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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학지식

2002년 월드컵 감동의 순간

by 소시민스토리 2024.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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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월드컵 감동의 순간

2002년에 한일월드컵이 한국에서 열렸다. 21세기 새천년 첫 번째 월드컵이었고 아시아 최초의 월드컵이었다.

공동경기를 하는 국제대회로서 첫 번째였다. 

 

 

2002년 5월 31일부터 6월 30일까지 한달간 대한민국 전 국민은 빨간색, 붉은 악마였다. 전 국민은 붉은 악마 티셔츠를 가지고 있었다. 최고 인기 상품은 (Be the Reads, 비 더 레즈) 티셔츠였다.

월드컵 본선 첫승리를 거두는 것이 국민의 염원이었다. 48년간 월드컵에 출전했지만 본선에서 승리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개최국으로 선정되었고 만반의 준비를 다했다. 

 

2002년 6월 14일 첫 번째 기적이 일어났다. 대한민국 대표팀이 포르투칼과 조별리그 3차전에서 1:0으로 승리하면서 16강 진출에 성공한다.

박지성 선수가 뛰어와서 이영표 선수가 크로스로 올린 공을 가슴으로 받아서 수비수를 속인 뒤 왼발로 '슛' 득점을 했다. 박지성 선수는 히딩크 감독에게 달려가 감격의 포옹을 했다. 

 

월드컵 개최국의 특혜, 낮에도 축구 경기를 볼 수 있었다. 학교는 단축 수업했고 회사는 조기 퇴근하기도 했다. 결혼식날에 경기와 겹쳐진 결혼식장, 군부대 등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응원 열기가 넘쳤다.

심지어 장례식장에서도 응원했다. 

 

 

2002년 6월18일 이탈리아를 상대로 2:1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면서 사상 처음 월드컵 8강에 진출했다. 대한민국과 이탈리아 전에서 연장전까지 가서 안정환 선수의 기막힌 헤딩골, 골든골로 역전극을 이뤄냈다. 안정환선수의 반지 키스 장면은 영원히 남았다. 안정환 선수의 별명은 테리우스, 반지의 제왕으로 불렸다. 

골든골은 연장전에서 먼저 득점을 한 팀이 승리하며 곧바로 경기가 종료되는 제도이다. 

골든골 제도는 2002년한일 월드컵이 마지막이었다. 

 

예상치 못한 한국의 8강 진출은 대한민국은 흥분의 도가니가 됐다. 지붕으로 올라가고 차에 올라가고 버스 지붕 위에도 올라가고 오픈카 타고 태극기 흔들며 자축하는 사람도 있었다. 누군가 거리에서  "대한민국' 외치면 차는 경적으로 "빵빵 빵빵 빵'하며 울려댔다.

외신들도 한국인의 저력에 놀랐으며 아시아의 조용한 나라가 아니다며 놀라워했다. 

 

 

거리에서 다 같이 새빨간옷을 입고 나와서 응원하는 모습은 전 세계적으로 희귀한 장면이었으며 눈길을 사로잡았다. 2002년 월드컵 당시 거리 응원을 나선 국민은 2,876만 명이었다. 당시 우리나라 인구는 4,700만 명이었으니 인구의 절반이 거리로 나와 응원했다는 것이다. 전국 곳곳에서 붉은 물결이 펼쳐졌다.

 

 

서울 광화문 광장부터 대전, 대구, 부산 등 각 도시마다 응원전이 펼쳐졌다. 

6월 22일 승부차기 끝에 스페인을 누루고 사상 첫 4강에 진출하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온 국민은 흥분에 들썩였다. 강강술래, 하이파이브 등을 모르는 사람끼리도 하면서 축제나 다름없는 분위기였다. 거리응원이 화제가 된 이유는 쓰레기를 자발적으로 치웠다는 것이다. 시민의식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응원열정과 더불어 응원 매너도 훌륭했다. 

동네마다 호프집은 공짜 이벤트를 벌이는 데가 많았고 붉은 악마 응원단에게는 아이스크림,우유 등을 공짜로 주기도 했다. 각 기업들이 공짜 이벤트에 할인행사를 많이 했다. 치킨집은 닭이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잘 팔렸다.  

