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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학지식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의 역사와 갈등

by 소시민스토리 2025.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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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의 역사와 갈등

<고대에서 근현대까지>

팔레스타인 지역은 고대부터 수많은 제국과 민족의 교차로였다. 기원전 2천 년경에는 가나안 사람들이 살았으며 이후 히브리인(이스라엘 민족)이 정착하여 고대 이스라엘 왕국을 세웠다. 이후 이 지역은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등 여러 제국의 지배를 거쳤다.  
특히 로마 제국 시기(기원후 70년), 유대인 반란이 진압된 후 많은 유대인이 디아스포라(흩어진 민족)로 전 세계로 퍼지게 되었고 이후 팔레스타인은 점차 아랍화되었다. 7세기에는 이슬람 세력이 이 지역을 정복하며 아랍-이슬람 문화가 뿌리내렸다.

19세기 후반, 유럽에서는 시온주의(유대인 민족주의 운동)가 부상했다. 반유대주의가 심각했던 유럽 사회에서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국가를 세우기를 원했고 팔레스타인을 이상적 거점으로 삼았다. 이들은 "고향으로의 귀환"을 목표로 삼으며 이주를 시작했다.

<영국 통치와 유대인-아랍인 갈등 심화>

제1차 세계대전 후 오스만 제국이 붕괴하면서 팔레스타인은 영국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1917년 발포어 선언). 이 선언에서 영국은 유대인 국가 수립을 지지한다고 약속했지만 동시에 아랍인들에게도 독립을 암시하여 이중적인 약속을 해 혼란을 초래했다.
1920~30년대, 유럽에서 반유대주의가 격화되면서 더 많은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했고 이로 인해 아랍 주민들과의 갈등이 심해졌다. 결국 1936년에는 아랍인 대반란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 시기 영국은 상황을 통제하지 못하여 혼란이 가중됐다.

<유엔 분할안과 이스라엘 건국(1948)>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특히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로 인해 국제사회는 유대인 국가 수립 필요성에 더 공감하게 되었다.  1947년, 유엔은 팔레스타인 분할안을 제안했다. 이 안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을 유대인 국가와 아랍 국가로 나누고 예루살렘은 국제 관리 지역으로 설정했다. 유대인 지도부는 이를 받아들였지만 아랍 국가들과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은 거부했다.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은 독립을 선언했다. 이에 즉각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이라크 등 아랍 국가들이 침공하며 제1차 중동전쟁이 발발했다.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은 원래 분할안보다 더 많은 영토를 차지하게 되었고 약 70만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난민이 되어 가자 지구, 요르단강 서안, 주변 아랍 국가로 피신했다. 이 사건을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나크바(대재앙)라고 부른다.
가자 지구는 전쟁 이후 이집트가 통치하게 되었고 요르단은 서안 지구(웨스트뱅크)를 합병했다.

 



<1967년 6일 전쟁과 가자 지구 점령>

1967년,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 간에 6일 전쟁이 발발했다.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고 가자 지구, 요르단강 서안, 동예루살렘, 시나이 반도, 골란 고원을 점령했다.  가자 지구는 이후 이스라엘의 군사 점령 하에 놓였으며 팔레스타인인들의 삶은 더욱 가혹해졌다.
이 무렵 팔레스타인인들은 PLO(팔레스타인 해방기구)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PLO는 무장 투쟁을 벌이며 국제사회에 팔레스타인 문제를 알렸지만 동시에 테러 행위로 비판받기도 했다.

<오슬로 협정과 희망, 그리고 좌절>

1993년, 이스라엘과 PLO는 미국의 중재로 오슬로 협정을 체결했다. 이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를 수립하고 가자 지구와 서안 일부 지역에서 자치를 인정하는 합의였다. 양측은 최종적으로 두 국가 해결책(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국가를 나란히 수립)을 목표로 삼았다.

1994년,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 대부분과 서안 일부 도시들에서 철수하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통치하게 됐다. 그러나 양측 모두 내부 반발에 부딪혔다. 이스라엘에서는 극우 세력이 팔레스타인에서는 하마스(Hamas)와 이슬라믹 지하드 같은 이슬람 무장단체가 오슬로 협정을 거부했다.
1995년 이스라엘 총리 이츠하크 라빈이 극우 유대인에 의해 암살되면서 평화 프로세스는 급격히 약화되었다.

<하마스의 부상과 가자 지구 통치>

2000년대 초반, 제2차 인티파다(팔레스타인 대규모 봉기)가 발발했다. 이는 오슬로 프로세스 실패에 대한 좌절과 분노를 반영했다. 이후 2005년,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에서 일방적으로 철수하고 모든 유대인 정착촌과 군대를 철거했다.
그러나 2006년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이슬람주의 무장 정당 하마스가 승리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무장 투쟁을 주장하는 단체였다.  
하마스와 기존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이끄는 파타(Fatah) 간 갈등이 심화되어 2007년, 하마스가 무력으로 가자 지구를 장악했다. 이로써 가자 지구는 하마스가 통치하고 서안 지구는 파타 중심의 자치정부가 통치하는 분열 상황이 발생했다.

<가자 지구의 봉쇄와 잦은 전쟁>

하마스의 집권 이후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를 해상·육상·공중에서 봉쇄했다. 이집트 또한 국경 통제를 강화했다. 가자 지구는 인구 밀도가 세계 최고 수준인 지역으로 극심한 경제난과 인도적 위기를 겪고 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을 발사했고 이스라엘은 이에 대응하여 가자 지구를 공습했다.  
이로 인해 대규모 군사 충돌이 2008-09년, 2012년, 2014년, 그리고 2021년 등 여러 차례 반복되었다. 매번 수백~수천 명의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고 국제사회의 우려를 낳았다.
특히 가자 지구는 매번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으로 큰 피해를 입었지만 하마스 역시 민간 지역에 무기와 군사 시설을 숨기는 전략을 사용해 논란을 키웠다.

< 2020년대 현재>

2020년대 들어서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021년에는 예루살렘에서의 긴장(셰이크 자라 지역 강제 퇴거 논란)과 알 아크사 모스크 충돌을 계기로 가자 전쟁이 발발했다. 이때 하마스는 수천 발의 로켓을 발사했고 이스라엘은 강력한 공습을 퍼부었다.
2023년과 2024년에도 이스라엘과 하마스, 그리고 이슬람 지하드 등과의 충돌이 계속되었으며 특히 민간인 피해가 극심해 국제사회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테러 조직"으로 규정하고 가자 지구 내 하마스 제거를 목표로 군사 작전을 강화했다. 반면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하마스의 통치에 불만을 품으면서도 이스라엘의 봉쇄와 폭격에 대한 분노를 키워나가고 있다.

<해결책의 어려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갈등은 단순히 국경 문제만이 아니다. 역사적 상처, 민족 정체성, 종교적 신념, 안보 불안, 정치적 분열 등이 얽혀 복합적인 문제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가자 지구는 이러한 갈등의 집약체다.
현재 국제사회는 두 국가 해법(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각자 독립국가로 공존)을 여전히 지지하지만 실현 가능성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이스라엘 내부의 극우화, 팔레스타인 내부의 분열, 그리고 지역 및 국제 정치 변화가 평화 전망을 더욱 어둡게 만들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특히 가자 지구의 갈등은 단순한 영토 분쟁이 아니라 수천 년의 역사, 민족과 종교, 정치적 갈등이 중첩된 문제다.  양측 모두 깊은 상처를 입었고, 상호 불신은 극에 달했다.  
가자 지구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고통받는 지역 중 하나로 남아 있으며 진정한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역사적 상처를 인정하고, 인권과 정의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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