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잡학지식

남방작전 코드명 E, 과거 동맹군을 적으로 만나다

by 소시민스토리 2024. 2. 2.
반응형

 

남방작전 코드명 E, 과거 동맹군을 적으로 만나다

일본은 난공불락 싱가포르를 정면 공격하지 않고 북쪽에서 내려와 싱가포르 후방을 공격한다. 

1938년 싱가포르섬 북쪽에 영국 해군기지가 완공되고  15인치 포 6문 등 해안포 29문을 배치하고 철벽을 요새화했다. 영국 입장에서는 허를 찔린 것이다. 

일본군은 5사단, 18사단, 근위사단과 직할부대 등 말라야 전역에 모두 3개 사단을 투입했다. 상륙의 주력부대는 말레이반도 접경지대 태국령 싱고라(송클라), 파타니에 상륙해서 비행장을 점령한다. 

상륙주력부대는 산맥을 넘어 말레이반도 서해안으로 남하한다.

 

진주만 공습과 남방작전

 

진주만 공습과 남방작전

진주만 공습과 남방작전 1941년 태평양 전쟁 발발 당시 일본해군은 세계 최강 기동함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개전 당시 일본군의 정규군은 약 240만 명이었다. 1931년부터 만주사변, 1937년 중일전쟁

bringbacon.tistory.com

 

일본군 1진은 코타바루(말레이시아)에 상륙하여 비행장을 점거하고 말레이반도 동해안으로 남하한다.

일본군이 제공권에 신경을 쓴 이유는 해군 항공대도 출전을 하지만 말레이 전역 공중전 핵심은 육군 항공대였다. 육군과 해군 항공기는 항속거리 등 설계 사상이 다르다. 해군은 기본으로 원거리 작전을 생각해서 항속거리가 길지만 육군항공대는 지상작전을 지원해 상대적으로 항속거리가 짧다.

육군 진격에 맞춰 빨리 항공기지 점령을 해서 지원을 해야 한다. 점령한 비행장을 기반으로 다음 단계까지 진격하는 작전을 수행한다.

육군 진격에 제공권이 중요한 이유는 말레이반도의 약 60%는 열대우림 정글이다. 보병 엄호 및 적군 공격을 위한 공중폭격으로 화력을 지원할 수 있다. 당시 말레이반도에는 도로가 몇 개 없었다. 제공권을 장악해서 공중에서 몇 개 도로만 차단하면 전쟁에 유리해진다.  일본군은 말레이반도에서 약 1만 대 영연방군의 차량을 노획하여 일본군이 다 쓴다. 

영국은 현지시각 1941년 12월 8일 오후 5시 10분에 HMS 프린스 오브 웨일스 전함과 HMS 리펄스 순양전함을 일본군 상륙을 저지하려고 출진한다.  하지만 베트남 사이공에서 출격한 일본 해군 공격기 폭격을 받아 폭침한다. 

영국군은 제대로 저항을 못했고 병력은 분산 배치되어 있었다. 방어는 커녕 고립되기 쉬웠다.

 

 

 

영국을 괴롭힌 일본의 최정예 비행기는 일본이 말하는 '동양의 진주'라는 제로전투기(제로센)였다. 제로 전투기는 항속거리가 2,200Km 이상이었고 20mm 기관포가 2정이 있고 일본 해군 항공대가 사용했다. 일본 육군 항공대는 '하야부사'로 항속거리는 1,700Km이며 12.7mm 기관포가 2정이 있다.  전쟁 초반 뛰어난 전투기와 수준 높은 파일럿은 제공권 장악 원동력이 된다.

제로 전투기는 선회전 능력이 뛰어나 유럽 전투기에 뒤지지 않았다. 

전함 야마토는 일본 해군력의 상징으로 세계 최대 구경의 함포를 탑재하고 있었다.  일본은 영국 해군의 설계를 들여와 전함을 만들었는데 전함 야마토는 최대, 최강의 설계 스펙으로 당대 일본의 기술력, 자본력의 결집이었다. 일본 기술의 도약의 상징으로 하늘에는 제로센, 바다에는 야마토였다. 영국이 건네 준 기술력으로 전함을 만들어 영국의 뒤통수를 치려는 것이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은 적이 되어 만났다.

 

전함 야마토 1척의 건조 비용은 전쟁 직전, 일본 정부 1년 예산의 3~4%에 달하는 약 1.4억 엔이었다.

