키나와 미 군정 철의 폭풍과 함께 개시된 오키나와 상륙작전은 자살공격까지 하는 일본군의 거센 저항으로 미군 최대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리고 더 많은 수의 민간인이 사망했고 3개월 후에 혈전은 끝났다. 1945년 6월 오키나와 점령 후 본격적인 미 군정이 실시된다. 군정은 전투 후 점령지역을 군이 다스리는 것이다. 전투 중에는 민간인 (피난민)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미국은 과거 군정에 대한 관심이 적었다. 2차 대전기간 군정 교리를 만들고 전문 요원을 양성하는 등 체계적인 군정 준비를 한다. 이미 괌, 사이판에서 미 군정을 실시하고 있었다. 오키나와 전투 전부터 민간인 40만 명이 살고 있어 군정 준비를 철저히 했다. 태평양 전쟁 최초 심리전을 위한 대규모 전단지를 살포했다. 오키나와 조선인.. 2024. 4. 17.
오키나와 전투의 끝, 사이먼 B. 버크너 전사 오키나와 전투의 끝, 사이먼 B. 버크너 전사 오키나와 전투는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미 육군 제10군 사령관 사이먼 B. 버크너가 전사한다. 1945년 6월 18일 오전 버크너 준장은 제8해병연대가 싸우던 키얀반도 이토만 전투 시찰을 나갔다가 사망한다. 제8해병연대는 해병 1사단 배속되어 싸우고 있었지만 오랫동안 사이판 주둔 해병 2사단 소속으로 버크너가 예비대로 차출해 직접 운용한 부대였다. 제8해병연대를 격려하기 위해 전투 현장을 방문한 것이다. 버크너는 현장이 잘 보이는 제3대대 관측소로 이동했다. 헬멧에 장군을 인증하는 별 3개가 박혀있다. 참모들은 위험하다고 하며 아무 표식이 없는 헬멧으로 바꿔쓰게 한다. 하지만 일본군은 이미 모든 것을 보고 있었다. 일본군은 96식 15cm 곡사포 8발을 .. 2024. 4.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