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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학지식

몽골제국, 테무진의 등장

by 소시민스토리 2024.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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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제국, 테무진의 등장 

13세기 유라시아 대륙에는 몽골군의 말발굽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죽음의 군대로 불리는 그들은 뛰어난 기동력을 바탕으로 세계 인구의 절반을 지배하며 아시아를 넘어 유럽까지 대 제국을 건설한다. 

몽골제국의 영토는 알렉산더 348㎢, 나폴레옹 115㎢, 히틀러 219㎢가 정복한 영토 합계의 4배 이상이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지역을 지배한 몽골제국의 시작에는 세계 정복자로 손꼽히는 정복자 칭기즈칸이 있었다.

 

몽골제국이 지배한 영토는 3,300만㎢로 대한민국 영토 약 330배였다. 독소 전쟁 중 독일군 전격전의 모델은 몽골 기마부대였다. 하루 100Km 이상을 진격했다. 세계사에서 유목민의 역사는 몽골로 대표된다. 

몽골은 인류 최초 세계사(세계화)를 탄생시킨 주역이다. 몽골제국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1450~1506)가 대항해 시대를 열고 신대륙을 발견하는데 영향을 끼쳤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1450~1506)는 제노바 출신 탐험가이며 1492년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

 

 

몽골제국이 어마어마한 영토를 차지하게 되면서 나라 사이의 경계선이 없어졌다. 이동이 편해졌고 유럽, 이슬람 상인들의 왕래, 교류가 이루어지면서 육상. 해상의 교통로가 만들어졌다. 

 

칭기즈칸은 1979년 결성된 독일 팝 그룹으로 칭기즈칸을 흥겹게 노래했다.

현대 유럽에도 칭기즈칸의 영향력은 남아있다.  칭기즈칸의 평가는 상반된다. 훌륭한 리더, 잔인한 정복자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한 이슬람 역사가는 '몽골군은 아무도 남겨두지 않았다, 내가 역사가인데 차마 역사로 남기는 것조차 힘이 든다'라고 말했다. 

"칭기즈칸의 부대가 지나가면 남는 건 오로지 먼지밖에 없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칭기즈칸의 이름은 테무진이다. 출생은 1162(확실치 않음)~1227이며 아버지는 예수게이로 보르지긴 씨족 족장이었다. 어머니는 호엘룬이며 옹기라트 부족이었다.  주먹에 핏덩어리를 쥐고 태어났다고 한다. 

당시 몽골에서는 피를 손에 쥐고 태어난 자는 초원의 영웅이 된다는 속설이 전해졌다. 

이름 테무진의 뜻은 쇠라는 뜻으로 아버지가 지어줬다. 다른 부족을 정복하고 그 부족의 전사의 이름을 따와서 아들에게 이름을 지어줬다. 자기가 적장을 잡은 것을 기리는 것이다. 

 

칭기즈는 '위대한, 위엄을 갖춘' 의미로 해석되기도 하고 '바다'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새소리'라고 의미를 해석하기도 한다. 칭기즈칸 즉위 당시 새 울음소리라고 해석하는 설이다. '칸'은 황제라는 뜻이다.

몽골은 수많은 유목부족이 생활하고 있다. 메르키트, 몽골, 타타르, 케레이트, 나이만 부족이 대표적인 5 부족이다. 몽골어로 '울루스'는 부족이라는 뜻이고 '오복'은 씨족이다. 오복이 모여서 울루스가 된다. 

여러 개의 울루스가 있는데 대표적인 것은 5개 몽골, 타타르, 메르키트, 케레이트, 나이만이다.

 

 

 

아버지 예수게이가 속했던 보르지긴 씨족은 몽골 울루스 몽골 부족의 보르지긴 씨족이다.

몽골의 넓은 초원에서 농사를 지을 수가 없어 물자 부족으로 인한 빈번한 약탈이 일어났다. 유목부족들 사이에서 서로 싸움이 잦았다. 당시 몽골 사회의 혼란을 기록한 몽골 비사에는 '하늘의 별들마저 돌아눕고 사람들은 서로 노략질했으며 대지 또한 잠들지 못하고 뒹굴고 있었다"라고 기록될 만큼 몽골 초원에서 부족 간 전쟁이 일상화되었다. 몽골은 방어하기 어려운 평야 지대이다. 