 

2002년 월드컵 문구 '꿈은 이루어진다'는  당시 23세 대학생이 만들었다. 붉은 악마 공식 '카피라이터' 23살 대학생 김용재 씨가 만들었다. 안양대 전산학부 3학년에 재학 중이었는데 중학교 때부터 축구를 좋아해서 동호회 활동을 하다가 붉은 악마 회원이 됐고 카드섹션 공식 카피라이터를 담당했다. 이탈리아 전 16강전 'AGAIN 1966'카드 섹션, 포르투갈전에서의 'PRIDE OF ASIA' 카드섹션의 주옥같은 문구를 만들었다.

 

 

 'AGAIN 1966'문구는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북한이 이탈리아에게 1:0으로 승리했던 사실을 떠올리게 하는 아이디어였다. FIFA에서 이탈리아 선수단의 감정을  자극하니 철회하라고 말할 만큼 파격적이었다. 

화제가 되다보니 카드섹션의 부담이 늘어나면서 마지막 경기 때는 문구 생각 때문에 고생했다고 한다. 

4강전 당일 새벽까지 카드섹션 고민이 이어졌다. 고민 끝에 '꿈을 이루어진다'로 결정했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월드컵 우승도 할 수 있다, 월드컵 우승의 꿈'을 뜻한다. 

 

 

월드컵에서 우승하면 유니폼에 별을 달수있었다. 그래서 '꿈☆은' 사이에 별이 있다. 

해당 문구의 상표권 등록은 거절했다. 이유는 해당 문구는 축구를 사랑하고 월드컵에 열광하는 모든 국민들 것이므로 독점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오~필승 코리아는 부천에서 왔고 대~한민국은 수원에서 왔다. 붉은 악마 응원 구호의 출처는 'K-리그'였다. 부천 축구팀 응원가 '오~나의 부천'이 각색되어 '오~필승 코리아'가 됐다. 이 응원가는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 응원곡이었고 90년대 부천팀에서 작사와 편곡을 거쳐서 최초 국내 응원가로 사용됐다. 

대~한민국은 수원 축구팀 응원 구호에서 유래됐다. 

 

 

29일 대구 월드컵 경기장에서 한국과 튀르키예의 3,4위 결정전이 있었다. 이날 경기는 시작하기 전에 이날 오전 서해 연평도에서 발생한 남북한 해군 교전에서 희생된 장병들의 넋을 기리는 묵념의 시간을 갖고 다소 무거운 분위기에서 시작했다. 튀르키예에 3:2로 패했고 가슴 졸이며 웃고 울었던 월드컵 여정은 끝이 났다. 

마지막 4강 경기를 마친 한국선수들과 튀르키예 선수들은 어깨동무를 하고 함께 박수를 받았다. 한국사람들은 튀르키예의 3위 진출을 진심으로 축하해 줬다. 튀르키예는 한국전쟁 당시 남한에 여단급 병력을 참전시켰고 참전 용사들이 한국에 가지는 특별한 애정이 보도되기도 하면서 대한민국 사람들은 튀르키예를 형제의 나라로 부르고 있었으며 승패를 떠나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당시 축구선수들의 사생활을 보도하고 무슨 음식으로 보양을 하는지 여자 친구는 있는 지 시시콜콜한 이야기취미, 무슨 차를 타는지 등 전 국민이 선수들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했다. 

월드컵 이후에는 선수들은 광고, 각종 TV에 나오느라 바빴다.  

 

네덜란드 출신의 감독, 히딩크 감독도 연일 화제였고 인기가 식지 않았으며 연일 광고에 등장했다. 한국사람들이 히등크의 나라 네덜란드로 여행을 가기도 했다.  네덜란드에서도 자국 감독 히딩크의 한국 4강 신화가 화제가 되었다.

 

원래는 우리나라가 결승에 진출하면 정부는 결승전 다음날을 임시 공휴일로 정하기로 했었다. 정부는 월드컵 4강 신화를 창조한 우리 축구대표팀의 결승전 진출 여부와 상관없이 월드컵 폐막 이틀날인 7월 1일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했다.  

 

월드컵이 끝나자 일이 손에 안 잡히고 일상생활로 돌아오는 것이 아쉬웠고 목소리가 안 나오기도 했다.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우수한 대한민국 축구선수들이 해외로 진출하는 계기가 되었고 한국의 축구실력도 업그레이드 되었다. 무엇보다 국민들의 시민의식이 높아졌고 세계 속에서 자신감이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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