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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학지식

레이테 해전, 15분 전투 수리가오 해전

by 소시민스토리 2024.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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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테 해전, 15분 전투 수리가오 해전

니시무라 함대와 시마 함대는 수리가오 해전의 주역이다. 수리가오 해협을 향해 각각 항진 중이었다.

1944년 10월 25일 오후 2시 니시무라 함대는 수리가오 해협에 도착한다. 시마함대는 니시무라 함대 뒤쪽으로 약 48Km에 있었다. 수리가오 해협은 폭이 넓어서 미 해군이 이미 진을 치고 있었다.

미 제7함대 소속으로 사령관 제시 B. 올덴돌프가 이끄는 함대는 전함 6척, 중순양함 4척, 경순양함 4척, 구축함 27척, 어뢰정 39척 함대가 일본군을 격퇴하기 위해서 만반의 준비를 완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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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가오 해협의 입구에  미 7함대 진형 어뢰정이 매복해 있었고 해협의 출구 쪽에는 구축함들이 매복해 있었고 전함과 순양함으로 단종진 형태로 매복해 있었다. 단종진은 군함이 횡대로 늘어서 있는 것으로 전 함선이 측방으로 사격할 수 있도록 늘어선 형태다. 일본군을 맞이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해전을 기다리고 있었다.

 

 

 

1944년 10월 25일 새벽 3시 니시무라 함대가 수리가오 해협에 진입했다. 미 7함대 구축함들이 어뢰로 공격했고 니시무라 함대 전함 후소가 침몰하고 구축함 2척 격침, 1척 대파 등 피해를 입는다.

새벽 3시 50분부터 15분간 쏟아진 맹렬한 포격전이 펼쳐진다. 일본군은 중순양함 모가미가 항로를 바꿔 미 7함대에 반격을 한다. 하지만 미 해군의 엄청난 공격에 니시무라 함대는 거의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는다.

수리가오 해전이 끝나갈 무렵에 시마 함대가 인근 해역에 도착한다.

 

시마 기요히데 일본 제5함대 사령장관은 니시무라 함대가 패하는 모습을 보고 수리가오 해협 진입을 포기하고 퇴각한다. 니시무라 함대에 살아남은 중순양함 모가미와 구축함 시구레를 데리고 퇴각을 한다.

그 과정에서 1944년 10월 25일 13시 07분 중순양함 모가미는 자침 했다. 니시무라 함대 7척 중 6척이 침몰하고 구축함 시구레만 생존하게 된다. 니시무라 쇼지 제1유격부대 3부대 지휘관도 전사했다.

 

수리가오 해전은 벌어진 시간이 새벽 3시이다. 미 7함대는 정찰기를 띄워서 수리가오 해협 돌입 전 저녁에도 확인하고 있었다. 일본 함대의 진격 루트로 예상했던 수리가오 해협이어서 미 7함대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토마스 C. 킨케이드 미 제7함대 사령관의 임무는 미 육군 제6군 레이테섬 상륙부대 지원이었다. 싣고 온 포탄은 대부분 주로 지상 포격에 사용하는 고폭탄들이었다. 함정을 상대하기 위한 철갑탄은 고자 20~30%였다.

킨케이드의 걱정은 니시무라 함대가 수리가오 해협으로 온다고 했을 때 철갑탄이 떨어지기 전에 해치우지 못하면 불리해질 수 있고 니시무라 함대가 야간에 오면 야간전투에 강한 일본군을 상대하기가 어려울 것이라 걱정했다. 게다가  제7함대는 미 3함대처럼 최신형이 아닌 구식함정이어서 불안했다. 

함정 배치에서 입구 양쪽에 어뢰정과 구축함을 배치한 것은 주력함들이 철갑탄을 쏘기 전에 최대한 어뢰 공격으로 적함을 격침한 다음에 철갑탄을 아껴서 일본 주력함을 상대하려고 한 것이다.  

 

 

일본 해군 패전요인

일본 해군의 실수 연발 속에 단 15분 만에 주력함이 격침된다. 미 7함대와 니시무라 함대 포격전은 10월 25일 새벽 3시 53분부터 새벽 4시 08분으로 단 15분이었다.

전함 야마시로와 후소가 주력이었다. 이미 후소는 어뢰를 맞아서 낙오되었고 전함 야마시로와 중순양함 모가미가 앞서 나가는 도중에 미군을 발견하고 동시에 포격을 개시했다. 