 

천고마비(天高馬肥)는 하늘이 높아져 가을이 와서 말이 살이 찌면 몽골인들이 처들어 온다는 뜻으로 유목민족에 대한 두려움이 담긴 말이다. 북방 유목민족의 침입을 막고자 만리장성을 쌓았다. 가을에 침략하는 것은 추수한 식량을 가져가기 위해서다. 유목국가는 겨울 전쟁을 선호한다. 동물 가죽으로 만든 방한복이 풍부하고 강이 얼어 말 타고 신속 이동할 수 있었다. 

 

여진이 금나라(1115~1234)를 세운 다음 중국식으로 몽골을 통제하려고 했다. 이이제이(以夷制夷), 여러 부족들 중 하나를 앞세워 몽골 초원을 통제했다. 내부 균열과 금의 압박 시기에 칭기즈칸이 나타났다.

테무진은 어린 시절, 옹기라트 부족 소녀 부르테와 약혼했다. 당시 몽골의 풍습에 따라 약혼녀 집에 머무른다. 테무진 아버지 예수게이는 마을로 돌아가던 중 타타르 부족과 식사를 같이 하게 된다. 

타타르부족과는 평소 적대 관계였으나 그들이 내어주는 음식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게이가 마신 술에는 타타르족이 독을 탔고 예수게이는 독살을 당한다. 

타타르 부족과 예수게이는 오랫동안 원한 관계였다. 테무진은 패배시킨 적장의 이름으로 적장이 타타르 부족이었다.

 

몽골 사람들은 집에 손님이 찾아오면 술이나 차를 먼저 대접한다. 주인은 손님을 공경해야 하고 손님은 그 음식을 맛있게 남기지 않고 다 먹어야 한다. 상대 불문 대접받은 음식을 먹는 것이 몽골의 예의이다.

몽골 유목민들이 손님을 귀하게 여기는 이유가 있다. 몽골 유목민들은 거친 땅을 계속 이동하고 떠돌아다니기 때문에 본인이 손님이 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손님은 타지의 중요 정보 전달자가 되어주기도 한다. 손님을 귀하게 대접하는 몽골 풍습 때문에 테무진의 아버지 예수게이는 타타르 부족을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락(마유주)은 말젖을 이용해 만든 몽골의 전통주이다. 암말의 젖이나 소의 젖을 발효시켜 만든다. 몽골 서부지역에서 주로 만든다. 

후후르 통에 소젖(말젖)을 넣어서 수천 번 저어야 한다. 많이 저을수록 발효가 잘 된다.

아이락 알코올 도수는 1~3도 정도이다. 몽골에서는 어린아이들도 마실 수 있다. 농경사회는 곡물로 술을 만들고 유목 사회는 소 또는 말젖으로 술을 만든다. 잔에 아이락을 다 채우서 주는 것이 예의이다. 

말젖에는 유당이 많다. 유당 분해 효소가 없는 사람이 마시면 배탈이 날 수도 있다. 발효된 아이락에는 비타민이 풍부하다. 

 

아버지의 독살은 테무진에게 굉장한 충격이었다. 나중에 칸의 자리에 오르고 법령을 제정할 때 아버지의 독살은 영향을 끼쳤다.

'음식을 제공하는 사람은 그 음식에 독이 없는지 먼저 먹어본 다음 권할 수 있다' -<칭기즈칸 제정 몽골 대법령 中>

몽골인들 사이에서 은반지, 은잔을 사용해 독성을 확인했다.

 

테무진은 아버지를 잃었고 보르지긴 씨족은 족장을 잃었다. 족장자리를 이어받아야 하지만 테무진의 나이가 어렸다. 씨족 사람들은 테무진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양, 말, 재산도 모두 가져가 버린다. 테무진에게 남은 것은 어머니와 형제 등 가족 9명이었다. 이중 성인 남자는 한 명도 없었다. 

"그림자 말고는 동무가 없고 꼬리 이외에는 채찍도 없다"

-몽골비사 中

 

테무진과 남은 가족들은 산속으로 들어간다. 들쥐를 잡아먹고 강에서 생선을 잡아먹으며 연명한다. 

몇 년 뒤 테무진을 버리고 떠났던 씨족이 테무진을 잡으러 온다. 당시 15세 포로로 잡혀가게 된다. 성인이 된 테무진의 복수를 우려한 것이다. 수레바퀴보다 작은 아이는 죽이지 않는 것이 몽골 풍습이며 성인 대우를 받는 15세가 되자 잡으러 온 것이다. 

