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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학지식

황제가 된 손권

by 소시민스토리 2024.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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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가 된 손권

손책은 26세에 사망하고 손견은 36세에 사망했다. 일찍 생을 마감했지만 강력한 군대를 마련했고 국가 건립의 기반을 마련했다. 손권이 물려받았다. 

 

강동 손씨 집안은 조조나 유비와 똑같이 농민 반란군 진압과 군벌 혼전을 통해서 발전한 세력이었다. 절강성 동쪽에서 살았다. 토호 집안 출신이다. 아주 높은 관직은 아니지만 대대로 벼슬했던 관료 집안이었다. 

특히 무인 집안이었다. 손견은 손자병법의 저자 손무의 후예라는 설도 있지만 확실치는 않다. 

손견은 무관이며 손권과 손책의 아버지다. 황건 민란이 발발하자 손견은 장정들을 모집하고 정예병 천명을 모은다. 이것은 손씨 병력의 핵심 요원이 된다. 

 

이 군사들을 데리고 중랑장 주준을 도와서 황건적의 난을 진압한다. 활약이 두드러져 중앙에서 장사태수에 임명한다. 나중에 동탁이 전권을 행사하고 온갖 짓을 다하니 관동 제후들이 모두 모였다. 그때 손견도 같이 호응해서 중원으로 진출하게 된다. 원술 수하로 활동을 많이 한다. 그래서 하남 임여 서쪽에서 여러 동탁군을 격파한다. 소설에는 화웅을 죽인 사람이 관우로 나오지만 실제 역사상으로는 손견이 죽였다.

 

동탁이 낙양을 불태우고 간 뒤에 낙양에 최초로 입성한 사람이 바로 손견이었다.  조조는 동탁과 패했고 이긴 사람은 손견뿐이었다. 손견이 거기서 전국 옥새를 취득한다. 원술이 옥새를 취득한 손견을 시기하여 유표를 공격하도록 명령한다. 양양전투에서 화살을 맞고 손견은 전사한다. 

 

손견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아들 손책이 대을 잇게 되었다. 손책(175~200)은 아직 어렸다. 원술은 손견의 병력을 아들 손책에게 돌려준다. 손책은 아버지의 병력을 받게 된다. 원술은 빼앗은 옥새로 황제를 사칭하면서 엉뚱한 짓을 하자 손책은 못마땅했고 협조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원술과 결별하고 강동으로 간다. 손책은 신천지를 개척할 구상을 하게 되었다. 손책이 신천지를 개척하기 위해 내디딘 첫발이 손씨 집안 발전의 시초가 된다. 

 

아버지가 거느렸던 오래된 병사 천 명과 전마, 말 한 수십 필 정도밖에 없었다. 아주 초라했다. 새로운 장정들을 모집했고 6천 여명으로 늘어났다. 우저전투, 말릉전투 등 유요 세력과 몇 차례 전투를 치른다. 손책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손책은 전쟁에서 패한 적이 거의 없었다. 유요 세력을 굴복시키고 유요의 근거지, 곡아를 점령하고 근거지를 마련한다. 손씨 부자들이 그때까지는 강동에서 명성이 나지 않았다. 갑자기 쳐들어와서 남의 땅을 빼앗으니 좋은 평판이 날 리가 없었다. 

 

백성들이 좋아하지 않고 백성들은 손씨들이 나타났다 하면 산속으로 피난하고 숨었다. 

그래서 손책은 특단의 대책을 만들었다. 민심안정책을 만들고 군기를 명확하게 정돈한다. 그 당시에는 동탁부하들이나 이각, 곽사 부하들과 같은 사람들은 민가에 들어가서 약탈하고 빼앗아오고 부녀자들을 겁탈하고 횡포를 부리고 다녔다. 그래서 손책은 민심안정책으로 제일 먼저 군기를 아주 엄격하게 정리한다. 