야간에는 눈으로 볼 수 없어 레이다를 사용해야 하는데 일본 해군은 레이다 관측 포격에서 문제 투성이었다.

미군은 배치를 워낙 많이 해서 어느 함인지 구분을 할 수가 없었다. 2호 2형 전파탐신의 일본 레이다로는 적함 구분이 불가하였다.

 

포격의 원칙은 한 척을 골라 우선 공격하고 순서대로 가야한다. 처음에 잡는 목표는 가장 강력한 적함부터 화력을 집중해야 한다. 야간이라 망원경으로 봐도 여러 적함이 겹쳐서 포격하다 보니 더 구분이 안 됐다.  또한 패전의 요인은 그 당시 미해군은 화염이 적게 나는 플래시(플레임)리스 프로펠런트를 사용하고 있었다. 무섬광(무염)장약으로 화염이 적게 난다. 마침 미 7함대에 호주 해군 1개 전대, 해군의 중순양함 휴롭셔가 참전하고 있었다.  호주 해군 중순양함 함포의 화염이 다른 전함보다 잘 보였다. 일본 해군은 휴롭셔를 미 전함이라 착각하고 야마시로가 중순양함을 향해서 포격을 집중했다. 호주 순양함 휴롭셔는 격침되지 않았다.

 

미 7함대는 자리 선점한 전함은 위치가 고정되어 공격 대형 배치를 마친 상태였다. 하지만 일본 함대는 이동하면서 싸울 자리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이미 불리한 싸움이었다.

미 해군은 레이다에 의한 사격 관제에 의존했다. 구식 전함 6척 중 진주만에서 건져 올린 3척은 수리할 때 최신형 레이다로 교체했다. 3척은 초기형 레이다를 장착하고 있어 수준 차이가 났다. 

 

 

콜로라도급 전함 웨스트버지니아 BB-48은  최신형 Mk8 사격통제장치를 탑재했다. 놀라운 포격 성적을 기록한다.  42,000야드(약 38Km)거리에서 적함 야마시로를 탐지하고 발견하여 22,800야드(약 20.8Km) 거리에서 포격한다. 단 10분 동안 98발을 발사하여 모두 협차를 달성한다. 협차는 움직이는 함정은 정확하게 맞히기 어려운 '이동 표적'이므로 여러 문의 포가 좁은 범위 내에 교차되어 명중시키는 것을 뜻한다.  

협차가 거듭되면 확률상 곧 명중하게 된다. 전함 웨스트버지니아가 일제 사격이 모두 협차를 달성했다.

최신형 Mk8 사격통제장치를 설치한 테네시와 캘리포니아도 비슷한 성적을 기록했다.

구식 레이다의 초기형 Mk3사격통제장치를 탑재한 전함 2척, 전함 미시시피는 적함 구분이 안 되었다. 구식 레이다의 문제점은 적함의 크기 판별이 불가하였다. 지형지물에 반사된 전파가 뒤섞여서 분간이 안 된다. 

적군인지 아군인지 분간을 못해서 쏘지 못하고 있다가 마지막 사격중지라고 할 때 마지막으로 1발을 쏘고 끝난다. 전함 펜실베니아는 단 1발도 못 쏘고 수리가오 해전이 종료된다. 

 

수리가오 해전의 의미

전함 대 전함의 포격전이었다. 진주만 공습 당시 침몰했던 전함 5척이 귀환해서 야마시로와 후소에게 보복타를 날렸다는 것이다. 세계 해전사에서 거의 마지막 수상함대 간의 교전이었다. 항공기가 개입하지 않고 함포끼리 결전해서 단 15분 만에 끝난다.

 

하지만 야마토와 나가토는 여전히 건재했다. 1944년 10월 25일 00:30분에 구리타 함대는 산베르나르디노 해협을 통과한다. 구리타 함대는 여전히 강력한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전함 야마토, 전함 나가토, 순양함 8척, 구축함 11척을 가지고 있었다.

 

토마스 C. 킨케이드 미 제 7함대 사령관은 수리가오 해전을 승리로 이끈 후 윌리엄 홀시 미 제3함대 사령관에게 전화한다. 미 3함대는 산베르나르디노 해협을 잘 막고 있냐고 하자 홀시는 북쪽으로 가고 있다고 한다.

토마스 C. 킨케이드 미 제 7함대 사령관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이 순간 일본 구리타 함대는 레이테만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일본군의 목표는 미 수송 선단을 격멸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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