테무진을 잡으로 온 사람들이 말을 했다. "병아리들이 털을 갈았다, 두 살배기 양들이 질금거린다" -몽골비사 中

중세 몽골 표현에서 어린아이가 다 컸다는 뜻으로 복수를 우려했다. 포로로 잡혀 목에 칼을 차고 포로 생활을 했다. 잔칫날 경비가 느슨해졌다. 그 틈에 도주한다. 추격대가 따라 붙는다. 물속으로 숨는다. 물속에서 숨을 참다가 못 버티고 물 밖으로 나오자 추격대 한 명이 바라보고 있었다. 추격대원은 그냥 못 본 척 가버린다.

 

눈 감아준 추격대원의 집을 찾아간다. 가족들은 테무진을 잘 보살펴주며 먹을 것을 주고 말을 내어 준다. 

칭기즈칸은 글을 읽지 못했다. 가족들 품으로 다시 돌아 갔지만 여전히 궁핍한 상황이었다. 약혼자 부르테를 찾아간다. 부르테 집안은 부유했고 옹기라트 부족은 타타르 부족 아래쪽, 금나라 접경지역에 살고 있었다. 옹기라트 부족은 금나라와 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했다.

부르테의 아버지는 테무진의 어린시절에 테무진을 보고 "눈에 불이 있고 얼굴에는 빛이 있는 소년"이라고 했다. 테무진과의 첫 만남 전날 장인은 꿈을 꾼다. 송골매가 한 발에는 해, 한 발에는 달을 쥐고 자신에게 날아왔다.  첫 만남에 테무진의 비범함을 느낀다. 그래서 흔쾌히 결혼을 약속한다.

 

유목민의 결혼은 자기 부족의 세력 확장의 중요한 수단이 된다. 정치적 동맹으로도 발전할 수 있다. 부르테를 찾아간 테무진은 담비가죽 코트를 선물 받는다. 

당시 담비가죽은 몽골에서 굉장히 값진 물건이었다. 결혼으로 재산이 늘어나는 테무진의 인생은 한 단계 성장한다.

 

 

부르테와 결혼 후 테무진은 당시 몽골 초원의 강자 케레이트 부족의 수장, 옹칸을 방문한다. 테무진은 부르테가 시집오면 준 담비가죽 코트를 선물하며 도움을 요청한다. 옹칸은 테무진의 후원자가 된다. 테무진은 도약의 기회를 잡았다. 

옹칸은 테무진의 아버지와 의형제를 맺은 사이이다. 의형제는 몽골어로 '안다'라고 한다. 테무진은 옹칸을 아버지처럼 섬기겠다고 말한다. 옹칸은 "너의 흩어진 백성을 찾아주겠다" 화답한다.

 

테무진과 옹칸의 동맹 소식은 몽골 초원에 퍼진다. 사람들은 다시 테무진을 중심으로 모이기 시작했고 자기 사람들을 키우게 된다. 몽골어로 사돈은 '쿠다'라고 한다. '쿠다'관계는 고려와 몽골의 왕실 혼인으로 이어진다. '안다'와 '쿠다'는 몽골 사회의 인맥을 상징한다. 

 

메르키트족에게 아내 부르테가 납치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 배경은 복수심 때문이었다. 테무진 아버지 예수게이는 메르키트족의 아내를 납치해서 결혼했다. 약탈혼을 했던 여인은 테무진의 어머니이다.

메르키트족은 테무진 아버지에 대한 원한으로 20여 년 후에 복수한 것이다. 

약탈혼은 몽골에서 흔했다. 몽골을 같은 부족사람끼리 절대 결혼하지 못한다. 다른 부족과 결혼을 해야 한다. 초원은 넓고 인구수는 적어서 결혼 상대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몽골남성은 결혼여성을 구하기도 쉽지 않았지만 결혼을 결심했어도 어마어마한 것들을 준비해야 했다. 

쌍봉 낙타 1마리, 검은 담비 가죽으로 장식한 백마 한 필, 은잔  한 짝, 진주목걸이 등 많은 재물을 준비해야 정식 결혼이 가능하다. 

초원의 강자 메르키트 부족에게 아내를 빼앗긴 테무진은 절친한 친구 자무카와 함께 아내를 구하러 간다. 

테무진과 자무카는 어려웠던 시절에 만나서 안다(의형제)를 맺었다. 이후 세번에 걸쳐서 안다를 맹세한다.

옹칸과 자무카와 함께 아내 납치 1년 후 메르키트 부족을 공격한다. 아내 부르테를 극적으로 구출한다. 