일본은행 기업물가지수 기준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약 2조 원에 달한다.

전쟁을 위한 국방비 투자는 상대적인 산업 투자 비용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 

 

<제로센에 맞서는 영국 전투기>

 

태평양전쟁 초기에 영국과 네덜란드 동남아 주둔군은 2선급이었다. 숙련도 높은 에이스 1 선급 병력은 본국을 지키러 유럽전선으로 갔다. 적당한 성능의 전투기, 미국 부르스터 사가 제조한 F2A 버팔로 전투기를 배치한다. 최고속도, 상승률, 항속거리, 상승고도, 무장에서 대부분 일본 제로센과 하야부사에 비해 열세였다.

실제 경험이 많은 일본 항공기와 붙어 패배한다. 성능차이도 크고 파일럿 수준도 차이가 났고 일본군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 영국군은 패배하고 있었다.

일본 해군 항공기들의 공습에 격침된 영국 HMS 프린스 오브 웨일스, HMS 리펄스 격침사건은 모두를 충격에 빠뜨렸다.

일본과 영국은 3차례나 동맹을 맺었었다. 하지만 과거의 동맹이 이제는 적이 되어 만나게 된 것이다.

 

 

<제공권을 장악한 남방작전, 일본 육군의 진격>

 

반응형

 

말레이 반도 지형은 가운데 티티왕사 산맥이 척추처럼 길게 뻗어있고 해안가로만 기동이 가능했다. 산맥에서 발원한 강이 바다로 횡렬되어 있고 가로로 흐르는 수많은 강이 있다. 강하구 늪지대가 발달하여 사실상 기동이 불가하다. 그런데 일본군은 50일 만에 약 1,100Km를 간다. 일본 육군은 말레이 반도 정글을 뚫고 빠르게 진격한다. 일본 육군이 준비한 진격 무기는 자전거였다. 

 

말레이반도, 싱가포르, 영국령 말라야전역에 일본 육군 25군이 투입된다. 중국과 일본에서 출발전 민간인 자전거를 징발한다. 사단별 6,000대를 징발해서 싣고 왔다. 일본군은 말레이가 비교적 도로포장 상태가 양호하다는 것을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다. 영국군이 자동차 기동로로 잘 쓰던 길이었다. 자전거에 보급품을 싣고 진격한다. 영국의 방어 핵심은 교량 파괴였다. 하천이 많아 교량을 파괴하면 일본군의 진격을 저지시킬 수 있었다.   대부분의 말레이반도 교량 파괴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그런데 일본군 공병대가 임시 복구한 간이 교량으로 일본군은 자전거를 짊어지고 계속해서 진격했다.

 

일본군이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타이어가 펑크가 속출한다. 일본군 부대에는 자전거 업체 기술자까지 징발, 참전했다. 자전거 펑크를 고치고 자전거 부품은 가능한 현지 조달을 원칙으로 한다. 펑크가 나면 말레이 사방에 있는 고무나무를 바로 채취해서 펑크를 때우며 진격한다.

일본군의 전쟁 준비는 수개월전부터 철저했다. 각국에 스파이를 침투시켜서 치밀한 정보를 수집했다. 방어시설, 지형, 도로 확인은 물론 교량 특징에 보수용 목재 보관소까지 파악했다.

1936년 일본 기계 분야 수출품 1위는 자전거였고 대부분 동남아로 수출했다. 그래서 동남아에서 자전거를 현지에서 징발하기도 했다.

 

1920년대 일본군 보병에 자전거 적용 계획을 세웠는데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의 자전거부대를 모티브로 한 것이다.

공병대가 끊어진 다리를 수리하면 자전거부대를 선두로 전차부대도 보조를 맞춰 진격한다. 기갑부대를 갖추지 못한 영연방군을 완전히 유린한다. 영연방군은 자동차는 많지만 제대로 된 전차는 1대도 없었다.

중요한 말레이에 전차를 보내야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했지만 처칠은 무시한다. 전차 기동성이 낮은 정글에서 일본군은 전차 없이도 상대가 가능하다고 오판한 것이다. 전차는 그 당시 독소 전쟁 중인 스탈린에게 보내게 된다. 12월 7일 말레이에 일본군이 상륙을 하는데 보병과 전차 협공에 영국군은 계속 후퇴하고 있었다.

일본군 상륙 1개월 후 1942년 1월 2일 영연방 군이 반격작전을 한다. 영연방 군의 반격작전은 성공한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