 

어떤 민가를 지나가더라도 닭과 개 등 가축을 일체 건드려서는 안 되고 밭에 있는 채소라도 함부로 채취해서는 안 된다고 명령한다. 입소문을 타고 강동지역에 퍼지게 된다. 손책이 나타나면 가는 곳마다 백성들의 환영을 받게 되었다. 차츰 민심이 안정되고 차츰 병력도 불어나서 2만여 명으로 증가되면서 세력이 커진다.

그때부터 강남, 강동 지역을 정복하기 시작하고 거의 양주지역 전체를 통일한다. 

 

손책은 가는곳마다 승리를 하자 소패왕小覇王으로 통했다. 가는 곳마다 전쟁을 하고 목숨을 거두니 원수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손책의 부하에게 죽임을 당했던 허공의 부하들이 원수를 갚기 위해서 숨어 있다가 사냥 나온 손책을 찔러 죽인다. 

손책이 타던 말이 워낙 빨라서 부하들이 쫓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혼자 달리다가 비명횡사하게 되었다. 손책은 나이가 26세였다. 

 

 

손책은 일찍 생을 마감했지만 강력한 군대를 마련했고 국가 건립의 기반을 마련했다. 모든 기반을 손권이 물려 받았다.  손권은 다섯 형제 중에 제일 특이하게 생겼다. 손권은 얼굴이 네모지고 턱이 각졌다고 한다. 

소설에도 나온다. 관우가 손권을 보고 욕을 한다.

 

"碧眼小兒 벽안소아  紫髥鼠輩 자염서배

푸른 눈을 가진 철없이 아이이자 

붉은 수염을 지닌 쥐새끼 같은 놈"

 

손권은 실제로 수염이 붉었다. 손씨들 조상 중에서 서양인이 있었다고 보기도 한다. 일반인과 구별되게 인물이 눈에 띄었다. 한 관상가가 말했다. 

 

"손씨 다섯 형제 중에서 수명이 가장 긴 사람은 손권이오

손권은 왕좌에 오를 사람이지요"

 

손권과 손책은 7살 터울이었다. 손책을 따라서 전쟁터 경험을 많이 했다. 손책이 많은 세력들을 정리를 했다. 손권은 손책의 전쟁터에 항상 따라다녔다. 전략 전술에 대한 학습이 많이 한 것이다. 

손책이 죽고 나서 장소와 주유 등이 보좌해서 손권은 영도자의 자리에 오른다. 손책이 죽고 동오의 지도자가 된 손권의 당시 나이는 18세였다.

 

손권이 지도자 자리에 올랐을 때 국제 정세는 북방에는 조조가 관도대전에서 원소를 격멸했다. 형주의 유표는 아직까지 건재했다. 수천 리 영토에 완전무장한 병력 10만 명이상을 보유하고 있었다. 유비에게는 제갈량이 나타나서 유비를 보좌하면서 형주 탈취를 권유할 때였다. 

조조는 삼군오환까지 토멸하고 형주를 겸병할 움직임이 포착된 시기였다. 

 

감녕이 손권에게 건의를 한다. "조금 있으면 조조가 형주를 차지하려고 내려올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형주를 쳐야 합니다"라고 건의한다. 형주로 진격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 조조가 먼저 형주를 차지한다. 그리고는 곧바로 손권에게 선전포고를 한다. "내가 수군 80만 명을 데리고 왔소, 그대와 오나라에서 결전하기를 원하오"라며 편지를 보낸다. 

 

26살의 손권은 아주 비장한 결단을 한다. 허리에 차고 있던 패검을 뽑아서 눈앞에 있는 책상을 갈라버린다. 그리고 선언한다.

"나는 이미 결단을 했다

앞으로 만약에 투항을 권유하는 자가 있을 때는 이 책상과 같이 되리라"

강대한 적을 앞에 두고 확실하게 싸울 기백을 보여준다.

 

적벽대전이 일어난다. 5만 명밖에 안 되는 유비와의 연합군으로 20만 명이 넘는 대군을 격파하게 된다.