테무진이 메르키트 부족을 응징한 소식이 몽골 초원에 퍼져나가면서 테무진의 위상이 더 높아진다. 

 

아내 부르테를 찾았지만 임신중이었다. 사람들은 수군댔지만 테무진은 자신의 아들이라고 생각한다. 

납치됐던 부르테가 낳은 아이는 맏아들 '조치'이다. 맏아들 이름은 조치이고 몽골어로 '손님'이라는 뜻이다. 

테무진이 점점 성장하고 있는 와중에 몽골 부족 귀족들이 찾아와서 테무진을 몽골 부족 칸으로 추대한다. 몽골 부족장이 되었다. 

수 차례 위기를 넘기고 성장한 테무진에게 귀족들은 충성을 맹세한다.

 

안다(의형제) 자무카와 갈등이 시작된다. 자무카와 테무진이 의형제를 맺었던 어려운 시절에는 테무진이 여러 가지로 열세였다. 이후 테무진은 단계를 거치며 몽골 부족의 칸으로 추대되자 자무카는 생각이 달라진다. 

자무카는 1190년 13개 부족을 모은 3만 병력으로 테무진을 공격한다. 

달란 발주트 평원에서 대 전투가 벌어진다. 그러나 자무카 연합에 맞서 싸우기에는 군대가 부족했다. 열세를 인정하고 후퇴를 결정한 테무진은 첫 전투에서 패배했다.

테무진은 갓 세력을 형성했고 자무카는 이미 큰 군대를 거느리고 있었다. 

전쟁에서 승리한 자무카는 결정적인 실수를 한다. 자기를 배신하고 테무진 편을 들었던 사람들을 잡아서 삶아서 죽인다. 몽골 사람들은 팽형(烹形)을 하면 영혼까지 증발시킨다고 생각한다. 자무카의 잔인함에 몽골 사람들은 등을 돌린다.

 

반면 테무진은 신분을 떠나 하층민에게 신뢰를 얻는다. 테무진은 전투 규칙 중 전리품의 배분 방식을 바꿨다. 유목민들은 약탈한 전리품은 본인이 다 챙기는 기존 방식이었다. 테무진은 전쟁 중에 전리품을 챙기는 것을 절대 금지했다. 전쟁이 끝나면 전리품을 다 모아서 각자의 전공을 공정하게 따져서 공정한 방식으로 배분했다. 몽골군의 전쟁터에는 전투 공적 기록자가 있었다는 설이 있다. 

또한 전사한 사람에게도 전리품을 배분해서 전사자 가족에게 준다. 테무진의 군사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전투에 임했다. 

 

1201년 자무카와 테무진의 또 다른 전투가 벌어진다. 이번에는 테무진이 승리하고 한 단계 도약한다.

하지만 불만을 품은 귀족들이 등장했고 반대 세력이 형성된다. 테무진은 귀족들은 믿을만 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인재를 선택할 때  신분과 상관없이 능력을 보게 된다. 

당시 몽골의 귀족들은 혈연 관계로 맺어진 사람들이다. 테무진 아버지 죽음 이후 테무진을 버린 친척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혈연을 중요하지 않고 실력 위주의 인재를 등용하게 된다. 

테무진은 신뢰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일화가 있다.

테무진에게 패배 후 자신의 부하들에게 자무카는 끌려오게 된다. 끌고 온 부하들은 테무진에게 포상을 받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테무진은 주군을 배신한 부하는 필요 없다고 하며 처형시킨다. 

테무진은 적 화살에 맞아 부상이 심각했다가 극적으로 살아난 후 누가 화살을 쏘았는지 찾았다. 잡혀 온 포로 중에서 자신이 한 일이라며 자백을 한 포로가 있었다. 몽골에서 가장 활을 잘 쏜다는 명사수 제베였다. 

제베를 자신의 부하로 기용한다. 제베라는 이름은 칭기즈칸이 하사한 이름이다. 제베는 몽골어로 '화살촉'이라는 뜻이다. 

 

테무진은 신분, 혈연을 배제하고 능력을 가장 중요시했고 신뢰를 보았다. 제베의 능력과 충성심을 알아본 것이다. 칭기즈칸 수하의 명장으로 활약한다. 테무진의 세력은 점점 커져서 몽골 동부 지역을 장악한다. 

몽골 제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칭기즈칸의 성장과정의 경험을 바탕으로 형성된 제국 초기 성격을 알아야 한다. 

 

다음 시간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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