적벽대전은 삼국지에서 위나라, 촉나라, 오나라 삼국의 인재들의 두뇌 싸움이었다. 

적벽대전 당시 손권의 나이는 26세였다. 유비는 47세였고 조조는 53세였다. 그런 유비와 조조와 충분히 겨룰 만한 정치적 능력을 겸비했다. 

수많은 전투선들이 장강에 빽빽하게 늘어서 있고 깃발이 날리고 북소리가 들리는데 그 속에서 금빛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은 손권이 일사불란한 자기 군사들 그 사이로 나타났다. 그때 조조가 감탄을 한다.

 

"이야, 정말 참 손권은 대단하구나

자식을 낳으려면 저런 자식을 낳아야지

유표의 자식들은 손권과 비교하면 

개돼지에 불과하구나"

 

유비는 적벽대전을 통해서 형주 상당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손권은 강하지역을 차지한다. 조조는 북쪽의 양양 지역을 차지한다. 형주를 세 사람이 나누어서 차지하게 되었다. 그중 유비가 가장 넓은 땅을 차지하게 된다. 땅 한 뼘 없었던 유비가 적벽대전을 통해서 형주를 가장 많이 차지하게 된다. 갑작스럽게 세력이 커지자 손권에게는 위협이 된다. 과거에는 서로 손잡았던 대상이 엄중한 위협의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형주 지역에 쟁탈전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형주 지역은 수천 리나 되는 광활한 땅이었다. 인구가 많고 물산이 풍부했다. 오나라 촉나라 누구도 양보하기 어려운 지역이었다. 그런데다 손권.유비 연합 당시에 형주를 빌려줬었다. 

손권이 남군 강릉을 유비에게 빌려줬었다. 필연적으로 손씨와 유씨의 갈등이 격화되었다. 서로 항주 문제로 장기간 투쟁을 한다. 손권이 빌려준 강릉을 돌려달라고 해도 관우가 그곳을 차지하고 앉아서 절대로 돌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여몽을 시켜서 강남삼군을 점령해 버리자 유비가 타협을 하고 국경을 재설정한다. 

관우 때문에 2차 투쟁이 일어난다. 관우가 북진을 해서 양번전투를 일으킨다. 

 

손권은 처음에는 관우를 도와서 조조의 서주를 공격하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여몽이 반대하고 나선다. 서주를 점령해봐야 별 이득이 없을 것이며 조조가 반드시 반격을 할 것이니 그것보다는 차라리 관우가 북쪽으로 가 있는 동안 우리가 형주를 점령하는 것이 훨씬 더 이득이라고 설득한다. 손권은 마음을 바꾸어서 위나라와 은밀히 밀약을 한다. 

 

"당신들은 유비와 관우를 치시오

그 사이에 우리는 관우의 뒤를 치겠소"

 

형주를 탈취해버린다. 형주를 뺐았기고 관우가 죽자 유비는 이성을 잃어버린다. 모든 국력을 동원해서 동오를 친다. 손권은 전 병력을 동원해서 이릉대전에서 맞붙게 된다. 유비를 격파하게 된다. 치열한 전투 끝에 손권은 승리를 차지했다. 

 

손권은 조조.유비에 비해서 명분이 미약했다. 충분한 넓은 땅과 형주를 차지했음에도 수많은 백성들을 거느리면서도 오왕에 머물렀다. 나중에 10년이 지나서 황제 자리에 오른다. 한나라가 완전히 없어지고 나서야 황제가 된다. 

 

지혜로운 조조의 책사, 가후

 

지혜로운 조조의 책사, 가후

지혜로운 조조의 책사, 가후지혜로워야 할 때 한없이 지혜로웠고 어리석어야 할 때 한없이 어리석었고 말을 해야 할 때 충분하게 의사를 피력했고 일을 해야 할 때 확실하게 처리한 인물이었다.

bringbacon.tistory.com

 

 

다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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